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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미 Oct 01. 2023

당근 거래

중고 물건 살 결심


올여름은 유독 비가 많이 왔다. 제습기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있는 것과 같은 브랜드를 검색해보니 40만 원이 넘어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6년 동안 가격이 꽤 많이 올랐다. 학원에서 쓰는 물건이라 학생들 손이 타면 금방 망가질 수도 있어서 가격이 비싼 건 필요 없다. 문득 ‘당근’이라는 앱이 떠올랐다. 요즘에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중고 직거래 앱이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어 찾아가기도 편하다. 여름이 시작되는 7월부터 당근 앱에 제습기를 알람 설정해두고 사람들이 내놓는 물건을 살폈다. 그런데 물건이 나오자마자 금방 ‘거래 중’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거래 중 메시지가 뜨면 거래 취소가 되지 않는 한 그 물건은 팔린 물건으로 봐야 한다. 사람들이 동작이 얼마나 빠른지 10초 만에 봤는데도 거래 중이라는 메시지가 떠 있어서 매번 구매 기회를 놓쳤다. 브랜드가 좋고 연식이 오래된 물건은 인기가 최상이다. 가격이 지나온 세월만큼 저렴하기 때문이다.      

어젯밤 10시가 넘은 시각에 수건 빨래를 개고 있었다. 휴대 전화 진동이 울리길래 무심코 전화기를 확인했다. 당근 이미지가 뜬다. 추석 연휴인데도 당근을 올리는 사람이 있나 싶고, 별 기대 없이 메시지를 보았다. 제습기 사진이 보였다. 유명 브랜드는 아니지만 약간의 흠집으로 2022년 04월 모델이 반값 이상 싸게 나왔다. 얼른 메시지를 보냈다. 

‘거래 가능할까요?’

대답이 없다, 대답이 없으면 다른 사람과 거래 중이라는 뜻에 가깝다. 그래서 이번에도 역시 그렇겠지하며 개던 빨래를 다시 갰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당근 앱에서 메시지가 떴다.

‘제가 메시지를 늦게 봤네요. 거래 가능합니다.’

이게 웬일인가. 여름 내내 치열했던 제습기 구매에 성공하게 된 거다. 나에게도 기회가 오다니. 나는 당장 구매하겠다고 했다.      


약속 시간은 오늘 오후 2시였다. 예전에 살던 동네라 길은 익숙했는데 당근에서 매입이 처음이라 남편과 함께 갔다. 출발 전 당근 메시지로 출발을 알렸다. 인근 동네라 판매자도 대충 시간 계산을 할 것이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 판매자는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판매자가 보는 곳에서 당근 페이로 입금하고 물건을 가지고 왔다. 생각보다 깔끔하고 새 물건 같았다. 제습기는 학원에서 쓸 거라 학원에 잠시 들러 성능 테스트를 해보았다. 작동이 아주 잘 되었다. 딸들이 당근 앱에 사기가 많으니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길래 걱정되었는데 첫 거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여름이 다 지나가고 나서야 제습기를 구매했다. 남은 올해는 비 오는 날에만 쓰게 될 것 같다. 내년에 더 유용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중고 물건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쓰던 물건에는 쓰던 사람의 기운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어릴 땐 이웃 아이들 물건을 잘도 받아 썼는데 아이들이 크고 나서는 중고를 사본 적이 없다. 아는 사람 물건이면 쓰겠는데 모르는 사람이 쓰던 물건은 쓰기가 편하지 않았다. 이제는 아이들이 어릴 때처럼 중고 물품도 잘 살펴서 써 볼 생각이다. 딸들 말처럼 사기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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