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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조 Apr 08. 2022

음반 표지 이야기 _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초보자의 클래식 일기 25

나는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 마트에 갈 일은 생긴다. 주로 먹거리를 사러 가는데 목적을 확실히 하고 간다. 목표물이 있는 곳으로 직진해서 장바구니에 목표물을 담고 바로 계산대로 달려가? 계산하고 나온다. 조금 과장하자면 좌우로 고개를 돌리지도 않는다. 혼자 마트에 가서 주차장 30분 무료 시간을 넘겨 본 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아내와 같이 갈 때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메모지에 적혀있는 쇼핑 목록은 참고일 뿐, 추가하고 빼고 살펴보고 바꾸기를 여러 번 한다. 나는 아내를 졸졸 따라다니며 아내가 들었다 놨다 담았다 뺐다 하는 물건들을 연신 챙겨야 한다. 아내가 자못 심각하게 고민하며 물건을 고를 때에는 아내의 가시권을 벗어나지 않는 한 구석에서 쇼핑 카트에 몸을 기대고 핸드폰을 만지작 거린다. 가족의 건강을 챙기려는 아내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지만 나의 마음은 어느새 계산대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이런 내가 쇼핑의 즐거움을 맛볼 때가 있다. 인터넷으로 음반을 주문해 놓고 기다리는 며칠 동안이다. 그리고 그 클라이막스는 배달된 택배 상자를 언박싱해서 음반과 첫 대면할 때이다.


특히 음반 표지가 매력적일 몇 번이고 그 표지를 들여다본다. 귀호강에 앞서 잠시 눈이 호사를 누리는 것이다. 이게 뭐라고 마음이 들뜬다.


귀보다 먼저 눈으로 듣는다.


그래서 가끔은 표지 사진에 마음을 빼앗겨 음반을 사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그런 식으로  음반에 실망해 본 적은 거의 다. 왜냐면 음반 표지 사진은 음반이 담고 있는 음악에 대한 좋은 힌트이자 길잡이여서 표지가 훌륭하음반의 속 내용도 그에 맞게 좋기 때문이다.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지만 '보기 좋은 떡이 맛도 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마음을 유혹하는 표지 사진은 스트리밍이 대세가 된 요즘에도 가끔씩 음반을 사들이이유 하나다.


표지 사진이 매력적인 음반 하나를 소개해 보려 한다. 피아니스트 선욱과 정명훈이 협연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음반이다.


브람스는 이십 대 중반 푸릇푸릇한 청춘에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완성했다. 브람스 특유의 '고뇌'와 '외로움'이 깃들어 있지만 젊음의 에너지 또한 감출 수 없는 곡인데, 이 표지 사진 한 장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정명훈의 지휘봉이 허공을 가르며 사정없이 내리치는 순간, 천둥 같은 오케스트라 소리가 터져 나올 듯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정명훈이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를 지휘하고 김선욱이 피아노를 연주한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CD_ 2019년 서울 예술의 전당 실황


연주에 몰입한 김선욱의 모습_위 음반의 카탈로그 사진



1859년 스물여섯의 청년 브람스 Johannes Brahms(독일 1833~1897)가 드디어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완성했다. 작곡의 시작은 5년 전인 1854년이었다. 처음에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로 작곡했는데 제1악장을 관현악으로 편곡한 후에 자신의 첫 번째 교향곡으로 발전시키려 했지만 포기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고작 스물한 살이었고 소심한 완벽주의자였다. 결국 브람스는 교향곡을 작곡하기에는 아직은 준비가 부족함을 인정하고 2, 3악장을 새로 작곡하여 피아노 협주곡으로 만들었다. 5년간의 산고 끝에 탄생한 대작이다.


이렇게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소나타로 시작하여 교향곡으로 방향을 틀었다가 결국에는 협주곡으로 발표되었다. 그리고 교향곡으로 만들려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서 "피아노가 있는 교향곡"이라고 불릴 정도로 장대한 협주곡이 되었다.



2006년, 만 18세의 청년 김선욱(1988~)은 리즈 콩쿠르에서 최연소이자 아시아인 최초로 우승했다.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Leeds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는 1963년 영국에서 창설돼 3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대회로 쇼팽 콩쿠르(폴란드), 차이콥스키 콩쿠르(러시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벨기에) 등과 함께 국제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유명 콩쿠르이다. 그가 리즈 콩쿠르 결선에서 연주한 곡이 바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심사위원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높은 평가로 1등을 차지했다.

