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잊을 수 없는 존재, 세계가 바뀌더라도
'1Q84' 라는 책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초등학생 때이다. 정확한 시기는 2009년 초등학교 5학년. 학교 담임 선생님은 책과 명상을 좋아하시던 그런 분이셨다. 항상 아침 조회시간에 '황하'라는 곡에 맞추어 다 같이 명상을 했었다. 그리고 명상이 끝난 뒤에는 짧게 선생님의 최근 생각들을 전해주셨다. 아마도 그때였을 것이다. 내가 '1Q84'라는 책에 대해 알게 된 때는.
'1Q84'는 2009년 그 당시 장안의 화제였다. 어린 나이였던 나조차 그 책이 화제라는 것을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책에 대해 언급하셨을 때, '1Q84'의 존재는 정확히 내 안에 각인되었다. 물론 궁금증으로 말이다. '1Q84는 도대체 무슨 책이길래 이렇게 난리일까?', '언젠가는 읽어봐야지' 정도의 각인. 그 당시 나는 너무나도 어린 초등학교 5학년이었고, 독서를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그 책의 두께와 깊이는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책의 제목을 IQ84로 헷갈려하면서 얕은 각인은 잊혀져 버렸다.
시간이 흘러, 잊혀진 '1Q84'에 대한 각인이 돌아온 것은 군대에 있을 때였다. 군대에서 우연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을 읽었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하루키의 책을 더 읽고 싶어 찾아보던 중, 2009년 화제였던 '1Q84'가 하루키의 책이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잊혀진 책의 각인은 2009년에서 10년이 지난 2019년 우연히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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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책의 존재를 깨닫는데 약 10년에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어떤 존재는 20년이 걸려도 잊혀지지 않는다. 책의 주인공인 덴고와 아오마메처럼 말이다. 덴고와 아오마메는 1984년에 살고 있다. 둘의 첫 만남은 20년 전 초등학교 5학년 때이다. 아오마메는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덴고에게 다가와 아무말 없이 덴고의 손을 잡았다. 그 시간은 아주 짧았지만 존재에 대한 각인은 정확히 새겨졌다.
각인의 시간만 따지고 보자면, 덴고와 아오마메의 각인은 나와 '1Q84'라는 책의 각인과 별 다를 바가 없다. 그만큼 짧게 새겨진 각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와 깊이는 비교할 수가 없다. 나에게 있어 '1Q84'라는 책은 사소하고 가벼운 존재여서 10년 동안 잊고 살았다. 반면, 덴고와 아오마메는 서로의 존재를 20년동안 잊어버리지 않았다. 그 존재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중요해서 시간의 흐름을 넘어 세계가 바뀌어도 잊지 않았다. 시간이 20년이 지났어도 세계가 1984년에서 1Q84년으로 바뀌었어도 서로의 존재를 잊지 않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사이트누구에게나 절대 잊을 수 없는 존재가 있다. 그 존재는 각기 다르겠지만 분명 세계가 바뀌어도, 죽음이 다가와도 결코 잊을 수 없을 존재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존재를 인식한 계기와 시간은 어떠할까? 가족처럼 삶에 탄생과 함께 처음부터 각인된 존재는 시간만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잊지 못할 존재인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덴고와 아오마메처럼 극히 짧은 시간의 만남이었음에도 잊지 못할 존재로 각인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존재의 각인에 있어서 시간보다 중요한 것은 '의미'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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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삶에 있어 의미가 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할까? 책 속에서 덴고와 아오마메는 철저히 소외된 자들이다. 겉보기에는 괜찮은 직장과 남부럽지 않은 능력과 외모, 부자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경제력을 갖춘 사회인으로 보이지만 그 속내는 그렇지 못하다. 사랑받지 못한 가정 속에서 누구에게 기대지 못하고 살아남기 위해 살아온 그들은 인생의 의미를 느끼지 못한 채 소외되며 살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유일한 삶의 의미라는 것은 초등학교 그 짧은 순간에 서로의 손잡음이었다. 덴고와 아오마메는 서로의 존재를 삶의 의미로 여겼고, 나의 존재가 곧 너의 의미가 되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리고 그 바람은 1984년이 1Q84년으로 바뀌고 이루어졌다.
세계가 바뀌어서 그 바람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아마 1984년이어도 그 바람은 이루어졌을 것이며, 만남 자체가 없었어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 바람이 말도 안 되는 기적 같은 일로 보이겠지만, 달이 하나인 세계에서 두 개인 세계로 바뀐 변화에 비하면 바람은 사소하게 느껴진다. 중요한 것은 '나'라는 존재가 '너' 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의미가 된 것에 있다.
'1Q84' 는 생각보다 쉽게 읽을 수는 없었다. 책의 이야기는 잘 읽혔지만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책을 읽기에 앞서 조지 오웰의 '1984'를 읽은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1Q84' 는 나에게 있어 존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한 책으로 의미가 남겨졌다. 글을 읽고 서평을 쓸 생각을 못해서 책의 좋았던 구절을 마지막 3권에서만 뽑게 되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존재로 의미가 남겨졌으면 좋겠다.
인생이란 단순히 일련의 부조리한, 어떤 경우에는 조잡하기 짝이 없는 과정의 귀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 이를테면 말이지". 그녀는 말했다. "덴고 군에게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어떤 거야?"
"모르겠어." 덴고는 아다치 구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모르겠어."
다시 그 마을에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덴고는 그렇게 생각했다. 적어도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은. 물론 백 퍼센트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는 일 따위, 이 세계에 단 하나도 없다. 하지만 그 바닷가 마을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없을 터였다.
비밀을 알아봤자 그것이 나를 어디로도 데려가 주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왜 그것이 자신을 어디라도 데려가 주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그 이유를 정확히 알게 된다면, 나는 어쩌면 어딘가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