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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Soo Feb 13. 2024

#4

설렘

희영은 산폴리오 구역을 지나 리알토 다리에 올라가 경치를 구경하며 사진을 찍었다.  혼자서 셀카를  찍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나이 지극해 보이는 금발머리 아주머니가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기념으로 리알토 다리가 들어있는 미니 스노볼도 구매하고 걸어가며 사진 찍기에 바빴다.

경치 하나하나가 모두 그림 같았고 수상버스나 곤돌라 외에 버스나 택시 같은 교통수단이 없다는 것이 새삼 낯설기도 했다.

그렇게 베네치아를 들러보며 4시간 반가량을 걸었다. 워낙 걷기를 좋아하고 단거리 마라톤도 즐겨하는 희영에게 이 정도 걷기는 그리 큰일이 아니기도 했다.

사진 찍을 곳이 너무 많아서 정말 한걸음 한걸음 옮기기가 어려울 정도로 그  경치가 너무 아름다웠다.  전 날 버스 안에서 만난 영국아줌마의 말이 기억났다. 여름에는 물이 많아서인지 냄새가 난다며 이맘때 베네치아를 온 건 아주 잘한 일이라고 했다. 파리에서의 그 추웠던 기억은 어디 갔는지 11월에도 봄 날씨 같아 걸으며 경치를 살피기엔 더없이 좋았다.

 배가 출출해지자 희영은 점심으로 피자 한 조각을 샀고 좀 걸어가 벤치에 앉아 경치를 보며 맛을 음미했다. 희영은 여행을 하며 점심은 간단히 먹는 대신 저녁은 좋은 레스토랑을 가서 즐겼다.

영화를 좋아하는 희영이 베네치아를 고른 이유는  조니뎁과 앤젤리나 졸리의 영화 ‘투어리스트’를 보면서 꼭 와 봐야지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 배경을 보기 위해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기도 했다.

그렇게 한 바퀴 둘러보고는 다시 숙소로 향했다.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 로비 소파에 앉아있는 서준이 보였다. 핸드폰으로 뭔가를 열심히 보는 중이었다.

희영이가 다가가자 서준은 인기척을 느꼈는지 낌새를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서준은 웃으며 희영에게 인사를 건넸다.

“지금 돌아오시는 건가 봐요?”

“네, 한 바퀴 둘러보고 들어오는 길이에요. 숙소는 여기로 잡으셨나 봐요? 마음에 드세요? 좋진 않지만 저렴해서 괜찮죠? “

“네, 갑작스럽게 구한 건데 다행히 일인실이 남아있더라고요. 덕분에 좋은 숙소 구했네요. 감사합니다.”

서준이 말을 이어갔다.

“아 참, 혹시 저녁시간 때 별다른 계획이 있으신가요? “

“아뇨. 특별한 계획은 없고 미슐랭 추천하는 리알토 근처에 베네치아 요리를 하는 옛날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 먹으려고 해요. 혼자서는 밤늦게 돌아다니기도 좀 무섭기도 하고요.”

“그럼 저랑 같이 저녁 드시고 야경구경하실래요? 이렇게 다시 만난 게 인연이기도 하고 좋은 숙소도 알려주시고 하셨으니 제가 저녁은 대접하고 싶습니다. “

희영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실은 서준이 살짝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의 제안을 승낙하기로 했다.

“네, 좋아요~ 그럼 좀 쉬다가 6시에 여기 로비에서 만날까요?”

“좋아요. 그럼 6시에 뵐게요.” 서준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오후 6시, 그들은 다시 로비에서 마주했다.

깔끔한 얇은 회색 스웨터에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의 서준에게서 바디샴푸향이 느껴졌다. 살짝 덜 마른 컬이 있는 브라운 컬러의 헤어스타일이 눈에 띄었다.

희영은 분홍 스웨터와 흰 면 미니스커트에 흰색 스니커즈를 신고 있었고 여성스러운 스타일이 그녀의 귀여운 이미지와 잘 어울렸다.

"머리 색이 원래 그렇게 갈색이에요?" 역시나 머릿속의 생각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엉뚱한 성격의 소유자인 희영은 갑작스러운 질문을 던졌다.

