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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가는 거 불편하지 않으세요?

1. 스웨덴의 '그냥' 화장실

한국에서 '성중립 화장실'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좀처럼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남자랑 여자가 같은 화장실을 쓴다니, 그게 가능한 걸까? 불편하지는 않을까? 위험한 일은 없을까?


그런 궁금증을 안고 스웨덴으로 온 나는,

막상 '성중립화장실'을 처음 경험했을 때 의외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사실 성중립화장실인 줄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알게 되었다.
(굳이 '성중립 화장실'이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그냥' 평범한 화장실이다. 집에 있는 화장실이랑 똑같다.)


예컨대 내가 공부하고 있는 웁살라대학교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형태의 '공중화장실'이 없다. 건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자주 가는 경영대 건물에는 복도 한가운데 화장실 그림이 그려져 있는 문이 있는데, 그 문 안으로 들어가면 변기 하나랑 세면대가 있고 그게 끝이다.
남자든 여자든 혹은 그 어떤 성별을 갖고 있든 간에 상관없이 누구나 이용가능한 독립적인 공간이다.

물론 이런 형태의 화장실이 아주 특별하거나 충격(!) 적인 건 아니다. 

한국에서도 작은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성별 구분 없이 이용가능한 (방 하나짜리) 화장실이 있지 않은가?

똑같다.


딱 이런 식이다!


그런데 스톡홀름 중앙역에 있는 공중화장실은 살~짝 결이 달랐다. 바로 남성과 여성이 함께 사용하는 큰 화장실이 있던 것이다!!

10 크로나를 내고 '화장실'이라고 불리는 큰 공간 안으로 들어가면, 그 안에서 또 각자의 개인칸으로 들어가서 볼 일을 보게 된다. 소변기 없는 공중화장실(=여자화장실)을 남녀가 같이 이용한다고 생각하면 편하겠다.


암튼 한국 친구들(남자 여자가 섞여있었다)이랑 같이 한 번은 이 화장실을 들어갔다가 나오는데 나도 별 생각이 없었고, 다들 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한 여자친구한테 "불편하지 않았어?"하고 물어보니, "별 생각이 안 들었다"라고 했다. 그게 참 신기했다.

"한국에서 우리가 이런 화장실을 이용했더라면 이상하고 어색하지 않았을까?"하고 물어보니,

같은 화장실을 사용하는 이성(異性)의 타인들이 '성별'보다는 '외국인'이라는 범주 안에서 인식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스톡홀름 중앙역 앞 광장의 야경

물론 스웨덴에도 남자화장실, 여자화장실이 따로 있는 곳들도 있다. 예컨대 스톡홀름 아를란다 국제공항에서는 남자화장실과 여자화장실이 따로 있었다. 보통 우리가 일반적으로 '공중화장실'하면 떠올리는 딱 그런 화장실이다!

아무래도 외국인들도 많이 오고 가는 국제적인 곳이라 그런 걸까. 하지만 이렇게 남자화장실과 여자화장실이 둘로 딱 나뉘어있는 곳보다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화장실이 '개별적인 칸' 형태로 있는 경우가 많았다. 성별보다는 개개인의 프라이버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인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이런 식으로 개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주는 화장실이 일반적인 공중화장실보다 더 사용하기 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 신경 안 쓰고 그냥 나 혼자 쓰고 나오면 되니깐!!!)

특히 남성과 여성, 이 두 가지 성별 중 하나에 완벽하게 속하지 않는 성정체성을 갖고 있는 소수자들에게는 성별보다 '개인'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화장실이 훨씬 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남성'인 필자로서는, 개인적으로 기존의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편했다. 그냥 익숙해서 편한 것도 있겠지만, 소변볼 때 양변기보다 소변기에서 일을 처리하는 게 물도 안 튀고 훨씬 더 편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여성들의 경우에는 나와는 다른 이유로 불편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컨대 남성과 여성이 같이 사용할 수 있는 공중화장실이라면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기 쉽지 않을까?

애초에 화장실이 성별에 따라 구분되어 있는데도 그 안에 기어코 들어가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는 놈들이 있고, 따라서 몰래카메라가 있을까 봐 공중화장실을 이용하기 꺼리는 여성들이 많은데,
하물며 남성과 여성이 함께 사용하는 공중화장실이라면 오죽할까.

과연 사람들이 편한 마음으로 이용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와는 달리 스웨덴에서는 이런 '그냥' 화장실이 보편화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스웨덴에서 용변활동을 위해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면서 나에게는 편한 화장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화장실일 수 있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편한 화장실이 나에게는 불편한 화장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먹고 자는 것만큼이나 '싸는' 문제는 우리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모두가 편한 마음으로 들어가 개운하게 나올 수 있는 그런 화장실은 없을까?




사진 출처 : https://www.reddit.com/r/mildlyinteresting/comments/96rwj2/almost_all_public_toilets_in_sweden_are_unisex/?utm_source=share&utm_medium=web3x&utm_name=web3xcss&utm_term=1&utm_content=share_bu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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