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글쓰기로 천 일을 수놓다
고등학교 시절, 가수 이승환을 좋아했었다. ‘승환 오빠’가 내가 사는 지역에서 콘서트를 하면 달려가 소리를 꽥꽥 지르며 ‘이승환’을 외쳤다. HOT와 젝스키스를 좋아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취향이 좀 독특한 아이로 통하기도 했다. HOT와 젝스키스 팬들 사이에서 큰 소리 한 번 내지 못했던 조용한 팬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이승환을 좋아한 이유는 노래 가사 때문이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글귀를 노래로 만들었다는 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멜로디와 익숙한 말들이 노래로 완성되어 청소년 시절의 많은 날을 견디게 해 주었다. 특히 이승환의 노래 중 ‘천일 동안’이라는 노래를 좋아했다. ‘천일 동안’은 천일 동안 사귀었던 사람을 떠나보내는 내용이었다.
‘천일 동안 사귈 수 있다고? 천 일이면 얼마나 되는 거지? 대단한데?’
노래를 들을 때마다 ‘천일’이라는 숫자에 감탄했더랬다.
천일은 3년에서 95일이 모자라다.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나는 오늘 ‘천일’이라는 숫자를 마음에 듬뿍 담았다. 나의 글쓰기가 오늘 드디어 천 일이 되었다. 어제 글을 쓸 때 ‘999’라는 숫자를 보고 혼자 말없이 웃었다. 내가 ‘99학번’이고 ‘999’하면 비둘기도 생각나서 왠지 친숙했다. 그런데 오늘 글을 쓰며 ‘1000’이라는 숫자를 찍으니 내가 무엇인가 큰일을 해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글벗들과 매일 글을 쓰기로 한 2020년 8월 3일부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글을 썼다. 천일 동안 글을 쓰며 의미 없는 글을 쓰기도 했다. ‘이렇게 의미 없는 글을 써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에 글에 관한 마음이 살짝 뒷걸음치는 순간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의 마음을 붙잡은 건 단 하나였다. 습관이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는 마음이다. 나는 나를 너무 잘 안다. 습관이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다시 뒤돌아보지 않는 편이기에 아예 놓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다. 매일 쓰는 게 왜 힘들지 않았겠는가. 매일 일터로 나가야 하고, 매일 집안일을 해치워야 할 주부이며, 매일 돌봐야 할 아이들도 있다. 내가 글쓰기 선생이라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가르쳐야 할 내용과 나의 글쓰기는 전혀 다른 맥락이기도 했다.
내가 매일 하는 건 딱 세 가지이다. 신문 읽고 스크랩하기, 독서, 글쓰기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세 가지는 꼭 한다. 아침 6시 30분쯤 시작되는 신문 읽기 모임을 끝내고 오늘의 ‘원픽’을 정한다. 딱 한 가지를 정해서 스크랩하고 나의 간단한 생각을 적는다. 생각을 적지 않을 때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줄이라도 긋는다. 책은 20분~30분 정도 읽는다. 수업할 때 쓰는 책과는 별개로 읽는 책이다. 바쁠 때는 10분, 여유로울 때는 30분 읽는다. 휴대전화 타이머를 30분으로 맞춰 놓고 몸이 다치는 일이 발생하는 게 아니면 책 읽기에 몰두한다. 타이머가 울릴 때까지 오로지 책만 읽는다. 너무 바쁠 때는 ‘밀리의 서재’에서 ‘읽어 주기’ 기능을 틀어 놓고 집안일을 한다. 책을 읽을 때는 줄을 치거나 간단히 정리한다. 신문이나 책에서 읽었던 부분을 오늘의 글쓰기로 연결할 때가 많다. 매일 이렇게 했더니 습관이 완전히 잡혀 버렸다.
책을 쓸 때는 미리 목차를 정해 두고, 기간을 정했다. ‘50일 만에 쓴다’라는 생각으로 시작 일과 끝나는 날을 정해 두고 오로지 계획된 글에만 몰두했다. 50일이라는 기간을 정해 두었더니 더 빨리 끝내고 싶어졌다. 주말에는 2개씩 쓰는 날이 되었다. 그랬더니 40일 만에 <마음이 무너질 때마다 책을 펼쳤다>가 완성되었다.
1000일 동안 빠지지 않고 글을 써 보니 무엇인가 매일 하는 일에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루에 일어나는 많은 일을 모두 기록할 수 없고, 기억할 수도 없다. 그날의 ‘원픽’을 정하는 것이 매우 도움이 된다.
며칠 전부터 <마음이 무너질 때마다 책을 펼쳤다>의 서평단을 꾸렸다. 조금씩 소감문이 SNS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 책을 읽은 사람들의 감상이 나의 마음을 젖게 한다. 내 책이 사람들에게 작은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 매일 쓰지 않았다면 탄생하지 않았을 책이다.
1000일 동안 두 권의 책이 출간되었고, 그 책들은 완전히 다른 나를 만들어 주었다. 큰돈을 벌거나 명성을 얻은 건 아니다. 분명한 것은 나의 삶의 태도가 변했다는 거다. 긍정적인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명확하게 내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애매할 때는 내 마음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 스스로 질문해 보는 습관이 생겼다. <마음이 무너질 때마다 책을 펼쳤다>를 다시 읽어보니 나 자신에게 질문하는 부분이 많았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큰 변화다. 늘 우유부단하고 ‘잘 모르겠다’ ‘난 보통’ 같은 애매한 답을 많이 했었는데 그 애매함이 점점 확실해져 가고 있다. 큰 수확이다.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고 비가 많이 왔다. 바람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이리저리 흔든다. 비는 세상의 모든 것을 적신다. 나의 천일 글쓰기도 나를 바쁘게 흔들고, 많은 부분을 씻겨 주었다. 오늘 날씨가 나의 글쓰기 천 일을 축하해 주는 듯하다. <마음이 무너질 때마다 책을 펼쳤다>를 읽고 문자나 댓글을 남겨 주시는 많은 독자에게 좋은 피드백이 날아들었다. 오늘의 바람처럼 기쁘게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잊지 못할 천 일이다. 오늘의 행복한 마음을 잊지 않으려 하다. 그리고 나의 글쓰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될 거다. 나는 이제 글쓰기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안다. 그래서 멈출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