청년 브람스가 지은 곡을
더 젊은 청년 김선욱이 연주했다.



아래 연주는 김선욱이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한 다음 해인 2007년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필하모닉과 협연한 실황이다.(아쉽게도 위에 소개한 음반의 영상은 아니다.) 땀범벅이 될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하는 김선욱의 피아노와 노련한 정명훈의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인상적인 명연이다. 특히 김선욱은 테크닉적으로는 물론 열아홉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성숙함마저 보여주었다.


실황이니 만큼 연주 끝에 터져 나오는 관객들의 폭발적인 박수와 환호 소리를 끝까지 다 들어보길 바란다. 지휘자 정명훈도 흡족하고 대견하다는 듯 진심 어린 박수로 격려한다. 현장은 아니지만 관객들의 감동과 뜨거운 호응을 느낄 수 있다. 실황 음반의 매력이다.


https://youtu.be/C_tflq0YqR4

리즈 콩쿠르 우승 다음 해인 2007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 필하모닉과 협연으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는 김선욱


제1악장 Maestoso 장엄하게 (0:55~)

이십 대 초중반 브람스의 젊음과 에너지가 분출하듯, 팀파니를 앞장세운 오케스트라가 천둥 같은 소리로 악장을 시작한다. 이어지는 현악기의 아름다운 소리는 슬픈 내색을 보이면서도 힘 있다. 그러고는 잠시 힘을 비축하려는 듯 잦아들었다가 다시 한번 폭발하고는 이내 피아노가 첫 번째 주제(4:52)를 연주한다. 그러나 폭발적인 오케스트라 서주에 버금갈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피아노는 흥분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애틋한 감정을 드러낸다. 그리고 두 번째 주제(7:40)는 서정적 멜로디를 차분하게 풀어낸다. 이후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는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애틋하게 나아가다가 결국에는 고지라도 점령하려는 듯 함께 맹렬히 돌진하며 끝낸다.


제2악장 Adagio 느리게 (24:13~)

아련하고 애잔한 악장으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조용히 대화를 주고받는 형식이다. 위풍당당하던 오케스트라는 잔잔한 물결이 되었고 피아노도 상냥하고 따뜻해졌다. 피 끓는 20대이지만 브람스의 다정하고 속 깊은 사색적 면모를 느낄 수 있는데, 특히 클라라에 대한 위로와 애틋함이 은은하게 드러나는 악장이다. 작곡을 시작한 지 2년째인 1856년 12월 브람스는 남편 슈만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부인 클라라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 그는 편지에서 "지금 당신의 아름다운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데, 그것은 아다지오가 될 것입니다.”라고 2악장에 대해 설명했다고 한다.

알다시피 슈만은 브람스의 재능을 일찍이 꿰뚫어 보고 자신이 창간한 『음악 신보』에 그의 가능성을 널리 알렸던 인물이다. 덕분에 무명의 브람스는 음악가로서 세상에 알려지며 유명해졌다. 이렇게 슈만은 브람스의 스승이자 은인이 되었다. 그러나 슈만은 우울증과 정신착란이 심해져 라인강에 투신하는 소동 등을 벌인 끝에 1856년 여름 정신병원에서 세상을 떠나고 부인 클라라만 홀로 남게 되었다. 이때 슈만의 나이 46세였고 클라라는 37세 그리고 브람스는 23살이었다. 이후 브람스는 스승의 아내 클라라를 보살피고 사모하며 죽을 때까지 독신으로 지냈다.


제3악장 Allegro non troppo 빠르지만 지나치지 않게 (38:08~)

경쾌하고 활력 넘치는 악장이다. 1악장에서는 팀파니를 앞세운 오케스트라 총주가 천둥 같은 소리로 시작했다면 3악장에서는 피아노 독주가 '이번에는 내 차례'라는 듯 강렬한 타건으로 오케스트라를 리드한다. 화려하고 힘찬 피아노와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번갈아 또는 함께 주제를 재현하며 클라이막스로 향한다. 마지막 피날레는 마치 역경을 뚫고 승리를 향해 나가는 베토벤이 떠오르듯 화려하고 장대하다. "피아노가 있는 교향곡"이라는 말이 빈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처음에는 웅장함에 반하지만 많이 들을수록 그 깊이에 빠지게 되는 곡이다.



참고   [더 클래식 둘,  문학수]   

           [네이버 지식백과]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클래식 명곡 명연주, 황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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