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에
드라마를 보면 아이 하원시간을 맞추기 위해 정신없이 퇴근하는 워킹맘 워킹 대디의 모습이 나오곤 한다. 회식 대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선택하고 아이가 아플 땐 연차를 포기하고 육아휴직을 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해하는 모습은 과장이 아닌 현실이다. 몇 년 뒤 나의 미래가 될 수도 있는 이 장면들은 내게 고민을 던진다.
선생님처럼 아이를 키우기 좋은 직업을 가지라는 말을 자주 들었었다. 어렸을 땐 크게 개의치 않았는데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경력 단절이 된 사람들을 보면서 왜 어른들이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된다.
대졸 여성의 경력 단절은 L자형을 그리는데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면 이전 직장과 같은 수준으로 다시 돌아가기 어려워진다. 그렇게 열심히 경쟁해서 입시와 취업의 문을 뚫었는데 그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건 단지 여성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에 전체 육아휴직자들 중 남성들의 육아휴직률은 30%를 채 넘기지 못한다.
저출산으로 정책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내가 본 선배들, 상사, 부모님을 생각하면 희망찬 설렘보단 막연한 두려움이 더 크다.
내가 그들의 입장이 된다면 나도 그들과 같은 선택을 하게 될까.
일과 가정을 바라볼 때 분리해서 무관하게 보는 관점, 어느 한쪽에서 얻는 만족이 다른 한쪽을 해 낼 수 있는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보는 보상관점, 어느 한쪽의 영향이 다른 쪽에 영향을 미치는 파급 관점이 있다.
삶에서 일과 가정을 완벽하게 분리해 낼 수는 없기 때문에 윈윈 하는 보상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이를 챙겨주지 못한 죄책감과 승진 압력이란 파국이 발생할 확률이 크다. 일에도, 가정에도 완전히 집중하지 못해서 어느 쪽도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말이다.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도 있는 생활지향적 경력경로는 가정과 일을 병행할 수 있도록 파트타임 업무를 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전문 프리랜서가 아닌 이상 파트타임 잡은 대부분 풀타임 잡보다 업무 조건이 열악하고 페이도 낮다. 대개 단순업무로 커리어 성장과도 거리가 멀다.
일과 가정은 양 극단에 있는 반대가 아니지만 결국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어느 한쪽은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는 기로에 놓이게 된다.
일 욕심이 넘치는 나에겐 일을 포기하는 건 상상할 수 없어서 이 경력 경로는 맞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따뜻한 가정을 꾸리면 어떨까도 생각한다. 가족이 주는 안정감, 조건 없는 사랑 이런 것들은 직장에서 얻을 수 없는 귀중한 것들이다. 지금 사회가 자아실현과 직업적 성공이 중요하게 여긴다고 해서 가정의 비중을 높게 두는 걸 결코 낮게 평가할 수 없다. 스스로를 먹이고 입히고 보살피는 것도 어려운데 다른 누군가까지 돌보는 건 정말 위대하고 대단해 박수받아 마땅하다.
의도치 않게 난 어딜 가나 항상 맡은 업무에 책임감이 크다는 피드백을 듣게 되는데 업무가 아닌 ‘나 말고 다른 존재‘는 더 큰 책임감을 안길 것이다. 과연 내가 그 무게를 견딜 자격이 있는가를 질문하면 자신 있게 대답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난 가정을 위해 일을 중단하기도, 일을 위해서 가정에 소홀하기도 싫다. 완벽한 슈퍼 우먼이 되고 싶은 건 아니다. 애초에 그건 불가능하니까.
그냥 일을 중단하더라도 그 이유가 타인이 아니라 ‘나’에게 있으면 좋겠고 어쩔 수 없이 가정에 소홀하게 되더라도 그 이유가 일이 아니라 ‘나’ 이면 좋겠다. 일을 계속하더라도 가정이 생기더라도 삶을 살아가는 건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나 자신이니까.
삶의 목적이 내가 아니게 된 순간, 진정으로 행복하고 자유로워질 수 없다. 타인이나 일을 위해 살면 내가 희생한 만큼 돌려받을 수 있길 기대하게 되고 결과가 기대 이하일 때 실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의 만족과 좌절을 결정하는 요인이 내가 아닌 외부에 있게 된다. 슬프지만 내 마음과 달리 타인과 일은 내가 희생한 것을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때론 당연하게 여길 수도 있다.
화목한 가족이 한 집에 웃으며 지내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삶이지만 커가면서 이 평범함이 가장 이루기 어렵단 걸 느낀다. 이렇게 어려운 것을 이루기 위한 부모님의 노력이 존경스럽다. 언젠가 그들과 같은 진짜 어른이 될 수 있길.
일과 가정 사이 ‘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