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망쳤다고 느껴질 때
금요일 저녁, 쉬는 날에 어떤 걸 해야 할지 계획을 세운다. 늦어도 아침 9시에는 일어나서 밀려있던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틈틈이 운동도 하고. ‘갓생’의 완벽한 하루를 보낼 생각에 기대하며 잠든다.
그런데 다음날, 상쾌하게 일어나 시계를 보니 12시가 넘은 걸 알게 된다.
어제 하려고 예상했던 모든 것들이 벌써부터 어그러졌다는 생각에 짜증이 확 밀려온다. 늦게 일어나라 한 사람도 없고 내 스스로 그렇게 일어난 거라 애꿎은 핸드폰 알람만 탓한다.
이미 하루를 망쳐버렸다는 느낌에 침대에 누워 그냥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버린다. 뒹굴뒹굴 거려서 몸은 편하지만 점점 찜찜해지는 마음은 벗어날 수 없다.
숫자만 커져가는 시계를 보며 나의 하루는 이게 아니었는데란 후회만 가득 차오른다. 그리곤 10시간도 넘게 남은 하루를 망쳐야 하는 이유가 시작이 망했기 때문이라는 게 매우 아깝다는 걸 깨닫는다.
그림을 그릴 때도 실수하면 돌이킬 수 없단 생각에 조금이라도 비뚤어진 선을 그어버리면 그만두고 싶어 진다. 하지만 잘못 칠한 물감도 마른 후에 두꺼운 흰색 물감을 덮어버리면 흔적은 남아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아날로그인 현실은 컨트롤 z로 없었던 일로 만들 순 없지만 그다음 행동으로 지나간 시간의 흔적은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늦잠이 필요한 휴식이 될지, 이유 없는 게으름이 될지 의미가 바뀌는 것처럼. 그에 따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시간에 대해 지불하는 비용도 오전만이냐, 하루 전체냐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인정하는 건 고통스럽다. 차라리 아예 망쳐버려서 포기하는 것이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파괴하고 싶은 충동은 모순적이게도 매우 소중하기 때문에 생긴다. 일주일에 이틀밖에 안 돼서,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라서 모든 순간이 오점 없이 아름답고 완벽하길 바라니까.
하지만 시작이 어긋났다고 전체를 망했다고 이르기엔 너무나도 이르다. 기분 나쁨과 짜증에 져서 이 감정들에 하루 전체를 내어주는 것이 진짜 하루를 망치는 길이다.
사람이라서 계획이 틀어지고 예상치 못한 일에 빠지는 건 당연하다. 완벽을 가하는 것은 기계에게 잠시 양보하고 남은 시간 못다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소중한 하루를 정말 소중하게 보내는 방법이다.
이제 침대에서 일어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