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휴학을 했다. 숱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지만 최선이었는지 모르겠다. 다행인 건 아직까지 후회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인턴 준비를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때 머릿속에는 ‘생각했던 대로 안 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몇 번의 실패에도 쉽게 넘어졌다.
이러다가는 인턴을 구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대외활동 준비를 함께 시작했다. 쉽게 혹은 당연히 붙을 줄 알았던 활동에서 모조리 떨어졌고 면접조차 보지 못 한 경우도 허다했다. 어쩐지 지난날 쉽게 주어졌던 합격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기분이었다.
어렵게 잡은 면접을 망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애써 막아 둔 속상함이 넘친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친구들이 발행했던 슬픔의 텍스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쏟아지는 마음을 어떻게라도 풀어내고 싶었고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사람들이 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불합격 통보를 받을 때마다, 합격과 불합격이 동일하게 주어지길 바랬다. 번갈아 한 번씩 받게 된다면 불합격으로 구겨진 멘탈이 쉽게 회복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날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여러 차례의 낙방 때문도 있지만, 누구나 겪을 법한 일로 힘들어한 게 더 컸다. 취업을 목표로 하는 다수가 겪어야 하건만, 이 정도로 버거워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영 마땅치 않았다.
먹고사는 삶을 준비하는 과정을 겪으며, 내가 어딘가에 납작하게 붙어있다고 느꼈다. ‘납작해… 너무 납작해… 여기서 붕 떨어지고 싶어.’ 그렇지만 당장 점프하기에 나는 너무 말라있는 상태였다. 장마가 찾아와 수분이 가득하던 밤에도, 바닥에 바짝 말라붙어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촉촉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물기를 머금어 촉촉해진다면 붕 떠있기도, 내가 너무 납작하다는 이 느낌에서 벗어나기도 가능할 것 같았다.
촉촉해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물기 가득한 것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일이었다. 꼭 졸리면 자라, 배고프면 먹어라.처럼 명확했다. 먼저 목표를 세웠다. 어학점수 900 이상, 자기소개서 컨설팅, 공모전 수상하기, 같은 목표 대신 이런 것들이었다.
어서 빨리 시원해지기, 이번 주는 살구향 풍기기, 여름을 끝내주게 즐기기, 폐에 나뭇잎 가득 들어차게 하기.
오래 걸리는 것도,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것도, 실현 불가능한 목표도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곳(물론 그곳이 어디인지는 모름)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통통하게 뻗어나가는 나뭇가지가 된 기분이 들었다.
또,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었다. 내가 너무 나일 때, 머릿속이 온통 나로 가득해서 질려버릴 것 같을 때 주로 읽었다. 그런 순간에는 다른 사람의 내밀함이 필요했다. 이야기를 읽어가며 나는 점점 다른 것들과 섞이고 오롯이 나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외에도 바람이 불면 양팔 잔뜩 벌리며 걷기가 있다.
말라있다고 느낄 때마다 물을 잔뜩 퍼부어 주며 촉촉해지려 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스스로의 가뭄을 진단하는 기상학자이자 필요에 따라 물을 뿌리는 스프링클러다. 내 하루가 더 이상 납작하지 않고, 수분이 넘치도록 통통했으면 좋겠다. 보고, 듣고, 말하는 모든 감각을 쉽게 흘려보내지 않으며 나를 끊임없이 젖게 하는 것들과 함께 하고 싶다. 언제까지나 말라 있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