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14호 01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희관 공일오비 Apr 12. 2021

015B 14호 여는 글 및 목차

[여는 글 및 목차] 편집장 노랑, 연자

코로나가 발발한 지도 1년, 백신이 개발되어 유통된 이래로 좌절의 정동은 금세 사라졌고 코로나 이전의 삶을 복구하겠다는 슬로건이 “팬데믹을 종식한 인류의 승리”처럼 들려옵니다. 하지만 재난이 없었던 일이 되기에는 잃어버린 생명이 너무 많고, 팬데믹 동안 마주한 문제들을 단지 예외로 치부하기에는 이전부터 존재하던 차별과 폭력과 궤를 함께했습니다. 사회적 안전망이 결여된 문제는 여성들의 돌봄 노동에 위탁함으로써 간신히 대응되었고, 수많은 빈민이 재난 지원 대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고초를 겪었습니다. 택배 노동자들이 과로로 사망했고, 중간 숙주로 지목된 동물들이 수차례 살해당했습니다. 이처럼 코로나 시대의 위기는 인간과 바이러스의 대결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생산성에만 초점을 맞춘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 구조로부터 초래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한국의 코로나 대응 담론은 다시금 그 생산적인 과거를 복구하겠다는 데에 머물러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잃어버린 과거를 ‘복구'하는 것이 이 모든 문제의 해답일까요? 어떤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상상해야 다음 재난을 막을 수 있을까요. 이러한 질문, 그리고 대안적인 상상력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담아 14호를 기획했습니다.


감염보다도 큰 재난이 고립과 격리, 그리고 통제로부터 기인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도 문제였고 앞으로도 시급한 과제로 남을 생존과 존엄의 문제들을 담아 첫 카테고리에 엮었습니다. 물결은 백신 물신주의에 대해 회의하고 생명정치의 개념으로부터 뻗어 나가 코로나 시대에 어떤 존재가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생명으로 사유되었는지, 어떤 취약한 존재들이 방치되고 심지어는 더욱 죽음으로 내몰렸는지를 좇으며 공생의 상상력을 촉구합니다. 아리는 개인화된 방역 체계, 특히나 집에 격리되어 있으라는 거리두기 담론이 해답처럼 여겨지는 실정 속에서 코로나 이전과 다를 바 없이 경계와 퇴치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는 홈리스들의 재난 상황을 살펴봅니다. 노랑은 낯선 이와 거리두기를 할 수 없을뿐 아니라 되려 거리두기가 생존을 위협하는 성매매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성노동자 활동가 여름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성노동자들은 현 페미니즘 논의에 쉽게 포섭되지 못하는 종류의 폭력과 취약성을 경험하고 있어, 해당 글은 결국 삶의 조건과 존엄, 사회적 인정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위 카테고리의 이름은 이청준의 소설 제목을 빌려 ‘당신들의 천국’으로 지었습니다. 약자들을 위해 규범 사회에서 고안한 대책과 시혜적인 판단이 당사자의 현실이나 필요와는 다소 간극이 있는 상황을 그려내며 당장의 논의를 촉구하는 이 작품은 ‘우리들의 천국’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문제의식과 더불어 명징한 소설 제목까지도 위 세 글이 지닌 단호함이나 의무감과 공명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두 번째 카테고리에서는 편집위원들의 애정이 한가득 담긴 작품들을 중심으로 우리를 아프게도, 행복하게도 만들어주는 소통과 관계맺음 방식에 대해 질문합니다. 카테고리 이름은 삶의 면면을 다정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김금희의 소설,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에서 땄습니다. 빙봉은 <벌새>와 두 편의 소설을 통해, 혼란한 세상 속에서도 우리가 서로 살아가게끔 만드는 순간을 찾아내어 찬찬히 꿰어나갑니다. 연자는 김초엽, 정세랑 소설을 중심으로 최근 새로이 부상하고 있는 SF 장르 속의 여성주의적 상상력, 그리고 약자, 자연과 함께하는 연결의 정치에 대해 탐구합니다. 이미 12호에서 레즈비언 영화 속 세심한 관계맺음에 대한 글을 썼던 노랑은 단, 물결, 이응을 모아 각자가 좋아하는 퀴어 영화를 몽땅 쏟아붓고 비교분석(덕질)하는 좌담을 진행했습니다. 이들은 함께 기억과 경험의 물리성, 미묘한 감정과 관계맺음, 그리고 현재 필요한 ‘퀴어한' 서사와 균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번에는 잠시 반가운 기획을 살펴볼까요. 독자분들의 꾸준한 애정에 힘입어 12호 공동기획이었던 비로그(b-log)를 다시 가져왔습니다. 빙봉과 아리가 고안한 네 가지 공통 키워드를 가지고 자유로운 글쓰기를 진행했고, 소설, 시, 수필 등 다양한 장르의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정해진 키워드에서 출발하지만 편집위원들이 선택하는 장르와 글의 톤에 따라 다채롭게 뻗어가는 점이 비로그만의 재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전 비로그 글들과 비교해 읽어보아도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공일오비가 지금껏 실은 글에 비해 짧고 가벼운 글 모음이니 모쪼록 쉬어가는 마음으로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카테고리에서 이응은 어딘가에 온전하게 포섭되고 싶은 마음과 학과에 정체성을 의탁하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지 못해, 흔들리고 고민하며 ‘나다움’을 좇아보던 과정을 진솔하게 그려냈습니다. 연자와 아리가 공동 집필한 LG 트윈타워 노조 투쟁 답사기와 희의 교내노동자 인터뷰는 맞물리는 글로, 청소노동자를 둘러싼 교내외의 사건들이 간접고용의 구조 속에서 서로 닮은 듯 다르게 발생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2019년부터 공일오비와 연세대 언론 연대체 ‘아코디언’에서 꾸준히 규탄했던 악덕 업체 코비컴퍼니가 나가고 새로운 회사 ONE E&S가 들어왔지만, 이전의 문제들은 여전히 끈질기게 남아 겹쳐 보입니다. 이름만 다르게 붙여지는 동일한 폭력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새로이 논의할 수 있을까요. 이렇듯 저마다의 문제와 고민을 떠안은 채, 서로를 지켜내고 살아가기를 멈추지 않고 싶은 마음은 황정은의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에 빗대어 표현해보았습니다.


