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닢이 Mar 03. 2021

내 동생의 예상치 못한 선물: 희망

내 동생은 치매 병실에 누워있는 자기 할머니를 빨리 보고 싶어 했다

내 어머니는 나와 동생을 차에 태우고선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한 치매전문 요양병원으로 향했다. 그곳의 한 병실에는 내 어머니의 어머니, 즉 내 할머니가 치매라는 망할 놈의 악마와 싸워내며 힘겹게 살아오고 있었다. 내 어머니는 차들로 빼곡하게 채워진 지하주차장 내에서 겨우 자리를 찾아 차를 주차한 뒤, 언제나 그랬듯이 잠시 빠르게 기도를 했다. 혼잣말로 소곤소곤 기도하는 바람에 어머니가 전지전능하신 신에게 그토록 소망하던 기도 내용은 정확하게 듣지는 못했지만, 중간중간 들려오는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해 볼 때 자신의 어머니의 빠른 쾌유와 안녕한 건강을 비는 것 같았다. 여기까지는 아마도 신을 믿는 인간이라면 종교와 관계없이 내 어머니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똑같은 염원을 빌 것이다. 그런데 역시나 아니 다를까 내 어머니의 기도 내용에는 내 동생이 태어난 이후부터 절대로 빠지지 않는 한 염원도 포함되었다: "제가 우리 XX(내 동생)이 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 주세요."

나는 뒷좌석에 앉은 16살 난 내 동생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는 집을 나설 때부터 자신이 병원에 가지고 오겠다고 고집했던 사진첩에 자신의 모든 감각과 열정을 완전히 쏟아부어서 열중하고 있었다. 내 동생은 자폐성 장애가 있다. 내가 그의 할머니가 예전처럼 기억을 잘하지 못하고 그와 같이 찍은 사진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에게 상기시켰지만, 나는 내 동생이 내가 말하는 것을 완전히 이해했는지 전혀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단지 내 동생이 할머니의 상반된 반응에 실망하거나 상처를 입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처럼 보였다.


내 동생은 고개를 들었다. "할머니를 보러 가요!"라고 그가 소리쳤다. 내 동생은 할머니와 찍은 추억의 사진들이 고이 보관되어 있는 사진첩을 꼭 움켜쥐고 차에서 뛰쳐나와 요양원 입구까지 행진했다. 나는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터벅터벅 그의 뒤를 따라갔다.  우리는 로비조차 건너지 않았음에도 요양원의 소독약 냄새와 구내식당 음식 냄새에 내 모든 감각이 맹렬히 공격당했다.


"음... 햄버거." 내 동생이 무슨 바비큐 파티에 온 것처럼 공기를 들이마시며 말했다.


"으... 응" 나는 그 역겨운 공기를 너무 깊게 들이마시지 않으려고 하면서 내 동생에게 중얼거렸다. 우리는 간호사실을 지나 복도를 따라 할머니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 선두에는 내 동생이 우리 가족을 이끌고 있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어떤 휠체어를 탄 여자가 우리의 이동을 막았다. 그녀는 팔을 내밀며 "얘야, 한번 안아봐도 될까?"라고 물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긴장했다. 때때로 내 동생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대한 큰 공포감이 있다. 만약 그가 움찔하고 패닉을 일으키면 어쩌지,라고 나는 걱정했다. 나는 내 동생을 원하지 않는 위협으로부터 보호해 주기 위해 그와 그녀의 사이에 가까이 다가갔지만, 그는 곧 여자의 품에 안겼고, 그녀의 옆에 앉아 있는 그녀의 친구가 내 동생을 안아주었다.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내 인생의 대부분을 내 동생과 함께 살아왔지만, 그가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자신만의 세계를 거리낌 없이 열어주는 것은 이번이 거의 처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흔히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다.


결국 우리는 마침내 할머니 방에 도착했다. 그녀가 있는 병실의 문은 열려 있었고, 그녀는 내가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던 의료 장치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환자용 침대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간병인 분이 말씀하시길 우리 할머니가 요즘 잠을 많이 잤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할머니의 평온한 얼굴과 고요한 숨소리가 평생 내내 잠을 자고 있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할머니를 더 가까운 곳에서 보기 위해 병원에서 제공한 탁자 옆을 살금살금 지나갔는데,  그 위에는 액자에 담긴 가족사진들이 장황하게 놓여 있었다. 이제 그 사진들이 우리 할머니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니 매우 슬펐다.

내 동생은 잠시 행동과 말을 멈추었다가 그녀에게로 곧장 다가갔다. "할머니, "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사진."


우리 할머니가 깨어났고, 나는 그녀가 깨어나는 와중에 그녀의 눈에 깜짝 놀란 혼란이 있다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눈은 마치 "이 어린 소년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어보는 것만 같았다. 이에 굴하지 않고 내 동생은 그녀의 무릎으로 올라가 그가 요양원 주차장부터 움켜쥐고 가지고 온 사진첩을 펼쳤다. 격렬한 혼란으로 범벅이 되어 있던 우리 할머니의 얼굴에 약간의 미소가 비쳤다. 내 동생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진을 가리키며 강조해서 우리 가족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손가락을 친척들에게로 옮겨서 그들을 가리켰다. 그러자 지난번과 다르게, 우리 할머니의 얼굴에는 치매로 요양원에 입원한 이후로 보지 못했던 강렬한 미소가 확실히 나타났다. 내 동생은 우리 가족의 애완동물 "초코"를 위해 그의 가장 큰 열정과 행복을 남겨두었다. "초코! 저건 초코예요!"라고 그가 외쳤다. 이제 우리 할머니에게 비쳤던 그 옅은 미소는 어느새 함박웃음이 되었다.


할머니가 내 동생에게 한 말은 무슨 말인지 이해조차 할 수 없었지만, 내 동생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할머니가 지금 기뻐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그에게 충분했다.


나는 내 동생과 할머니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내 동생은 자폐스펙트럼 장애로부터 발생되는 인지적인 고난과 싸우고 있는 와중, 우리 할머니는 치매로부터 발생되는 인지적인 고난과의 싸움에서 서서히 지고 있다. 그들은 서로 가까이 다가가서, 사진이나 서로에게 즐거움을 느꼈다. 내 동생과 할머니는 비장애인인 우리가 서로 인간관계를 맺는 일상적인 수준보다 더 깊은 수준으로 서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이는 갑자기 나와 내 어머니께 절실히 필요한 내면의 "평화"가 찾아왔다. 내 동생이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런 일은 꿈에서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어이없게도 내 동생이 그의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사실 걱정해야 하는 사람은 나인데도 불구하고. 미처 몰랐던 것이었다.


나는 요양원의 역겨운 냄새를 맡았다. 그는 햄버거 냄새를 맡았다.


나는 낯선 사람들의 그의 공간을 침범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들의 포옹을 환영했다.


나는 내 평생 동안 알고 지내던 할머니 때문에 슬퍼했다. 그는 지금 여기 있는 할머니를 사랑했다.


나는 이 순간의 선물에 대해 다름 아닌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는 내 동생에게 감사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내 동생과 어머니 옆에 의자를 놓고, 그들과 함께 그 기쁨을 만끽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아이가 힘겨운 부모들에게: 당신의 자녀는 완벽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