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1일 기록
글을 쓰는 지금 오전 2시 26분, 심심한 시간이다.
오랜만에 찾아오는 심심한 시간이다. 언제부터인가 심심한 시간은 잘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아주 꼬마였을 시절에는 일요일 오전은 나에게 심심한 시간이었다.
그 시절은 할머니가 우리 집에서 머물고 지내셨을 때였다. 그 시절에 나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유치원 친구들을 부를 수도, 동네 친구들을 부를 수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어떻게 부르는지 몰랐다.
그때는 친구를 부르지도 못하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어릴 적 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습관화되어 있었다. 부모님은 항상 나를 저녁 9시에 재우셨고 보통 6시나 7시에 일어났던 것 같다. 일요일 오전도 마찬가지였다. 주말이라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법은 없었다.
그러나 부모님과 할머니에게 주말은 평소와 달랐다. 일요일이 휴일인 부모님은 아침을 챙겨주시고 항상 낮잠을 주무셨다. 연세가 있으셔서 그러신 건지, 아니면 부모님의 달콤한 낮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으신 건지, 할머니도 역시 그 시간에는 같이 잠을 주무셨다.
그렇게 집이 조용해지면 누나와 나는 한없이 심심해졌다. 시끄럽게 떠들 수도, TV를 볼 수 도 없었다. 그렇다고 같이 낮잠을 자기에는 눈이 너무 똘망똘망했다. 그렇게 심심한 시간은 어린 나에게 찾아왔고, 나는 거실 시계의 짹깍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멍해져 버렸다.
나이가 들면서 심심한 시간은 거의 찾아오지 않았다. 이제는 심심하면 친구를 부를 수 도 있고, TV를 볼 수 다. 또한 삶 역시 시간이 흘러갈수록 내게 심심한 시간을 부여하지 않았다. 삶은 그러한 심심한 시간들을 좀 더 쓸모 있는 시간으로 변화하기를 요구했다.
그런데 웃긴 게, 정말 가끔 심심한 시간이 온다. 이것저것 심심함을 피하기 위해 애써봐도 찾아오는 시간, 지금 그 시간이 왔다. 일주일에 한 번 찾아오는 심심한 시간은 어릴 적 나에게는 기피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지금 24살이 된 나에게 심심한 시간은 왠지 반갑기도 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심심한 시간이 찾아오면 장롱 2층을 아지트 삼아 누나와 놀던 그 순수함이 그립다는 것.
심심한 시간에 순수했던 시절의 심심한 시간이 생각이 났다. 그냥, 그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