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란 Sep 03. 2021

밀가루 안 먹는 삶

못먹는 건지안먹는 건지

2020년부터 지금까지.

1년 9개월째 나는 밀가루가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더 정확히 하자면 몇 년 더 되었지만 이제는 아예 끊어버린 것이다.

입에도 대지 않는다. 피자 한 판을 가볍게 먹는 먹방 유튜버를 보며, 저게 대체 무슨 맛일까 맛을 상상해보는 정도?


처음 듣는 질문은 항상 "왜?"

그다음은 보통 "그러고 어떻게 사니!" 혹은 "그럼 뭐 먹고살아!"

이제는 이런 질문도 익숙해졌다. 나 같아도 정말 궁금할 것 같으니까


배달의민족인 우리들에게 맛있는 메뉴는 하루하루 늘어만 가고,

떡볶이, 짜장면, 치킨, 피자, 파스타, 빵 등등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말이야.

참 독하기도 하다 나 자신.


도대체 왜 이런 삶을 사는 걸까 궁금하다면

이유는, 피부 때문이다.

보통은 이런저런 설명이 어려워서 글루텐 알레르기가 있다고 할 때도 있는데,

어려서부터 아토피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몸에 좋다는 음식도 이것저것 먹어보고, 대학병원, 동네 피부과, 한의원을 전전하며 자가면역 주사도 맞아보고 침도 맞고 한약도 먹어보고 피부과 약도 바르고 먹어봤다. 오랜 시간 이유 찾기에 돌입했지만

그다지 큰 수확은 없었다.

"알로에를 먹어보래" , "홍삼이 좋다더라" 등등 효과 좋다는 음식도 먹어봤지만 변함은 없었다.


낮이며 밤이며 간지럽고 보기만 해도 아팠던 나의 상처들.

성인이 되고는 움직이기조차 힘든 내 모습을 보며 마음에 병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어떤 방송에서 모델 한혜진 님이 '세상에서 제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게 몸 밖에 없더라'라고 말한 걸 보았다. 뭔가 한 대 맞은 기분 (!)

내 의지대로 바꿀 수 있는 게 몸이라면 난 의지가 충만한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나는 젊은데, 종일 침대에 누워 미운 내 몸과 천장만 바라보고 있자니 착잡했다.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다.'

어느 날 문득 스스로 해결해보자는 결론을 내렸고, 이런저런 시도 끝에 내가 포기한 음식이 바로 '밀가루'음식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가끔 힌트가 있었다.

일상이 너무 바빠서 좀 덜 먹거나, 급작스런 위장염으로 며칠 죽을 먹었을 때면

그 시기는 피부가 좀 괜찮았다. 가려움도 많이 줄었었다.

그렇다면 큰 원인은 내 몸에 들어가는 음식일 텐데,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이런저런 나름 체계적인 실험 끝에 알게 된 주된 원인은 밀가루였다.

사실 밀가루는 죄(?)가 없다.

따지고 보면 문제는 밀가루 속에 있는 글루텐. 공부하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인데, 밀가루에 포함된 글루텐이 장내 영양분 흡수를 저해해서 소장에 상처가 나는 것이다. 소장은 대장내시경으로 쉽게 판단할 수 없는 기관이고 소장에 상처가 나서 장 내 환경이 좋지 않으면 그것이 시간을 두고 그대로 피부에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밀가루를 먹는다고 발작이 일어나는 것도, 당장 가려워지거나 숨이 안 쉬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내 몸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조금씩 내게 과민한 피부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에잇, 찔끔찔끔 먹으며 스트레스받지 말고, 미련 없이 버려버리자.

나는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밀가루와 이별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스트레스 관리 등 평소처럼 여러 가지 부분도 신경 쓰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큰 변화는 식이의 변화였다.

언젠가부터 잠도 잘 자고 가려움도 없어지고 상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졸업도 취업도 하며 내 인생을 꾸려갈 수 있었다.


그런데 밀가루 끊기를 해보니, 밀가루가 들어간 음식은 상상 이상으로 너무 많은 것이었다.

그냥 떡볶이도 맛있는데 갑자기 진화를 하더니 로제 떡볶이라는 것까지 나오는 것이었다.

또 사람들과 식사를 해야 할 때마다 핑계를 대야 했고, 자주 미안해해야 했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그럼 도대체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떻게 대처하며 사느냐면,

다음 연재에 쓰도록 하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