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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워내 Dec 19. 2023

거북이의 소원.1


물구는 왠지 해결해야 할 것 같은 취업이라는 숙제를 위해 허겁지겁 시간을 모았다. 어떤 선택을 해야 효용이 좋을까, 짧은 시간 안에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을까. 두 가지 선택지 중 취업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건 뭘까. 이건 당장 어떤 쓸모가 있을까. 그다지 치밀하지 않은 머리로 생각하고 행동했다.


시간을 모아주는 서비스도 잔뜩 이용했다. 장 보는 시간을 줄이려 새벽 배송 앱을 이용하고, 줌을 사용해 화상회의를 진행하며 이동 시간을 확보했다. 뭐든지 쉽게 알려주는 생성형 AI 사용법도 배우고 할 일을 까먹지 않게 도와주는 체크리스트도 사용했다.


그러다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 시간을 줄여주는 갖가지 도구들을 사용하고 있는데 왜 조금도 여유로워지지 않는 건지 궁금했다. 당장 내일에도 일주일 뒤에도 할 일이 쌓여 있었다.


물구는 왠지 이게 생산성 추구의 딜레마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도구를 사용해 열심히 시간을 모으고, 모은 시간을 활용해 더 나은 결과를 내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여기에는 이전보다 시간을 의미 있게 활용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했으나, 이 과정에서 물구가 느낀 건 달콤한 성취의 순간이나 열심히 살았다는 뿌듯함보다는


할 일을 쌓아두고 미루는 내가 싫음. 일이 없으면 게으르게 느껴짐. 잠깐이라도 스텝을 멈췄던 날들에 대한 후회가 몰려옴. 노력, 노력하는 일, 아 못하겠다. 이런 게 더 많았다.


물구가 생각에 짓눌릴 즈음에는 가성비 좋음이라는 할인 멘트만 봐도 짜증이 났다. 그리고는 가성비가 작용하지 않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OO 대비 성능을 따지며 극한의 효율과 생산성을 추구하는 곳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더이상 시야를 지나치게 좁게 두며 조급함을 느끼지 않고 싶어졌다


"그냥 비효율적으로 살고 싶어"


결국 물구는 수치나 성과로 환산되지 않는 시간들을 미워하지 않는 세계로 가고 싶다.


주머니를 털어 좋아하던 일에 도전해 보고, 종일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슬픔에 잠겨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을 견디고, 정성을 쏟은 일에서 성과를 얻지 못해도 괜찮은, 건너온 수많은 하루의 쓸모를 찾지 못해도 지난날의 나를 아주 많이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게 말이다.


성과와 성공의 압박에서 벗어나 열심히 하는 모든 일이 단지 스스로가 삶을 사랑하기에 하는 충실한 행위였으면 좋겠다.


또 거북이들이 거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빠르고 느리다는 것의 기준은 상대적이며 애매모호하다. 여기서는 느릴 수 있어도 조금만 발을 뻗어 나간다면 아주 빠른 사람일 수 있으니 말이다.


혹여나 빠르게 돌아가는 지구에서 탈락되더라도, 함께 탈락한 어딘가 허술한 사람들과 세상의 압박 없이 랄랄라 손잡으며 걸어가고 싶다. 그리하여 모든 거북이들이 잘 적응하면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많은 바램들이 실현될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운 일이기에 물구는 더 간절히 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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