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2. 서글서글
대학 입시에 지쳐있던 열아홉이었다. 정답이 아니면 틀렸다고 말하는 문제집과 학교 학원 독서실의 반복되는 루트에 점점 힘이 들었다. 정해진 규격에 나를 밀어 넣는 일을 그만하고 싶었다. 나는 1등급 학생이 아닌 일드를 좋아하는 드라마 덕후였고. 꽉 막힌 독서실 책상에서 눈치 보며 초콜릿 까먹는 학생이 아닌, 탁 트인 산 정상에 서서 힘껏 소리치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만큼 딱딱한 틀과 규격을 안 좋아하던, 아니 혐오하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혐오’까지는 아니지만, 싫어하는 건 여전하다.)
반 친구들은 대학에 가겠다고 자소서를 쓰던 때, 나는 지나치게 사적인 나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빈티지 옷과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났던 첫사랑(..)에게 보내는 편지, 단짝 친구와 여행 가서 싸웠던 이야기 같은 것들을.
혼자만 쓰니 쉽게 외로워졌다. 내 이야기를 그 누구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에 무기력해졌고, 쓰는 일을 그만해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다. 수능을 코앞에 둔 친구들에게 입시를 벗어난 일들은 모두 사치였으니, 내 글을 읽어달라는 물음도 쉽사리 내뱉을 수 없었다. 역시, 나는 태어날 때부터 남들과 다른 길을 가야만 하는 운명이었을까.. 하는 중2병, 아니 고3병의 생각에 빠져들 때쯤 공고를 하나 발견했다.
생애출판. 당신의 삶을 책으로 담아보세요.
열아홉 살. 누군가는 어리고 멋모르는 때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 누구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아이였다. 그런 내게 ‘당신의 삶을 책으로 담아보라’니. 이거 날 위한 프로그램인걸? 고민 없이 바로 신청 버튼을 눌렀다.
'생애출판'은 소수의 구미 시민을 선정하여 독립출판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지자체 프로그램이었다. 책의 기획부터 디자인 편집, 출판까지 전문 강사의 수업을 들으며 함께할 수 있었고 더군다나 이 모든 건 ‘무료’였다! (당시 한 달 용돈 삼만 원.)
그때 처음으로 진서하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 진서하 작가님의 문장을 좋아한다. 글은 사람을 닮는다고, 작가님의 글을 읽을 때면 자꾸만 도서관에서 강의하던 작가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직 난 그녀를 잘 알지 못하고 지금도 잘은 모르지만, 읽을수록 알아가고 싶고 궁금해진다. 시니컬하면서도 다정한 문체가 중독스럽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히 담백한 다정함이 자꾸만 구미를 당기게 한다.
그녀의 두 번째 책 <상온보관의 마음>을 읽던 도중 궁금했다. 서울을 동경하던 그녀는 어떻게 지역 작가가 되었을까? 그녀에게 지금 구미는 어떤 온도로 닿아있을까? 아직도 그녀는 서울말을 쓸까? 숱한 질문을 품고서 연락을 드렸고, 마침내 받게 된 답장.
‘우리 한 번 만날래요?’
생애 최고의 고백이었다. 물론 그 ‘만남’은 ‘meeting’의 만남임에도, 그 어떤 고백보다 로맨틱한 고백이었다!
<돌아오는 새벽은 아무런 답이 아니다>를 시작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담백한 다정함을 선물해 주고 있는 진서하 작가. 그 담백한 언어를 여러분도 함께하길!
구미를 기반으로 활동을 하고 계시잖아요. 작가님께서 구미를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일단 구미는 제 고향이에요(웃음). 대학에 들어가면서 서울로 상경하게 되었고, 이십 대 중반. 그러니까 한창 취업을 준비할 시즌에 합격 소식을 듣고 첫 출근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어머니가 아프셔서 내려오게 되었어요. 기회를 포기하게 된 거죠.
서울 생활에 아쉬움이 있었을 거 같은데 구미에 정착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고향에 내려와서 다시 살 거라는 생각을 안 했어요. 사실 구미를 별로 안 좋아했거든요. 미워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정도로(웃음). 실제로 중간에 잠깐 올라가서 지낸 적도 있었어요. 그때 서울에 올라가서 지내다 보니··· 문득 외로운 거예요. 쉴 수 없는 생활이 버겁기도 했고요. 어느 순간 내가 바라는 것은 서울이 아닌 곳에서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가 독립서점 ‘책봄’을 만났을 때였는데, 이분들과 함께한다면 구미에서도 살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착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지역의 문제보다는 사람의 문제인 거 같아요. 얼마나 마음 맞는 사람들을 만나는가.
구미에서 에세이 작가로 활동하며 느꼈던 지역성의 장점이 있나요?
저는 지역성이 단점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보통 사람들이 수도권이 아니면 낭떠러지인 것처럼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살아보니까 막상 그렇지도 않고 오히려 작가로서 큰 자산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랐기에 느낄 수 있는 것들은 작가로서 본인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반대로 단점도 있나요?
