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구하면서 숱하게 접하는 연령제한, 이것도 차별입니다만..
나는 스물아홉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독일로 유학을 갔다.
그 회사에 입사 면접을 보던 당시의 나는 스물여섯이었는데 면접에서
"신입으로 지원하셨는데, 여성분 신입치 고는 나이가 많네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보통 대학 졸업하고 곧장 취업한다고 치면 스물셋에서 스물 넷이니까, 나는 그에 비해 나이가 많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나는 중간에 돈 벌겠다고 휴학도 2년이나 했고, 이 회사 전에는 다른 회사 인턴이나 기간제 교사 등을 하면서 1년 넘게 보냈으니 '보통'의 신입 구직자들보다는 많은 나이였겠지. 이 '나이가 많다'라는 말은 스물대여섯 당시 구직기간 동안 면접에서 면전에 대고 하는 사람이 꽤나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작 스물여섯인데 나이가 많다니? 싶지만, 당시에는 '나 이제 나이가 너무 많아서 더 늦으면 이제 취업은 불가능할 거야'라는 불안감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직무가 나와 잘 안 맞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이 나이에 애매한 경력으로 이직은 불가능해'라고 생각해서 참고 일했다. 현실의 기준에 맞춰 나도 내 나이를 '너무 많은 나이'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스물아홉까지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서른을 목전에 두고 독일에 유학을 갔다. 학사도 이미 하나 있는데, 석사도 아니고 학사를 새로 하나 하겠다고 유학을 간 것이다. 주변에서는 "공부하기엔 늦은 나이지~ 다 때가 있는 법인데" 라거나 "지금 유학 가면 연애는 언제 하고 결혼하고 애는 언제 낳니? 조금만 지나면 노산이야" 소리까지 나왔지만 남들이 좀 그런다고 그만둘 만큼의 각오는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스물아홉 짜리 대학 신입생이 들어오면 어떤 지를 나는 운 좋게도 잘 아는 편이다. 왜냐면 첫 대학에 이미 학사 하나를 가지고 직장에 다니다 들어온 스물아홉 살의 언니가 있었으니까. 한 살 차이에도 현역 재수생 삼수생을 가르고 고작 1,2년 대학에 일찍 입학한 걸로 선후배를 따지는 한국의 대학에서 그 언니는 아주 특별한 존재였다. 처음엔 수근거리리고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많았지만, 현명하고 사회경험 많은 그 언니는 과대도 해가며 모두와 잘 지내다 졸업했다.
독일에서 학사과정 신입생으로 들어간 나는 다행히도 특이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대체로 서로의 나이에 딱히 관심도 없고 주 연령대가 만 18세에서 20세 사이 이기는 했지만 이십 대 중반도, 삼십 대 중반도, 싱글맘도 기혼자들도 그냥 같은 과 학생으로 학교를 다녔다. 어쩌다 내 나이를 알게 되면 놀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특별취급은 없었다. 나처럼 다른 분야의 학사를 이미 가진 한 살 차이의 친구도 있었고, 여러 나라에서 모인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공부하다 보니 나는 종종 나의 나이를 잊었다. 아니, 나이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있는 상황이 없었어서. 나는 그곳에서 그냥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삼십 대 중반으로 한국에 다시 돌아오고 보니 잠시 잊었던 '나이'가 여기저기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다니던 독일의 대학은 한 학기를 5개월 이상의 인턴쉽 혹은 교환학생으로 수료해야 졸업이 가능했는데, 그를 위해 한국에 있는 글로벌 IT 회사에 (2020년 초, 코로나 시작 직전쯤) 인턴으로 입사하니 같이 인턴 하는 친구들이랑 7-8살 정도는 차이가 났다(나를 다르게 대하지 않아준 인턴 친구들 고마워). 다행히도 외국계 회사여서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로 나를 나이로 다르게 대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하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이 인턴십이 끝나고 졸업하면 뭘 할 건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현실적으로 한국에서는 이 나이에 애매한 경력으로 경력직으로 일하기도 힘들고 신입은 더 어렵다는 이야기가 결론이었다. 내가 일하던 부서는 채용팀, 채용을 전문으로 하는 리크루터들의 말이니 이는 높은 확률로 맞는 말일 것이다.
