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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Soo Aug 15. 2023

헤어질 결심(Separation)

강요받는 삶 vs 주체적인 삶

겉으로는 평온한 날들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점점 그녀의 마음이 전과는 달라져 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30cm 정도의 거리는 필요하다고 하던데 그와 가까워져 갈수록 그녀는 가슴이 조여 오는 답답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주말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갖기가 점점 어려워져 갔다.  물론 그 시간들이 즐겁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점점 그녀는 지쳐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런 마음들이 피어나는 걸 느껴감과 동시에 언제부터인가 그에게 종종 짜증을 내기도 했다. 




그러던 그녀가 느낌으로만 갖고 있던 생각에 각성을 하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이거 어때?" 그녀는 쇼핑몰의 한 사이트에서 발견한 골프모자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녀는 골프 경기에서 선수들이 많이 하고 나오는 선캡 스타일의 모자가 갖고 싶었다. 며칠 뒤 그 둘은 숏 게임을 하러 가기로 약속된 상태였고 그녀는 기쁜 마음에 골프 의류며 모자를 고르느라 한층 들떠 있었다. 

"그런 거 쓰지 마, 머리에 햇빛 비춰서 덥기만 하고 옆에는 다 안 가려져서 얼굴이 다 타."

"그래?? 선수들은 다 이런 거 쓰던데 괜찮지 않을까?"

그는 그녀의 핸드폰을 가로채더니 무엇인가를 찾기 시작했다. "이거 봐봐." 

그가 보여준 것은 벙거지 모자스타일의 모자였다. 

"이런 거 써야 해. 이런 거 써야 공이 날아와 맞아도 덜 아프고 햇빛도 더 가려주고"

"난 그래도 선 캡으로 생긴 게 더 예쁜데,,,"

그의 말과 태도는 단호했고 그녀는 그의 조언대로 모자를 고르기 시작했다.  막상 그 당시에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던 일이었는데, 그 뒤로도 정말 사소한 것 하나하나 그녀에게 하는 말들이  지시 같은 말처럼 강요하는 말처럼 느껴졌고 의견을 물어본 것뿐이었는데 이렇게 쓰면 된다며 이메일을 대신 쓰기도 했다. 나를 위해서 그런 거니 참고 넘어가긴 했지만 그녀는 그녀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다는 걸 알고는 화가 났다. 


정말 아무 일도 아닌 듯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었다. 그런데 그녀는 문득 '왜 내가 또 이러고 있지? 내가 사고 싶은 거 사면되지 왜 그의 말에 따라가고 있는 거지?' 생각을 하며 자신의 행동이 전 남편과 함께 했을 때처럼 움직여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 지난 일이 생각이 났다.

전 남편과 결혼 준비를 할 때 일이었다.  재활용 분리수거 통을 구매했는데 신혼집의 공간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4개의 통을 구매했었다. (좀 과하긴 했다.) 그러다 보니 막상 물건을 받아 원하는 위치에 놓으려고 하니 2개가 들어갈 공간이 부족했다. 마침 그때 새로 산 '김치 냉장고'를 구경한다며 시부모가 집에 와있었고 그녀의 전 남편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요지는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주문을 했다가 그 화냄의 이유였다. 그 당시  전 남편의 어머니가 하는 말이 '물건 살 때 혼자 사고 그러지 마. 나도 그렇고 항상 같이 가서 사거나 물어보고 사. 안 그럼 이런 일이 또 생길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해.'였다.  그때는 결혼 초기이고 시부모 앞에서 말대답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해서 말없이 전 남편만 노려보고 끝났었지만 결국 여자가 마음대로 물건하나 내 마음대로 살 수 없는 것이 당연한 무엇이든 남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그런 구조였던 거였다. 


그녀에게 이런 일들은 한두 번이 아니었었기 때문에 이혼할 때 그녀가 다짐했던 것 중 한 가지가 바로 '내 인생의 주체가 되어 살아가자!'였다.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맞추기만 하다 보면 어느새 그 상대방은 그것은 당연한 것이 되어가고 나의 주체적인 모습은 점점 없어져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집 안을 둘러보았다. 집 안 곳곳에 그의 말로부터 비롯된 변화된 것들이 눈에 띄었다. 또한 그가 좋아하는 골프를 배워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서로의 대화 주제도 대부분 경제이야기 (그가 제일 좋아하는 주제)였다. 때로는 경제와 관련된 영어 뉴스를 프린트해서 읽고 해석하며 FREE TALKING을 하고 (그는 영어 모임을 나가지 않아도 계속 영어를 말하길 원했다.) 뭐가 그리 먹고 싶은 게 많은지 항상 그가 먹고 싶은 메뉴를 찾아 맛집을 돌아다니곤 하였다. (가끔 그녀가 먹고 싶은 것이 생기면 가기도 했지만 워낙 제안을 잘하지 않은 성향이어서 아주 가끔이었다.) 물론 그들은 연인이 아니었으니 음식 값은 항상 반반내야했다. 그녀는 상대적으로 적게 먹고 돈은 반을 부담해야 하니  그것 조차 점점 불공평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상담사와의 통화에서 이런저런 있었던 일들, 즉 그동안 쌓였던 불만들을 쏟아냈다. "그가 말하는 것들이 좋은 것이라는 것은 알겠어요. 그런데 점점 나에게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말한 대로 하지 않으면 몇 번이고 그것을 말해서 강요받는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해요. 하루는 안방의 제 침대 위치를 갑자기 막 바꾸는 거예요. 핸드폰에서 무엇인가를 확인하더니 풍수지리적으로 이 방향이 좋다면서요. 처음엔 그냥 두었는데 며칠 그렇게 자다 보니 저는 그게 불편해서 원래 위치대로 바꾸었어요. 그런데  다음에 그걸 보더니 또 그러는 거예요.  이 쪽은 풍수지리상 안 좋다면서 머리를 그가 정한 침대위치로 놓아야 좋다고요. 이게 별거 아닌 것처럼 들리실 수 있겠지만, 내가 아니라고 해도 난 이게 편하다고 해도 몇 번을 다시 얘기해요. 이런 일들이 쌓이니까 점점 화가 나는 것 같아요."


