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비극적인 사건을 기억하며
나에게는 전화 한 통화 할 시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절규로 가득 차 있었지만, 오히려 내 정신은 또렷했다. 나 또한 죽음을 피하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여자친구였다. 부모님도 스쳐 갔지만, 내 몫은 남아있는 형이 해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자친구는 내가 유일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다. 미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 계획도 세웠다. 그것은 무척 재미있었고, 그렇게 살고 싶었고, 나는 그렇게 살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그것이 끝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전화를 걸지 않았다. 그러면 그녀가 앞으로 나를 평생 지우지 못하고 살아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인생은 여기까지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렇다면, 그녀의 인생은 어디까지일까. 내가 죽는다 하여도 그녀의 인생은 이어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서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를 떠올렸다. 내가 간절히 바란 것은 그녀의 행복이었다. 그녀의 행복에 내가 끼워져있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좋겠지만, 난 이미 틀렸다. 그렇다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나를 원망하더라도, 그녀에게 짐이 되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눈물을 닦아가며 한 자 한 자 입력했다.
"나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너랑 안 맞는 것 같다. 갑작스럽게 메시지 보내서 미안하다. 앞으로 너랑 만날 일 없고, 연락도 안 할 거다. 우리 서로 서로의 존재를 지우고 살자. 잘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