원래 계획으로는 인턴십이 끝나고 곧장 독일로 다시 돌아가 남은 과정을 마무리하고 독일에서 취업을 할 생각이었는데,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하며 그 계획은 틀어졌다. 남은 과정들은 전부 온라인으로 전환되었고, 독일의 1일 확진자 수는 한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치여서 굳이 목숨을 담보로 독일에 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취업을 하기에는 언제까지 한국에 머물지는 또 모르겠고, 독일에 당장 가자니 딱히 안전하지도 않은데 갈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나는 2021년을 맞았다. 그동안에 논문 외의 과정들은 모두 수료가 끝났고, 나의 심경변화로 인생 계획은 독일에서 취업해 정착하는 것이 아닌 한국에서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보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 도전이 바로 '글'을 쓰는 것이었는데, 아 불행히도 이 것은 나에게 당장의 수입을 안겨주는 일은 아니고 나를 '작가 지망생'으로 만드는 일이었기에 나는 글을 쓰는 일을 하면서 병행이 가능한 아르바이트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숱하게 마주치는 나이 제한.
아니 30대 중반이긴 하지만 제가 그릇도 못 들 정도로 노쇠한 건 아닌데 말입니다....
특정 업종에서 미성년자를 채용하지 않는다던가, 육체적으로 힘쓸 일이 많은 일이어서 젊고 건강한 남성을 선호한다던가 하는 것은 일단 이해가 되지만 홀서빙은 대체 왜? 하는 생각이 든다.
정규직, 계약직을 구하는 사람인이나 잡코리아 등에 올라와있는 풀타임 구인공고도 그렇고, 알바몬에도 나이 제한은 생각보다 많이 등장했다. 아니,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없는 나이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기 때문에 당연히 이것은 내 생각보다는 많을 수밖에 없다.
아마도 이것은 '신입'이 상사보다 나이가 많으면 곤란해서겠지.
학년이 명확한 초중고를 거쳐 대학에서도 현역 재수 삼수를 칼같이 따지고 학번에 따라 선후배를 정해서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 사회에서는 직급이 낮으려면 나이도 어려야만 하는 것이다. 일하는데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떤 방면으로는 경력이 있어서 경력직으로 할 수 있는 일들도 충분히 있긴 하다. 하지만 내가 그 분야의 직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어서 다른 업종에 '신입'으로 들어가 일해보고 싶은 마음에 지원하려는 건데, 아 한국사회는 삼십 대 중반의 신입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잊었지 뭐야.
대학 때 서빙도 수없이 해봤고, 체력도 괜찮은 편이고, 서비스직에 모자라지 않을 대인관계 스킬도 가졌다지만 뭐 그런 게 구인하는 사장님 입장에서 나이만큼 중요하겠나.
이력서에 사진이 필수라는 회사도 많고, (2014년부터 외국계 회사에 주로 근무해서 사진 넣은 이력서를 본 지 오래되었다) 나이 제한을 써놓은 회사들도 많다. 아 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이런 부분들이 지금은 왜 이렇게도 이상하게 느껴지는지.
내가 유학가서 공부한 전공에서는 성별이나 기타 다른 요소(성적 지향, 나이, 인종, 종교, 장애여부 등)로 차별하지 않는 인사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배웠었다. 일단 독일에서는 피부색에 따른 인종차별 가능성을 막기 위해 이력서에 사진을 요구하는 일은 없다. 생년월일도 한국에서는 필수지만 독일에서는 필수요소가 아니었다. 이력서에서 중요한 건 나의 경력사항이나 학교 전공 등 직무와 관련한 부분이니까 다른 부분을 쓸 필요가 없고, 다른 부분을 어필하려 하는 행위는 한국에서 부모님 직업(엄마가 국회의원이시고 그런 거) 언급하는 것과 비슷하게 부정행위처럼 취급받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는 한국이고 나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은 삼십 대 중반이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아르바이트 정도라도 하긴 해야 하는데 이게 참 쉽지가 않다.
저... 아직 단순 서비스업이나 포장 업무도 못 할 만큼 노쇠하지 않았습니다 사장님들.
아주 드문 일이지만 이럴 때는 독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든다.
나이에 조금 더 관대한 사회, 우리는 안 되는 걸까?
이후 나는 노쇠한 몸 대신 손가락만 움직이면 되는, 30대도 할 수 있는 재택알바에 도전했다.
그 결과는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