상담사의 말은 이랬다. 

"사람들 중에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강요하는 남자들이 있어요. 이런 남자들은 연인으로도 남편으로도 좋지 않아요. 제가 희수 씨의 이야기를 듣고 조언해 주고 싶은 것은 이미 희수 씨는 한번 큰 아픈 경험을 했잖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힘든 사람은 만나지 않았으면 해요. 지난 연애와 결혼 그리고 이혼을 통해서 깨달았듯이 희수 씨에게 큰 결단이 필요해요. 아니라는 느낌이 들 때 아직 늦지 않았다는 거예요. 바닥을 보는 것이 얼마나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지 알았으니 그전에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아직 있어요. 지금 그 남자친구가 말을 예쁘게 하고 나를 위해주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아주 작은 일부예요. 희수 씨를 더 아껴주고 사랑해 줄 사람이 반드시 어딘가에 있을 거예요. 이런 관계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이번에는 결단코 큰 결심을 해서 반드시 이 상황에서 벗어나길 바라요. 강요받는 삶에서 벗어나야 해요. 꼭 헤어지길 권합니다. 그래야 희수씨가 오롯이 설 수 있어요.이번엔 반드시 해내길 바래요! "

그녀를 응원하며 한켠으로 염려하는 상담사의 말을 듣고 나니 문득 일 전에 일이 떠올랐다. 집안을 둘러보면 그가 "이제 나처럼 되어 가는군~"이란 말을 뿌듯하게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그를 닮아가는 게 좋아서 그런가 하고 넘어갔었지만 이제와 돌이켜 보니 그 말은 어찌 보면 참 무서운 말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그가 하고자 하는 사업에 자금이 좀 부족할 때 그녀에게  했던 말이 있었다. 

"네가 2~3억만 있었어도 같이 하면 좋았을 텐데, 나도 자금이 부족하다 보니까 지금 이런저런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고 자꾸 시기가 늦어지는 것 같아."

"내가 2~3억이 있었으면 집도 서울에 샀지 여기까지 안 왔어. 나도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그걸 했겠지"하며 넘겼지만 속으로는 '왜 돈이 모자란걸 내 탓하는 것 같지? 있는 만큼 작게 시작하면 되지 않나?'

"다른 투자자를 찾아봐. 전에 했던 경험이 있으니 투자하려는 사람도 있을 텐데"

"나 혼자 하고 싶어. 누군가랑 같이하면 마찰도 있고 상처받아서 싫고 무엇보다 내가 하자는 대로 안 하고 뒤로 딴짓해서 지난번에도 차익을 많이 못 남겼어."

'뭐지 이 말은? 그럼 나랑 같이하면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다는 뜻인가? 나는 그쪽 분야를 모르니까?'

이 일에 대해  상담사에게 했을 때 그 상담사는 절대 이런 불분명한 사이에 또는 연인이어도 마찬가지이지만 '절대 돈관계는 하면 안 돼요'라고 단호히 그녀에게 얘기했었다. 그녀도 이 정도는 알고 있었다. 


상담사의 말을 곰곰이 되새겨 보며 다이어리를 펼쳐보니 그와의 관계가 다소 가까워진 때부터 다이어리가 텅 비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만큼 그와 통화하느라 그와 함께 지내느라 일하는 시간 외에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되나? 내가 가려고 했던 길은 무엇이었지? 혼자인 나의 불안한 미래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할 때가 아닐까?'

여기서 한 가지 더  '왜 나는 남자친구도 아닌 그에게 이렇게 나의 모든 것을 맞추어 가고 있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남자친구란 단어에 의미를 두는 것은 뭔가 미래를 함께 그려나 갈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르는 말이었다. 여전히 그녀는 남녀 사이, 즉 학교 동창이나 교회 친구처럼 어떤 서로의 연결고리가 전혀 없는 남녀가 친구로 지낼 수 있을 거란 것에 냉소적인 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처음 그에게 느꼈던 호감도 힘든 시기 함께해 주었던 그 고마움도 이제는 하나 둘 옅어져 가고 있었고 그녀도 이제는 이 관계를 정리해야 할 시간이 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조수석이 아닌 운전석에서 내가 운전대를 잡고 나아가는 삶'  그리고 한켠으론  이혼 후 혼자 가지지 못했던 시간을 가져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었다. 그녀 자신을 돌아보고 정리할 시간,, 

다만, 어떻게 그와의 관계를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지 아직 결정을 못 내리고 있을 뿐이었다. 



Cover Photo from Google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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