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어 보자.
무려 십 년이다. 엄마를 볼 수 없게 된 지. 한기가 코를 찌를 만큼 느껴지는 이 계절이면 여전히 눈물이 고인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는, 엄마의 웃음소리가 잘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아빠는 기억나? 그럼. 기억나지. 많이 웃었어. 그런 건 나도 기억이 나는데 정확히 웃음소리가 어땠는지 이제 잘 기억이 안 나. 아빠는 술을 마셨다. 오빠는 잔다고 들어갔다.
시간을 보니 새벽 한 시가 다 되었다. 나도 이제 가야지 하고 상을 정리했다.
과일과 제사음식을 가득 챙겨 들고 집 밖을 나왔다. 아빠가 짐을 들고 나는 아빠의 팔짱을 끼고 걸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아빠의 시답잖은 말에 크게 웃었다. 아빠는 반색하며, 이 웃음소리였어 네 엄마도. 이거보다 조금 더 크면 딱 비슷하다고 말했다. 나는 다시 크게 웃었다.
나의 집으로 돌아온 다음날,
잘 살아있자.
잘 살아있어 보자. 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길게 쓴 장문의 메시지는 나의 다짐이기도, 현재의 내가 언젠가의 나에게 보내는 말이기도 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순천향병원으로 버스를 타고 가던 그날의 밤이 여전히 생생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종일 굶은 배를 부여잡고 새벽에 터덜터덜 이태원 맥도널드에 가서 우걱우걱 햄버거를 먹었다.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더부룩한 몸상태로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던 이태원- 한남동 길을 여전히 너무나 기억한다. 몸이 없는 것 같았지. 내가 없는 것 같았지. 잠시 유령이 되었지.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말도 안 되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어 일어난다. 그래도 이제의 나는 살아있어 보자. 하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무려 십 년이 걸려 체화한 것이지만. 여전히 찬 바람이 코를 찌르면 눈물이 고이지만, 살아있자. 살아있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