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적인 아름다움 = 도덕적 우월함
우리가 쉽게 쓰는 표현 중에 "착한"이라는 말이 있다.
착하다는 말은 보통은 '도덕적'인 관념과 관련이 많이 있는 단어로 쓰인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착함은 그 사람의 인성이나 도덕성에 관련한 표현이었다.
사전을 보면 어떨까 싶어서 찾아보니 약간 의외의 결과가 나온다.
어질다-는 이해하겠는데, '곱고'라는 말이 의외이다. 착하기 위해서는 고와야 하기도 하는 것인가? 곱다는 마음이 곱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보기에 좋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대체 도덕성과 미적 아름다움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어서 이 둘이 같이 묶이는 것일까?
흔히 쓰이는 말 중에는 '착한 몸매' '착한 얼굴' 등의 말이 이미 존재한다. 아름답고 보기 좋은, 매력적인 외모를 표현할 때 우리는 '착한'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다. 농담인 듯 그저 그냥 넘겨도 괜찮은 표현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우리는 미적 기준과 도덕적 기준을 혼용하고 있다.
아름답다는 것은 단순히 외적, 미적 우월함을 뜻하기보다는 '도덕적' 우월성을 내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부분들은 미디어를 통해서 많이 보이는데, 간단히 설명하자면 외모가 아름다운 캐릭터는 인성도 바른 경우가 많고, 악역들은 상대적으로 외모가 아름답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
웹툰으로도 성공했고, 드라마로도 성공을 거둔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에서는 이런 외모지상주의를 비트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어릴 적부터 ‘못생김’으로 놀림을 받았고, 그래서 성형수술로 새 삶을 얻을 줄 알았던 여자 ‘미래’가 대학 입학 후 꿈꿔왔던 것과는 다른 캠퍼스 라이프를 겪게 되면서 진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예측불허 내적 성장 드라마
이런 줄거리인 이 작품은 못생겼다는 이유로 놀림과 괴롭힘을 당하던 주인공이 성형수술로 예쁜 외모를 갖게 되고, 이를 통해서 내적 아름다움도 찾아나간다는 이야기인데, 여기서는 '수아'라는 역할의 타고날 때부터 예쁘지만 착하지 않은 캐릭터도 나온다. 여기서 수아는 사실 교묘하게 주인공을 괴롭히지만,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수아에게 사람들은 친절하고, 성형을 해서 '성괴'소리를 듣는 미래는 오해를 사기 일쑤다. 뭐, 이 부분은 단순한 외모지상주의, 외모에 따른 차별을 이야기한다고 치는데, 여기서 수아 외에 존재하는 또 다른 악역은 김찬우라는 꼰대 선배인데, 이 악역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여자 주인공을 아름다움의 화신인 듯한 남자 주인공 도경석이 구해내는 장면은 극을 통틀어 몇 번쯤 등장한다. 못생긴 악역에게서 여자 주인공을 구해내는 잘생긴 남자 주인공, 자주 보이는 구도 아닌가? 외모지상주의를 비틀기 위한 작품이었지만 결국 못생긴 악역과 잘생긴 주인공 한 세트는 포기하지 못했다.
미디어에서 못생긴 캐릭터들은 대체로 '착하지 않은'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고 '착한' 캐릭터들은 아름답고 선한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보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만 봐도 착하면 예쁘고 못되면 못생겼다. 백설공주는 계모보다 예쁘고, 신데렐라는 의붓언니보다 예쁘고, 라이온 킹에서도 주인공 심바와 무파사는 잘생겼지만, 스카와 하이에나들은 못생겼다. 착함=아름다움이라는 공식이 어려서부터 미디어를 통해 주입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사는 삶은 그렇지 않은데,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을 선한 것으로 인식한다. 외모라는 것은 그 사람의 내면과 일치하는 무언가가 아닌데도 말이다.
"Perfect Me: Beauty as an Ethical Ideal"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이런 현상을
"BEAUTY SUCCESS IS MORAL SUCCESS"라고 표현한다. 미적 성공은 도덕적 성공이다!
여기서 저자는 미적 아름다움이 도덕성 성공으로 프레임화 되는 현상에 대해서 설명한다. 잘 관리된 외모는 그 사람의 성실함을 뜻하고, 선한 인상은 그 사람의 성격을 보여주며, 아름다움은 도덕적인 이상향과 맞닿아 있다는 그런 이야기. 날씬함, 부드러움, 젊음 등의 미적 요소가 어떻게 도덕적 관념과 맞닿아 있는지를 설명하고, 우리는 이런 아름다움=선함 혹은 성공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잘 모르는 누군가를 탐색해야 할 때, 가끔은 외적인 부분으로 그 사람의 내면을 추론해야 하는 순간들을 마주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순간에 사회에 만연한 아름다움=선함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있지는 않은지, 한 번은 고민해보자. 그 사람의 얼굴이나 몸매보다 말투, 몸짓,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어휘나 표정 등 누군가의 도덕성을 짐작해볼 만한 요소는 많다.
"쟤는 못생겼으니까 열등감이나 자격지심이 있을 거야"
"저 사람은 뚱뚱한 걸 보니 게으르고 자기 관리능력이 없겠네"
이런 식의 외모와 성격/인성을 연관 짓는 평가를 멈춰보자는 말이다.
외적 아름다움은 내면의 선함과 반드시 관련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사실은 알고 있지 않은가.
나는, 20대를 지나서 30대 중반을 향해가면서 외모를 보자면 체중이 10kg 정도 늘었고 피부에는 기미와 주름이 생기는 중이고, 요즘엔 심지어 화장도 하지 않은지 반년이 넘어간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20대의 '외적으로 아름다운 나' 보다 내적으로 성장했으며, 조금 더 선한 사람이 되었다고 믿는다.
못생겨진 나는 못생겨진 만큼 도덕성을 잃고 못된 사람이 되진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사유하고 고민하면서 늙어가고, 주름과 함께 더 선한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그런 나를 알아봐 줄 수 있는, 외모의 도덕적 지위가 사라지는 사회가 오길 바라며, 오늘의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