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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ry Chae Feb 11. 2021

[Epilogue] 3주, 3개국

23개 도시와 23편의 글


일단 지르고 보는 성격에 시작은 했는데 정말로 여행기를 다 쓰고 마지막 글을 올리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영국) 런던, 옥스퍼드, 바스, (벨기에) 브뤼셀, 오스텐트, 브뤼헤, 헨트, (독일) 쾰른, 주변 성들, 루르 공업지역, 하노버, 함부르크, 뤼네부르크, 슈베린, 뤼베크, 베를린, 드레스덴, 밤베르크, 뉘른부르크, 프랑크푸르트, 다름슈타트, 마인츠, 하이델베르크



처음에는 단지 여행을 못 가는 상황이 너무 길어지니 여행이라는 행위가 고팠고 아쉬운 대로 지난 여행이라도 추억해 보자 했다. 지난 여행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일은 오랫동안 자주 해왔던 일이고 엽서로도 만들어 잔뜩 쌓여있으니 이번에는 여행을 다시 꺼내 볼 다른 방법을 고민하다가 드라이브에서 잠자고 있는 그때의 사진을 엮어 글로 남기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처음에 이 여행기를 쓰겠다고 했을 때 친구가 물었다. 그때 그 여행이 기억이 나느냐고.

나는 단호히 대답했다. 당연히 그렇다고.


중간에 유실된 기억이야 한둘이겠냐마는 그 해 그 계절만 떠올려도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가고 사진 한 장에 순식간에 떠오르는 그때의 온도, 습도..? 그 어설프고 용감했던 기억은 그때의 행복한 나를 지금, 여기로 다시 소환해주었다.


하지만 실제로 글을 쓴다는 건 꽤나 수월하지가 않았다. 내 안에 생생하게 남은 것은 그 순간의 감상과 찰나의 느낌일 뿐, 정작 내가 여행했던 곳의 정보나 앞뒤 상황과 정황들은 그때의 사진들과 가끔 남긴 짧은 메모를 보고 어렵사리 유추해야 했고 여행기 한 편을 쓰기 위해 이리 왔다 저리 갔다 구글 지도와 사진들을 많이도 뒤적여야 했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찾고 공부하는 것을 귀찮아했던 그때의 게으름을 이번 여행기를 쓰면서 갚은 기분이랄까.

무엇보다도 내 기억 속에 반짝반짝하게 남아있는 생생한 감상과 느낌이 타이핑만 하면 그 빛을 잃고 의미 없는 단어와 문장의 나열이 되어 버리는 것이 나를 참 힘들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한 편은 발행하겠다는 스스로와의 다짐을 지키기 위해 꾸역꾸역 글을 써왔고 (주말은 쉬었습니다) 그리하여 2015년 7월 23일에 시작한 3주간의 서유럽 3개국 여행은 2015년 8월 11일에 인천 공항에 도착하면서가 아니라 여행기를 마치는 2021년의 오늘에서야 진정으로 끝을 맺은 것 같다.


실제로 여행을 다녀온 그 3주 말고도 나는 같은 여행을 세 번이나 더 했다.


여행 직후 사진을 인화하여 친한 이들에게 선물하던 순간에도, 여행 2년 후 여행 사진과 감상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해서 적어보려 했던 그때에도, 6년이나 지나 이제야 본격적으로 여행기라는 것을 쓰면서도 나는 그곳에 있었다. 일부는 흐려지거나 지워졌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미화된 기억 속에서 나는 다시 헤매고 발견하고 감동하고 아쉬워했다.


사용했던 유레일 패스


이 글을 쓰면서 당시 여행에서 몰라서 놓쳤던 것들이나 알면서도 게으름에 무시했던 것들을 재발견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즐거웠던 건 6년 전의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의 나는 아는 것보다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믿었고 그래서 그때의 나는 다소 얄팍하고 가소로웠다. 하지만 동시에 무모하게 용감했으며 지금보다 많이 감동하고 자주 감탄했다.


6년 동안 조금은 어른이 되었을까 기대했는데 오히려 그때의 나로부터 또 배우는 게 생긴다. 이 여행기를 쓰지 않았으면 절대 깨닫지 못했을 소중한 발견이다.


여행을 하면서도

여행기를 쓰면서도

나는 달라졌다.



여행 정보도 아닌, 도시의 역사나 문화, 예술에 대한 안내도 아닌 개인의 감상으로 나열된 지루한 글을 매번 읽어주고 좋아해 준 지인들과 브런치의 작가님들께 감사드리며 (수상 소감인 줄..!) 무엇보다 6년 전 재시험의 압박 속에서도 홀연히 여행길에 나선 그때의 나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길고도 짧았던 여행기를 마무리해본다.


오늘도 또 다른 여행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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