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터닝 포인트 I
여느 때와 같은 날이었다.
퇴근할 무렵 그에게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끝났어?"
"응, 이제 막 주차장 나가는 중이야."
"오늘 저녁 같이 할까? 나 갈비탕이 먹고 싶은데,,"
"또 고기가 당기나 보네. 그럼 너의 집으로 갈게. 어디 가고 싶은지 생각해 봐. "
"알았어. 그럼 좀 있다가 봐."
'삐삐삐 삑'
그녀의 그의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기 때문에 초인종을 누르는 대신 문을 열고 들어선다.
어디선가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헬로~ 어서 와."
그의 집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향기가 난다.
그녀는 지금 그의 집에 와있음을 그 향기를 통해 다시 깨닫는다.
살짝 웃으며 그녀가 그에게 말을 건넨다.
"너 냄새가 난다."
그의 눈이 알 수 없다는 듯 쳐다보더니 옷 냄새를 킁킁 맡는다.
"아로마 뿌렸는데, 나 빨래도 자주 해."
"하하하하 그게 아니라 너네 집에 오면 나는 특유의 향기가 있어. 그나저나 어디로 가서 먹을지 정했어?"
검색으로 맛집 찾기는 언제나 그의 몫이었다.
"걸어서 한 20분쯤 가면 갈비 찜하는 데가 있어. 걷는 것 괜찮지?"
그녀가 발목이 좋지 않아 고생한 걸 아는 그가 다정하게 그녀의 의사를 물었다.
"응, 그 정도는 괜찮아. 얼렁 가자~ 나 배고파."
"알았어. 가자~"
담배와 술을 하지 않는 그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하나의 큰 즐거움 중에 하나였다. 그녀는 술 한잔을 기울이며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실은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그 점이 더 좋았다.
그래서인지 그가 맛있는 것을 먹자는 제안을 거절해 본 적이 없다. 물론 날로 늘어가는 몸무게가 살짝 고민이기는 했다.
"그럼 우리 뭐 먹을까?" 그가 그녀에게 물어본다.
"나는 갈비탕 먹고 싶어. 찜도 맛있을 것 같긴 한데, 가격이 좀 비싼 거 같다. "
"그것도 좋은데 몇 천 원만 더 주면 되는데 갈비찜 먹자. "
"그래 그럼, 찜이니까 국물도 줄것 같은데. "
"그래, 그럼 우동 사리도 시키자. 그리고 나중에 볶음밥도 먹자."
그녀는 아이처럼 좋아하는 그를 바라보며 한 발짝 양보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그가 회사 동료 얘기를 꺼냈다.
그녀도 종종 들어서 알고 있던 인물이었다.
"난 그 사람 진짜 별로인 것 같아. 말은 번드르르하게 위하는 척하는데 실속은 자기가 다 차리고. 너에게 뭔가 불합리하게 이끄는 것 같아. "
그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나도 알아. 하지만 나도 다르면에서 그 사람의 약점을 잡고 있으니까. 그 사람이 상사이니 나도 참고 넘어가는 것도 있고. "
"그래도 진짜 싫어."
그녀가 싫단 소리에 힘을 주어 이야기했다. 그녀는 갑자기 짜증이 나면서 그가 너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번 그녀가 같은 말을 반복한다.
음식이 나오면서 대화가 중단되었고 그들은 음식으로 인해 대화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녀는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그의 기분이 별로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렇지만 왠지 그날은 그렇게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은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무작정 그의 말을 따르기가 싫어졌다.
"그 사람하고 관계를 잘 정리해 봐. 옆에 두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말만 하는 사람은 진짜 별로야."
"넌 왜 네가 싫다는 걸 그렇게 말해. 그건 네가 싫은 거잖아. 그걸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저번에도 그래서 엄마일로 너에게 말했던 것 같은데. "
"그 얘기는 왜 다시 꺼내. 그냥 그때는 내가 상처도 있었고 그런 게 싫다는 거지 너네 엄마가 그렇다는 건 아니잖아."
과거 그의 어머니가 그를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수화기 너머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가 그렇게 아들이라고 굳이 불러야 하냐며 그런 것이 싫다고 한 적이 있었다.
이혼 이후에 자기 아들만 귀중한 줄 아는 '시어머니'들을 겨냥한 말이었지만 아마도 그에게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었고 그 이유로 다툰 적이 있었다. 그 이후 그녀는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내 말은 그런 식으로 네가 싫은 것을 상대방에게 주입하듯이 말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야. 그리고 상대방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
그녀는 그의 직장 동료이야기에 이미 그가 마음이 상해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냥 그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말다툼 아닌 말다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냥 미안하다고 하면 안 돼? 그러면 그냥 풀릴 일이잖아. 왜 너는 아무 말도 안 해?"
그녀의 머릿속엔 수십 가지의 생각과 말들이 오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에게 깊숙이 남아있는 트라우마 같은 행동패턴이었다. 이런 상황에선 설명과 대화가 필요하다는 걸 이성적으로는 알면서도 그녀는 막상 이런 상황에 놓이면 입을 떼지 못했다.
그녀가 아무 말이 없자, 그의 분노 게이지가 올라가는 듯했다. 그의 말이 더 격해지기 전에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집에 도착하자 그녀는 가방을 챙기곤 "나 갈게."라는 말만 남기고는 집을 나왔다.
그도 배웅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며 그녀는 생각했다.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 못한 거지? 자기 어머니에 대해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남자들은 다 왜 그러지. 그렇게 다들 효자였나? (전남편의 기억도 같이 떠올랐다.) 그냥 아들거리는 엄마들이 싫다는 것도 문제가 되나? 그저 드라마에서 보면 그런 엄마들이 자기 아들밖에 모르는 그런 엄마들로 나오니까,,,'
전의 상처를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게 성숙하지 못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왠지 그녀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어린아이처럼 그가 그녀를 이해해 주면 안 될까 하며 객기 아닌 객기를 부려보았지만 결국 남은 건 상처뿐이었다.
집으로 향하며 당분간 연락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떨어져 생각을 해보고 싶었다.
이 뿐 아니라, 친구 아닌 친구인 이 관계가 실은 그녀가 억지스러운 고집을 부리게 만들고 있단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 관계의 한계성을 깨달으며 이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이 옳은지 여기서 정리를 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열흘을 넘게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