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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g Lee Nov 29. 2021

Doing Gender, 젠더하기  

젠더는 타고난 것이 아니라 수행하는 것 

젠더에 대해 공부하면서 흥미롭게 봤던 이론 중 하나가 있다. 


"Doing Gender"  번역을 하자면 '젠더하기' 정도로 말할 수 있을까. 


젠더를 타고난 남성이냐 여성이냐의 정체성이라고 보지 않고, Doing이라는 말대로 젠더는 심리적으로 몸에 밴 사회적 구조에 더 가깝다고 보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서는 이 사회적 구조에서 학습한 젠더를 모든 사람들이 매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수행'하고 있다고 본다. 


젠더를 타고난 정체성이라고 본다면, 우리는 사회성을 습득하기 전부터 여성이니 남성이니 하는 정체성을 스스로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젠더를 이 이론처럼 사회화의 일부로 몸에 밴 역할로 본다면 우리 모두는 매일 신체적 특징 때문이 아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남성'으로 혹은 '여성'으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이론을 이야기한 West와 Zimmerman 은 이 젠더하기를 '피할 수 없는, 매일 일어나는 일상적 역할 수행' 정도로 이야기한다. 


예시를 들어보자면, 남성이 여성을 위해 '차 문을 열어준다' 던가 '무거운 물건을 들어준다' 등의 행동을 해서 매너 좋은 남성으로 보인다면 사회화된 몸에 밴 행동으로 젠더하기를 하고 있는 모습니다. 또한 우리 윗세대에서 당연하게 여성이 남성을 위해 밥을 차리는 등의 가사노동을 하는 것도 역시나 젠더하기라고 볼 수 있다. 


이 이론을 공부하면서 수업에서 나는 흥미로운 케이스 스터디 논문을 하나 봤는데, 그것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선택한 한 트랜스젠더(잠시 A라고 칭해보자)의 이야기였다. 


'그' 였을 때의 시절에 A는 어려서부터 남성으로 사회화되었다. A 자신이 어느 시점에서부터 자신을 여성으로 느꼈다고 해도, A는 사회적으로 남성이었고 가정과 사회에서는 그에 걸맞은 사회화가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이던 A가 '그녀'가 되었을 때, A는 자신이 누구보다도 여성이라고 생각했지만, 몸에 배어버린 일상적 '젠더하기'는 그를 한동안 어딘가 조금 다른 여성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많은 예시중 몇 가지들 들자면, A는 습관적 혹은 반사적으로 무거운 물건을 든 여성을 보면 그 물건을 대신 들어주고 데이트에 나가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데이트 비용을 냈다. 그 사회에서 '보통의 여자'는 그러지 않는다는 데이트 상대의 말을 듣고 A는 자신이 여성으로의 젠더를 선택했지만 이 사회화된 젠더하기의 흔적 역시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 자신이 선택한 정체성으로의 젠더는 '여성'이지만 젠더하기가 '남성'으로 몸에 배어있었다는 것. 



이 '젠더하기'가 내게 신선하게 다가온 것은 젠더가 타고난 것이 아닌 사회/문화적 사회화의 결과로, 개개인이 능동적으로 매일 이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는 시각을 처음 접했기 때문이었다. 


'여자답지 못하다' 혹은 심지어 '남자답다'는 말 까지 들어온 젠더가 '여성'인 나는 이 이론을 나에게 적용해보는 것은 어떤가 생각해 보기로 했다. 우리 집은 딱히 성차별이 심한 편은 아니었다. 아예 없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또 심하게 성별에 따라 달리 대우했냐고 하면 그보다는 능력주의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한가지 예시를 들자면, 중학교 때 내가 학교에서 남자아이에게 맞았다, 괴롭힘 당했다고 했을 때 내 아버지는 "그걸 왜 맞고 있어? 중학생이면 아직 네가 걔들한테 힘으로 많이 밀리지도 않는데. 싸워, 불리하면 도구를 써서라도 싸워서 이겨, 다신 너 못 건드리게." 신체적 불리함은 도구를 사용해 해결하라는 아버지의 말은 나를 '여자아이'로 보기보다는 그저 조금 더 힘이 센 아이에게 맞고 온 체구가 작은 편인 아이로만 본 결과이다. 


내가 아홉 살 일 때 일찌감치 돌아가신 엄마에, '남성'으로만 살아본 아버지에, 남동생에, 이후 같이 살게 된 작은엄마와 작은 아빠는 아들만 둘 키워서 이제 막 성인으로 독립시켜놓은 상태. 이 환경에서 나는 가정 내에서는 '여성'으로의 사회화가 남들보다는 조금 덜 되지 않았나 싶다. (사실 여자라서 차별한다 싶으면 매번 따지고 들기도 했지만). 나는 무거운 짐도 내가 들 수 있다면 당연히 내가 드는 것이었고, 남자애들이 시비를 걸어도 "하지 마~"하며 울상을 하기보다는 곧장 받아치는 아이였다. 게다가 아버지는 '논리'와 '명분'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기에 어려서부터 나는 혼날 일이 생기면 '논리적으로' 나 자신을 방어하고 평소에도 명분을 생각하며 성장했다. 


그 결과(?) 지금의 나는 젠더 성향 검사를 하면 조금 남성 쪽에 가까운 결과가 나오는 사람이 되었다. 


20대에 사귀던 전 남자 친구는 어느 날 친구들을 만나고 와서는, 

"친구들이 여자친구 감정적이어서 이해 안 되네 어쩌네 하면서 지들끼리 얘기하는데 저는 속으로 '여자친구가 논리적이면 어떤지 니들이 알기나 하냐'라고 생각하다 왔어요... 공감이 안 돼..." 

라고 말했고, 헤어지고 나서는 "팡리(호칭이 이렇지는 않았다)는 내가 아는 남자 여자를 통틀어서 가장 남자다운 사람이에요"라고 했었다. 


Doing Gender, 젠더하기의 관점에서 이런 나를 보자면, 나는 '사회'와 '가정'에서의 사회화를 적당히 섞어 받고 애매한 위치에서 젠더하기를 하며 살고 있었다 정도가 되는 걸까. 


당신은 오늘 어떤 젠더를 수행하며 하루를 보냈나요? 

학생, 직장인, 딸, 아빠, 사장 등 여러 역할을 수행하듯 젠더를 매일 숨 쉬듯 수행하고 있는 모두에게 한 번쯤 오늘의 나는 어떤 젠더를 수행했나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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