공일오비는 이전부터 사회 구조 찬양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만, 코로나와 그에 대한 대응으로부터 우리가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현재 조명 받고 있는 인간의 놀라운 기술이나 성장과는 더더욱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호 표지에는 마스크를 낀 사람과 천산갑이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천산갑은 밍크와 함께 코로나19의 첫 중간 숙주로 지목되어 학살당했습니다. 비인간 동물의 대규모 학살은 코로나 이전부터 감염에 대한 인간의 ‘대응’으로서 꾸준히 반복되어왔고, 이런 학살의 현장이 되곤 하는 공장식 축산업이 인수공통감염병을 꾸준히 양산해온 ‘원인'이기도 하다는 점을 함께 기억하고 싶습니다. 공장식 축산도, 전염병의 확산을 요긴하게 만든 밀집된 노동과 거주 환경도, 효율과 자본 축적을 가장 중시하는 경제 논리와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코로나 동안 수많은 위기를 초래했고, ‘포스트 코로나'의 안전성 또한 해칠 소지가 다분한 자본주의적 생명 착취 시스템이 더욱 비판적으로 논의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 의아할 뿐입니다. 표지 속의 사람과 천산갑은 청록색, 주황색, 그리고 회색의 세 가지 색을 공유합니다. 같은 자연의 재료를 가지고 두 존재가 공생하는 느낌을 담고자 했습니다. 결국, 코로나를 거치면서 우리가 확실하게 경험한 것은 인간 또한 다른 모든 생명과 같이 취약하므로, 상호의존과 돌봄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점이 아닐까요. 코로나 이후에 다가올 ‘다른’ 세계가 있다면 그곳은 착취에 맞서 더욱 연결되고, 지속가능한 협력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를 상상해봅니다. 공일오비의 독자분들도 이러한 ‘우리들의 천국'을 실현하기 위해 ‘계속해서’, 그리고 ‘오래도록’ 고민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여정에서 공일오비 14호가 함께하며 여러분을 든든하게 끌어안아 주는 느낌이면 좋겠습니다.



편집장 노랑 (raryoo613@gmail.com), 편집장 연자 (candella96@naver.com)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