아쉬운 점은 제가 아직 이곳에서 동료 작가를 만나지는 못했다는 거예요. 글쓰기 강의를 하고 모임도 나가며 나름대로 저와 비슷한 감도로 글을 쓰는 동료 작가를 찾아보려고 시도했지만··· 찾지 못했어요. 여기서 제가 말하는 동료작가는 글을 잘 쓰고 못 쓰고의 문제가 아닌, 비슷한 고민을 나누고 서로의 글을 읽으며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가끔은 ‘너 이걸 왜 이렇게 써!’하며 타박도 하고요(웃음).
요즘 즐기고 계신 취미가 있나요?
서른이 넘어서 처음으로 운동다운 운동을 시작했어요. ‘프리웨이트’라고 기구를 안 쓰고 덤벨이나 바벨을 이용해서 하는 운동이에요. 몸매나 득근을 위해서라기보다··· 진짜 살려고 시작한 건데 재미있더라고요. 확실히 체력이 달라지는 게 느껴져요. 운동을 하기 전에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거나 밤새워서 영상을 보곤 했었는데, 요즘은 러닝머신 타러 갈까? 이래요.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지는 요즘이에요.
작가님의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나요?
이 질문을 받고 되게 오랜만에 시간을 거슬러 가봤어요. 그런데 제가 시인이 되고 싶었더라고요. 초등학교 때까지는 시인이 꿈이었어요. 중학교에 가면서부터 주변의 완력에 의해 서서히 사그라들었는데, 최근에 시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떠올랐어요. 시를 쓰다 보면 쓰는 본인은 되게 안으로 들어가는데 표현할 때는 반의반의 반만 표현하잖아요. 지금까지는 직접적인 방식으로 나를 드러냈다면, 이제 한 발 뒤로 물러서는 변화를 주고 싶어요.
요즘 작가님이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일은 어떤 게 있을까요?
도서관에서 디자인 툴 배우는 강의를 듣고 있어요. 포토샵, 일러스트, 프리미어 프로. 이렇게 세 강좌를 듣고 있는데 재미있더라고요. 제가 심플한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을 되게 좋아해요. 그래서 예전부터 직접 디자인 포스터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유료 클래스 가격을 보게 되면 망설여지고···. 그래서 미루고 미루다 도서관에서 무료로 한다는 소식을 듣고 신청하게 되었어요. 거의 티켓팅처럼 시간 맞춰 놓고 신청했더니 세 강좌 모두 제가 1등으로 신청했더라고요(웃음).
작가님은 어떤 사람이 되려고 하는지 궁금해요.
그냥 움직이는 사람? 나는 내가 그냥 좀 하는 사람이면 좋겠고 그냥 자는 사람이면 좋겠고 그냥 쓰는 사람이면 좋겠는데 사실 그 그냥이 잘 안 되거든요. 저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계속 이유를 찾아요. 또는 흐름을 찾고 맥락을 찾고, 내가 느끼는 어떤 감정의 명칭을 찾아다니고 현상의 이름을 찾아다니고···. 근데 저는 그냥 좀 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고민이 많은 스타일이고 겁도 좀 있는 스타일이라 글 쓰는 데도 시간이 되게 오래 걸린 거 같거든요. 뭐든 해보니까 되게 좋았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도 다 좋았기 때문에. 이 나이 되었으면 이제 그냥 할 때도 되지 않나··· (웃음).
<상온보관의 마음> 중 '서울과 커피' 대목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서울에 녹아들려고 애썼다'는 표현이 마음에 남았거든요.
그럴 필요 없었지만, 서울의 무엇이 되고 싶었던 스무 살의 나였습니다. 결국 나는 서울의 그 무엇도 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적어도 커피 한 잔만큼은 오늘의 내게까지 남아있습니다.
<상온보관의 마음> 中 서울과 커피, 149p
저도 수도권에서 대학 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으로서, 지방(지역) 사람을 바라보는 차별 아닌 차별적 시선을 느껴요. 문단의 끝에서 '그럴 필요 없었지만'이라고 쓰신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해요. 시간이 지난 지금, '서울에 녹아들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신 걸까요?
대학 다닐 때는 서울이 저의 모든 기준이었어요. 지방에서 온 거를 튀지 않으려고 서울의 구 위치를 대강 외웠어요. 서울 친구들은 강남 강북 뭐 이렇게 이야기하곤 하잖아요. 지하철 노선도 파악해 두곤 했어요. 뭔가 핫한 공간이 있으면 가는 길을 거의 달달 외우다시피 해서 ‘여기로 가면 된다’ 이렇게 이야기해 보기도 하고···. 누구보다 서울의 무엇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그 서울의 어떤 것들이 저랑 잘 맞기도 했고요. 그때는 제가 저를 바라보는 눈이 제 안에 있지 않았어요. 항상 밖에서 내가 어떻게 하는지를 감시하는 아이였거든요.
지방에서 왔지만 촌스럽지 않은 애가 되고 싶었어요. 성공했고요.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그게 되게 행복하지 않더라고요. 스스로 안정을 찾아가면서 서서히 깨달았던 거 같아요. 내가 누구한테 굳이 맞출 필요 없고, 어떠한 사람으로 보이려고 굳이 애쓸 필요가 없다는 걸.
글, 편집 : 김예빈
사진 : 김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