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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해 Sep 27. 2024

생존 신고

좋은 아침입니다, 모두.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이곳에 글을 씁니다.

어딘가에 인사로 글을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잘 지내나요?

저는 잘 지냅니다.

여전히,

웃기게도.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가을 아침에 집을 나서는 길에 머리에서 여러 문장들이 쉴 틈 없이 새어 나왔습니다. 오늘은 꼭 오랜만에 글을 써야지 다짐했습니다. 정말 오랜만이라 머리의 속도보다 느린 손이 무력할 정도로 기능을 못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다잡고 적어 내려가 보겠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 한 생각은 오랜만에

(오랜만에라는 말을 쉴 틈 없이 내뱉고 있는데)

생존 신고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잘 살고 있는지도 모른 채 잘 살게 된 지 시간이 조금 흐른 것 같은데 잘 살게 되다 보니 마음속에 품어둔 문장을 밖으로 쏟아내지 않은지 한참이 흘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마음속에 그득그득 채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문장들이 켜켜이 구겨져 있었는데 말이죠.


제일 큰 변화는 역시 약입니다.

모순되게도 출장을 떠나는 오늘 아침 약을 챙기지 못하고 나왔지만 말이에요.

총 세 종류의 약을 먹게 된 지 또 한참이 흐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진득하게 치료를 받은 것도 처음이고요.

선생님과는 내밀한 이야기나 상담 치료보다 약에 대한 반응만 이야기하는데 그 깔끔함이 마음에 들어 나의 문제를 내맡기고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모든 게 웃긴 일이지만 웃기게도 잘 흘러가고 있다는 게 내가 어떻게든 살아갈 사람이라는 걸 반증하듯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어제 친구와 나눈 대화도 이러했습니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놀라울 정도로 사람들은 나아가기 위해 살고 있더라. 그런 노력들이 멋있고 재밌는 거더라. 그리고 이제는 나도 그렇다.

대충 이런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요.

정말로 제가 살면서 처음 알게 된 감각이었습니다.

‘벗어나고 싶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 나도 좀 잘 살고 싶다. 숨 편히 쉬고 싶다. 살아있다는 느낌을 즐기고 싶다. 이 느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이런 식으로의 회로만 가동되었던 과거의 ‘나’였다면 지금은 ‘보다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어느새 굳건히 중심에 있게 되었습니다.

아주 큰 변화이고 이 변화가 꽤 마음에 듭니다.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분명.

그리고 반대로 슬픈 일은 약의 부작용으로 계속해서 살이 찌고 있다는 사실인데, 어제만 해도 살이 어느새 5-6kg가 쥐도 새도 모르게 훌쩍 뛴 것이 너무나 서글펐지만 오늘은 그래도 역시 귀엽지. 귀여워서 다행이야. 하는 마음으로 변한 것을 보고 사람의 마음이 하루하루 다른 것이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즐거움이지 싶은 초긍정 회로가 가동되었습니다.

웃기죠?

저도 웃깁니다.

고달픈 인생에 이렇게나 가볍고 웃프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 건강한 삶을 어쩐지 살고 있는 것 같아 안심됩니다. 아직 더 근육을 키우려면 한참 멀었지만 건강에 대한 반증으로는 제가 글쎄 계속해서 사랑을 하고 싶은 사람으로 변화했다는 겁니다. 근래 2년 동안 두 명의 사람과 짧은 연애를 끝내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계속 사랑이 하고 싶습니다. 어쩐지 ‘사랑’이라는 것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인 것 같아서요. 이것도 이전에는 몰랐습니다. 몰랐던 게 참 많은 상태로 봉인된 시간을 살아왔습니다. 과거를 떠올려 보면 역시 그랬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다 보니까 제게 너무나 깊을 골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또 깨달았습니다. 나는 좋아할 만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보통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면 좋아하는 모습과 행동들이 몽글몽글 피어나 커지기 마련인데 저는 안타까움 혹은 찌질함 혹은 그냥 신경쓰임이 좋아함의 감정으로 쉽게 변질되어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 고심해 보면 역시 첫 연애의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사료되지만 이 또한 언젠가는 또 다른 깨달음으로 제게 알맞은 모양으로 자리를 잡아갈 것입니다.

언젠가

인생의 또 다른 변화와

어설프지만 깨달음을 얻게 된 때에

다시 이곳에 오겠습니다.

슬픔은 물론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주 작게 있어요.

소중하게.


그럼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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