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eSoo Mar 08. 2023

화해

관계의 터닝 포인트 II

바쁜 하루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허전하고 공허했다. 

매일 전화를 걸어오던 그의 연락도 없었고 그녀도 굳이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렇듯 여유의 시간이 생겨나니 그녀는 차분히 그 순간을 돌이켜 볼 수 있었다.


'왜 그때 그렇게 말했을까? 내가 한 발짝 물러서거나 속 마음을 솔직히 전달했다면 그도 그렇게 화를 내지는 않았을 텐데...'

그녀는 지나간 순간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곁에 있던 누군가가 사라진 채 이렇게 지내는 것이 실은 고통이기도 했다. 그녀는 솔직하게 그때의 마음을 그에게 전하기로 했다. 


그때 내가 미안했어. 
사실은 네가 기분 나빠하는 걸 눈치챘는데도  내가 그 사람에 대해 그렇게 말한 건 미안해.
너의 엄마와 관련된 것도 마찬가지고. 
이 말은 해야 할 것 같아서...


잠들기 전 나름 신중히 단어들을 골라 그에게 마음을 전했다. 

그런 후 며칠이 더 지나도 그의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 주의 금요일 오후가 되어갈 때쯤 그녀를 만나기로 마음먹고 그에게 카톡을 보냈다. 

'오늘 저녁 같이 먹을래?'


퇴근 시간이 되어가도 연락이 오지 않자 그녀는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어 보았다. 

"띠리리 띠리리 띠리리"

"여보세요?" 다급하게 받는 그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안녕. 문자에 답이 없길래 전화했어."

"응 봤어. 바빠서 답을 못했어. 저녁 같이 먹자고 했지? 나 조금 있으면 정리하고 끝날 거니까 우리 집으로 일단 올래?"

그의 목소리가 밝고 다정했다. 

'서운한 마음이 풀린 건가?' 그녀가 생각했다. 

"그래. 그럼 너네 집에 가 있을게." 




그녀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그의 집에 들어섰다. 

익숙한 향기가 그녀의 코를 자극했다. 왠지 그 냄새로부터 그에게 느껴지는 편안함이 같이 전해오는 듯했다.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그를 기다리는 중,  도어록 소리가 들려왔다. 

'띠띠띠띠 띠리릭'

문을 열고 그가 들어왔다. 몇 주만에 마주하는 것이어서 그런지 그녀는 약간의 설렘과 이 전의 경험 때문인지 두려운 마음도 함께 들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의 표정은 밝았고 그 얼굴을 본 그녀의 마음에도 안도감이 들었다.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갔다. 

"저녁 뭐 먹고 싶어?" 그녀가 먼저 물었다. 

"삼겹살이지. 오랜만이잖아~"

"ㅎㅎ 그러게 한 동안 못 먹었다." 

"저녁 먹으러 가기 전에 잠깐 운동 좀 하고 가자. 너도 같이 해~" 그가 말했다.

"아니야. 나 잠깐 볼 게 있어서 어서 운동하고 삼겹살 먹으러 가자."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그간의 못했던 일상 이야기를 반찬삼아 맛있게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니 그녀는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마음이 상했을까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을 사서 했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거실에 자리를 잡자 갑자기 그가 입을 열었다. 

"그동안 생각을 많이 했었어. 너에게 내가 나의 지난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던 것 같아. 내가 20대 일할 때 어머니가 나를 많이 도와주셨거든. 그때는 돈 벌어야지 하는 마음에 어머니를 많이 챙겨드리지 못했었어. 그런 마음들이 시간이 지나니 고마움과 아픔으로 남아 있었는데. 그날 너의 말을 들으니 그런 것들이 같이 밀려오면서 너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너는 친구로서 가볍게 이야기한 것 일수도 있는데 내가 오히려 민감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 "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고 속 마음을 말을 이어가던 그가 탁자 위로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까 네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다른 친구 같았으면 연락을 끊었겠지만 너랑은 헤어지고 싶지 않아..."


순간 그녀는 벅찬 감정이 밀려왔다.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저 말은 무슨 뜻일까?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단 뜻일까? 아니면 친구로서 관계를 계속 이어가고 싶단 뜻일까? 이제 나를 친구가 아닌 연인으로 생각한다는 걸까?'

많은 생각들과 궁금증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어떻게 질문을 해야 할지 망설이다 결국 그녀는 아무 질문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가슴을 짓누르던 고통이 사라짐을 느꼈다. 

'다행이다. 다시 편하게 지낼 수 있겠지. 그냥 이렇게 지내면 되지 않을까? 꼭 친구나 아님 연인으로 선을 분명히 그어야만 그 관계가 이어질 수 있는 것일까?'

그녀는 편한 쪽으로 생각을 이어갔다. 그런 그녀에게 그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너랑 헤어지고 싶지 않아.' 

왠지 그녀에게 이 말은 앞으로도 그와 계속 함께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들은 화해를 했고, 관계의 이름을 정하기 보단 함께 하기를 선택했다.  또한 그녀에게 지금과 다른 미래에 대한 기대감 마저 들게 했다. 


그렇게 그들의 가장 길었던 공백의 시간은 끝났고 여느 날처럼 지내는 듯 시간은 흘러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