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mmer Breeze May 27. 2023

시다 셔 신포도

진짜 신 거 맞아?

SNS에서 예술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광고를 봤다. 관심이 많았던 글쓰기와 그림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해볼까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매주 월요일마다 3개월 동안 참여해야 한다는 말에 ‘못 하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그 프로그램의 단점을 찾으며 내가 참여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만들었다. 지금 공부에만 쏟을 시간도 없어서, 야근이 많아서, 장소가 멀어서…


신포도 그 자체였다.


지금 바라는 바가 있고 그것을 이루고자 한다면, 특히 ‘효율’을 따진다면 현재의 모든 에너지를 그 목표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다. 직장을 다니며 자격증 시험 준비에 친구도 여가도 잠시 끊고 퇴근 후 모든 시간을 공부에만 집중하는 것, 저축을 위해 장바구니에 담아뒀던 옷을 삭제하는 것, 다이어트를 위해 먹고 싶은 음식을 참는 것처럼.


그런데 365일을 일관적으로 효율을 따지기엔 변수가 너무 많다. 세상엔 재미있는 것들이 넘쳐나고 하고 싶은 것들은 꾸준히 생긴다. 그리고 가끔 그중 몇 개는 내가 몰랐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스펙트럼을 넓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 순간에만 찾아오는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르는데 지금 해야 할 것이 많다는 이유로 머뭇거린다. ‘저건 분명 신포도야’라며 포도를 따는 걸 포기한 굶주린 여우 같이.

모든 것을 다 하고, 갖는 것이 욕심이란 이유를 들지만 솔직히 도전에 대한 용기가 없어서가 맞는 설명이다. 잘 해낼 자신이 없어서 지금은 불가피한 선택이란 그럴듯한 이름으로 시작도 전에 포기한다.


‘여우와 신포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우는 포도를 따려고 수십 번 시도를 한다. 시도를 전혀 하지 않는 게 아니다. 재만 남을 정도로 불태워 노력했지만 이룰 수 없어 그제야 그만두는 책임감 있고 멋있는 행동이다. 이런 여우와 동일시하는 건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내 삶인데 욕심부리는 게 잘못된 행동일까? 남에게 피해 주는 것 없이 스스로에게 좀 더 좋은 것을 주고 좋은 경험을 하게 하고 싶은 것뿐인데 이 정도 욕심은 충분히 부릴 자격이 있다.


결국 난 고민 끝에 그 수업을 듣는 걸 선택했다. 이미 저질렀으니 어떻게든 해내야 된다는 생각으로 학업과 직장, 수업을 병행했다.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수업에서 다양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음악을 배우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보냈다. 3개월 뒤인 오늘 자격증 시험 1차 합격이란 의미 있는 결과를 얻기도 했다. 과거에 내가 걱정하고 나열했던 논리들은 그냥 근거 없는 겁일 뿐이었다.


‘현실적이지 못하다, 공상만 찾는다’라는 결론은 나중에 판단해도 늦지 않다. 확증편향으로 맞다고 생각하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와 논리만 찾게 되기 때문에 ‘못 한다’라는 관점에선 ‘할 수 없는’ 이유만 찾게 되고, ‘할 수 있다’라는 관점에선 ‘어떻게든지 가능한 방법’을 찾게 된다. 일단 ‘할 수 있다’라는 방향으로. 시선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신포도도 입 안에 넣어 봐야 단지, 신지 알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완벽한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