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꼬치와 케이크, 조금의 호들갑과 함께하기 좋은 날
며칠 전 이십 대의 마지막 생일을 보냈다.
산들바람이 불어오고 나무가 눈이 부실만큼 푸릇함을 뽐내던 날이었다. 엄마, 아빠에게 <낳아줘서 고마워>란 말을 하기엔 조금 쑥스러워서 잔망루피 이모티콘에 <낳아줘서 감사!>란 메시지를 매달아 보냈다. 엄마에겐 <오냐>라는 답이, 아빠에겐 한참 뒤에 전화가 왔다. 아빠도 생일 축하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맛있는 거 사 먹지>, <어디 놀러라도 나가지>란 말들로 대신했다. 역시 전씨네엔 어색하고도 찐득한 이런 축하가 어울리지! 생각했다.
축하해 준 친구들에게도 답장을 남기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고향 동네 아줌마들께 선물할 가방을 만들었다.
드르륵. 드르륵.
바늘땀을 따라 생일과 관련된 여러 장면들이 떠올랐다. 학교 행사로 일을 하며 보낸 서글펐던 생일, 넘어져서 좋아하던 원피스에 구멍을 냈던 생일, 사촌언니에게 캐릭터 문구 세트를 받았던 생일. 얼마나 남았을지 모를 엄마, 아빠의 생일. 시골에서 친구도 없이 심심하게 보냈을 오빠의 생일. 몇 년 뒤 소중한 이들의 생일엔 내가 조금은 더 나은 상황이었으면 하는 다짐 등..
작업을 하며 남자 친구(선진)가 일을 끝내고 얼른 오기를 기다렸다. 무뚝뚝한 우리 가족들과 달리 선진이는 자상하다. 생일 몇 주 전부터 <저녁 맛있는 거 사줄게, 생일인데 좋은 데 가자,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물었지만 <나 진짜 양꼬치면 돼!>라고 우겼다.
양꼬치는 내게 레고놀이에 버금가는 놀이이자 스테이크보다 더 맛있는 요리다. 양꼬치의 묘미는 숯불 화론데,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 시국에 시켜먹던 양꼬치는 진정한 양꼬치가 아니었다.
양고기가 꽂힌 길쭉한 꼬챙이를 내 쪽 하나, 반대 쪽 하나 나란히.
꼬챙이 아래 톱니바퀴 부분을 화로 틀 가장자리 구멍에 송송송 잘 맞춰 끼우면 왼쪽으로 한 바퀴, 오른쪽으로 한 바퀴씩 돌기 시작한다.
지글지글 잘 익은 꼬치를 2층으로. 조금 식으면 1층에 다시 내려서 잠깐 데워주고.
먹는 속도를 쫓지 못해 익은 꼬챙이가 하나뿐일 땐 조금씩 나눠 먹기도 하고.
체계적이고 배려있는 음식. 내가 서울에 올라와서 본 가장 혁명적인 시스템이었다. 맛도 기막혔다. <이 맛있는 걸 엄마, 아빠는 먹어봤을까>란 생각이 들면 정말 맛있는 건데, 양꼬치는 먹을 때마다 그 생각을 한다. 새빨간 옥수수 국수까지 시켜 위장의 기름기를 한 번씩 가라앉히며 꼬챙이가 수북해질만큼 잔뜩 먹어치웠다.
배불뚝이로 집에 돌아와 배를 퉁퉁 두드리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한 시간이나 지났어, 일어나>하는 소리에 비몽사몽 눈을 떴더니 선진이가 케이크를 준비해놓고 있었다. 깰까봐 살금살금 앞발로만 다녔다며 좀전의 자기 모습을 흉내냈다. 비록 케이크 옆 면에 빨간색으로 쓰인 HBD 쩌네바리(별명)문구와 케이크를 망가뜨리지 않으려고 초를 따로 켜놓은 것이 조금 제사상 같았지만, 웃기고 어설퍼서 선진이다웠다.
선진이가 사온 케이크는 쫀득한 초코 시트에 크림치즈로 샌드 된 비숑 얼굴 모양이었다. 선진이가 키우는 강아지가 비숑(테리)인데 내가 테리를 엄청 좋아한다. 눈, 코, 입이 아주 멍청하고 발랄한 게 테리를 쏙 빼닮아있었다. 케이크 옆쪽엔 테리의 간식처럼 초콜릿, 캐러멜, 마시멜로우가 쪼르륵 놓여있어 마음이 녹아내렸다.
올해도 내 울타리 안에서 차분하고 얌전한 생일을 보냈다. 언제부턴가 SNS에서 기념일을 위해 비슷비슷한 소란스러움을 피우는 것이 작위적으로 보였다. 행복해야 할 시간을 온전히 느끼기보단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멈춰서는 시간들이 사진 뒤로 그려졌다. 기념을 넘어선 사진들.
선물을 준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답례라고도 하던데 어쩐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보내는 사람은 <내가 이런 선물을 줬다고 인증해줘>란 마음보다 <함께 해서 좋은, 너의 생일을 축하해>의 마음이 더 컸을 테니 말이다. 혹여나 전자의 마음으로 보낸 거라면 훗날 자신의 생일에 그만한 선물을 받기 위했던 거겠지. 그건 축하가 아니라 공개 적금이지 않은가.
물론 <저 이만큼 축하받는 사람이에요> 자랑하며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도 그 사람만의 생일을 보내는 방식이니 뭐라 할 생각은 없다. 그치만 나는 피곤했다. 거창하지 못한 걸로는 축하하기가 어려워지는 사람이 한 명 더 느는 기분이었다.
환경을 생각해 수많은 선물과 다 먹지도 못할만큼 받게 되는 케이크를 거절한 연예인(임수정, 공효진, 전여빈 등)들이 참 좋다. 편지와 댓글이면 풍족하다는 그녀들. 이런 연예인들이 더 많이 보였으면 좋겠다.
나는 이름 없는 날들이 좋다. 크게 요동치지 않는 날들이 편안하다. 일상 속에서 문득 찾아오는 조용한 호들갑 한 두 번이면 충분하다. 생일은 그 호들갑이 더 잦아지는 날일 뿐이다. 쉽게 행복해 질 수 있는 날.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들을 자주 쌓아가는 것 - 이름이 없어서 긴 이야기로 설명해야 하는 구구절절한 날들. 나는 그런 날들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