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의 나를 5가지 이모지로 표현해봤어요.
2021년은 나의 인생 그래프에 있어서 가장 변화와 우여곡절이 많았던 시기다. 작년에 뒤늦게 디자인을 배우기 시작해 허겁지겁 후배들의 뒤꽁무니를 따라가기 바빴으며, 약 1년여간의 노력의 결실로 20명 남짓한 스타트업에 디자이너로서 업계에 첫발을 디딜 수 있었다. 26년을 살아온 나에게 있어서 2021년은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다양한 경험을 해봤으며, 스스로 큰 결정을 내리기도 한 해였다.
1년 동안 한 스타트업의 디자이너로서, 나는 스스로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은 것도 있고, 따끔하게 질책하고 싶은 것도 있다. 가볍게 1년간 나의 변화와 생활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드디어 졸업하게 됐다. 6년 동안 학교에 다니면서(거의 초등학교) 3개의 전공을 배웠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에 도달하기까지 정말 많은 과정을 겪었지만, 어찌 됐든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졸업했다는 점에서 일단 나에게 손뼉을 쳐주고 싶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졸업생 신분이 된다는 것은 내가 짊어져야 하는 책임감이 더욱 막중해진다는 것이며, 혼자서 1인분의 몫을 하기 위해 어떻게든 미래를 대비할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야 했다.
보통 다른 학생들이 취업 준비와 학업을 병행하는 막학기 때에 나는 취업 준비를 단 하나도 하지 못했다. 들어야 할 전공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이미 1초도 모자라게 살고 있었다. 이렇게 일분일초를 쪼개어 12월에 졸업 전시를 나름대로 멋지게 끝마치고, 몰려드는 후련함과 동시에 ‘아 이제 어떡하지’라는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고민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스타트업에 취업하자!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이름만 대면 아는 좋은 기업에 가려면 최소 6개월, 많게는 1~2년까지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디자이너로서의 시간 수명을 갉아 먹고 싶지 않았다. 또한 학부생 때 it 창업 동아리를 해보면서 약 4개월 동안 빠르게 아이디어를 내어 시장 검증을 하고, 디자인부터 시작해 개발 앞단까지 진행해봤다. 이를 통해 한 사람이 1인분의 몫을 하는 게 아닌 남 일도 내 일처럼 서로 도와주면서 미친 듯이 일하는 것에 상당한 매력을 느꼈다.
이런 분위기나 문화가 나와 핏이 잘 맞았던 탓인지, 자연스럽게 마음이 이쪽으로 움직였고, 스타트업 쪽으로 첫발을 내딛기로 했다. 결심한 날 바로 스타트업 구인 공고들을 찾아볼 수 있는 플랫폼에 나의 이력서를 던졌으며, 신입부터 1-3년 차까지 내가 도전해볼 수 있을 포지션에 가리지 않고 지원했다.
대략 10곳 정도에서 면접을 보고 나서 내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회사는 온라인 이커머스 플랫폼인 ‘식스샵’이였다. 식스샵을 선택한 이유는, 여러 회사의 면접을 보면서, 면접 중 나에게 던져지는 질문의 퀄리티와, 현재 구축된 회사의 디자인을 보았을 때, 식스샵이 제일 궁금했고 매력있는 회사였다. 또한 식스샵의 디자이너 규모도 면접을 봤던 회사 중 가장 컸기 때문에 좋은 디자이너분들 옆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최종적으로 나는 식스샵에 '비주얼 디자이너'로 합류하게 되었다.
식스샵에서 보냈던 1년은 정말 값진 경험이었다. 아마 내가 살면서 가장 빠르게 많은 것들을 시도해보고 경험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지 않았을까 싶다. 스타트업에는 장점이 곧 단점으로 존재한다. 스타트업의 장점인 '내가 원하는 것을 해볼 수 있다.'는 스타트업의 단점인 고로 '체계가 없다.'와 같다. 비슷한 특징으로 '내 손으로 할 것들이 많다.'는 '아직 손을 써야하는 부분이 많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단점일 수 있는 것들이 나에게는 장점이었다. 하고 싶은 게 많고 욕심이 많은 나에게는 스타트업이란 천국 같은 곳 이었다.