서준은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실은 이제 나이 들어서 염색하지 않으면 흰머리가 너무 잘 보여서요." 서준이 앞머리를 들쳐 보여준다. 자세히 보니 흰머리가 많이 있는 게 보인다. 그렇게 앞머리를 들쳐 보여주는 그 모습이 참 순수해 보이는 건 희영의 마음 탓이었을까?

"아네, 갑자기 엉뚱한 소리를 했네요. 레스토랑 위치 알려드릴게요. 같이 찾아가야 하니까."

희영은 여행 책자를 꺼내어 그녀가 가려고 했던 레스토랑의 위치와 이름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그럼 일단 밖으로 나가실까요?” 서준이 그녀를 리드했다.

“네~” 살짝 하이톤의 희영이 밝게 대답하며 서준을 따라나섰다. 희영의 밝은 목소리에 서준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잔잔했던 서준의 삶에 뭔가 톡톡 튀는 희영은 서준에게 색다른 느낌을 갖게 해 주었다.

서준과 희영은 나란히 걸으며 지나가는 샵들을 구경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레스토랑까지 30분 정도의 거리였지만 그 시간은 훨씬 짧게 느껴졌다.

레스토랑에 도착하자 서준이 말했다.

“와, 여기 굉장히 오래된 레스토랑 같아요.”

“맞아요. 책자에 보니 여기서 오래된 전통 베네치아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라고 쓰여 있었거든요. “

안으로 들어가자 중후한 느낌의 잘생긴 웨이터가 그들을 맞이했다. 내부 분위기 또한 오랜 전통이 있는 식당이란 걸 느끼게 해 주었다.


웨이터에게 자리를 안내받고 그들은 자리를 잡았다. 희영이 책자를 펼치며 말했다.

“여기가 피아스케테이라 토스카나라는 곳이고  '세레니사마(Serenissima)'라는 스타일의 생선 튀김이 시그니쳐 메뉴래요. 이거 먹어보는 거 어떠세요? ”

“아, 그래요. 전 미리 알아본 게 없어서 희영 씨가 고른 걸로 같이 먹을게요. 그리고 같이 와인 한잔 하는 건 어때요? “

“아~ 그것도 좋은 생각이에요.”

“그럼 웨이터에게 추천해 달라고 할게요.”

그들은 그렇게 음식과 와인을 고르고 함께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시그니처 푸드라는 생선튀김은 생긴 것은 흡사 감자튀김 같았지만 그래도 맛은 괜찮았다. 생각과는 너무 다른 요리가 나오자 서준과 희영은 눈을 마주 보며 웃었다.

"뭐 우리 둘 다  처음이니 이런 실수쯤은 할 수 있죠." 서준이 먼저 희영을 위로했다.

희영이 추천한 음식인데 미안해할까 봐 그렇게 말하는 서준이 희영에겐 더 듬직해 보였다.

그것보다도 웨이터가 추천해 준 화이트 와인이 너무 맛있어서 희영은 나중에 사가야겠다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두 어잔의 와인을 마신 후 서준이 말했다.

"실은 저는 소주파예요."

"아, 그래요? 근데 와인 마시자고 하셨어서 생각도 못했네요."

"실은 왠지 이런 레스토랑에 오면 와인을 마셔야 할 것 같았어요. 그리고 제가 여성분을 대접하기로 했는데 분위기도 그렇고..ㅎㅎㅎ"

"그랬구나" 희영이 웃었다.

살짝 볼이 발그레해진 그녀를 보며 서준은 희영이 참 이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제가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그 사람 어떤 사람인지 잘 보이거든요. 희영 씨를 두 번째 보는 거긴 하지만 웃을 때나 말할 때 보면 참 착하고 순수하고 밝은 사람이라는 게  보여요."

서준이 희영에게 그의 생각을 털어놓는다.

희영은 '심쿵이란 게 이런 건가?'란 생각을 하며 고백을 받은 것도 아닌데 가슴이 쫄깃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제가 본 서준 씨도 그랬어요. 공항에서 헤어질 때 제가 손을 흔들었는데 서준 씨가 양손을 흔드는 거예요. 그 모습이 참 순수하고 귀엽다? ㅎㅎ 그렇게 보였어요."

"하하하" 서준이 소리 내어 웃었다. "50대 아저씨가 양손 흔드는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고요? 하하하"

그렇게 서준과 희영은 둘 만의 대화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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