브랜딩
영상
광고
템플릿 제작
기타 운영 디자인 업무
이렇게 다양한 업무를,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일 년 동안 경험했던 여러 디자인 작업이 결국 내가 궁극적으로 '나는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줄 키가 된게 아닐까 싶다. 위의 리스트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나는 식스샵의 이름으로 송출되는 대다수의 그래픽 디자인을 맡았다.
정말 작게는 어느 한 채널에 필요한 커버이미지 부터, 짧은 주기로 뽑아내는 식스샵 퍼포먼스 광고 이미지, 브랜드의 이미지를 담당하는 식스샵 웹사이트 키비주얼 이미지 등 내가 다뤄야 하는 디자인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었다. 나중에는 식스샵의 고객들이 사용하는 템플릿까지 제작하게 되면서, 식스샵이라는 제품에 좀 더 깊숙하게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크게 보았을 때, 어떻게 보면 사소하고도 자잘한 업무의 비중이 크지만, 한 명이 모든 소스를 만들고 관리하다 보니 '일관된 브랜드 디자인'을 구축하고 사용자에게 지속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도 모르게 깨닫게 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만일 내가 '마케팅 디자인'만 만들어내는 마케팅 디자이너였다면, 나는 '마케팅 디자이너'라는 직위 속에서 마케팅 산출물 안에서만 나의 시야가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한 스타트업의 1부터 100까지의 그래픽 디자인을 다루고 관리하다 보니, 내가 만든 산출물에 일관되지 않은 디자인이 보이게 되었고, 어떻게 해야 좀 더 식스샵스러움을 보여주고 같은 보이스로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고민과는 다르게, 어쩔 수 없이 기업이 브랜딩에 신경을 써야 하는 시기는 따로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이제 막 시작한 지 1년 된 스타트업에 브랜드 가이드를 갖추고 브랜드의 보이스에 신경을 쓰는것이 현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일까?' 이런 생각에 빗대어 보았을 때, 식스샵은 아직 좀 더 성장에 집중을 하는 시기였다. 이렇게 회사의 목표와 나의 지향점이 달라지면서, 나는 큰 혼란을 겪게 되었다.
디자이너로 업무를 한 지 9개월 가량이 지나면서 기업이 왜 브랜드 가치를 정의하고, 구축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드는지에 대한 필요성을 실제로 체감하게 되었고 이러한 생각이 이어져 회사의 디자이너분과 함께 식스샵 브랜드 가이드를 만드는 작업을 스터디 형식으로 진행했다. 그렇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BX디자이너'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나게 됐다.
우리의 스터디는 항상 점심에 이루어졌는데,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브랜드와 관련된 컨퍼런스 영상을 보거나 유투브에 있는 유익한 브랜드 영상을 시청하곤 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과 회사가 원하는 것이 맞는지 끊임없이 확인해보세요.
원티드에서 트레바리 김동휘님의 [좌충우돌 브랜드 디자인 연대기]에서 브랜드 디자이너로서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 저 문장을 듣고 이때까지 내가 했던 수많은 고민이 명료하게 정리가 됐다.
'맞지 내가 회사를 바꿔볼 수 없다면 내가 회사를 바꿔야지..'
.. 아마 이날 이직을 하기로 최종적으로 다짐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나는 국민의 세무를 도와주고 숨은 돈을 찾아주는 세무회계 관련 핀테크 기업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이 기업이 끌렸던 가장 큰 이유는 이 회사는 '지금 브랜드가 필요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스타일이랑 회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디자인 핏이 맞았기 때문에 더 끌렸던 것도 있다.
이제 다음 주면 첫 출근을 앞두고 있다. '내가 잘 할 수 있나'라는 두려움 반,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하게 된다는 설렘 반, 이제 더 이상 신입이 아닌 내가 맡은 일에는 더욱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다양한 감정이 복잡하게 들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든 열심히 살면 되겠지!
나의 2022년도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