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ng Lee Dec 17. 2021

저는 ‘탈코르셋’을 하고있는 게 아닙니다

제 헤어스타일은 '여성성' 혹은 '남성성'과 무관함을 꼭 말하고 싶어서요


투블럭을 처음 하게 된 건 정확히 2019년 3월 13일이다.

그 당시 그게 한국에서 유행이었다거나 해서 영향을 받은 부분은 없다.

당시 나는 독일에 있었고, 곱슬머리를 탈색에 염색을 반복해서 기르다 너무 상한 머리들을 자르며 숏컷이 된 상태였다. 그리고 나풀나풀 날리는 내 곱슬머리가 나의 실루엣을 내가 원하는 모양이 아닌 춥파춥스처럼 만들길래 안쪽 머리를 밀어버리면 좀 차분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안쪽 머리를 밀어봤다.


미용실에 갈 돈이 있던 시기는 아니었고(독일 미용실은 비싸고 나는 가난했고), 나는 이발기와 한국에서 가져간 미용가위가 있었어서, 옆머리는 거울을 보고 밀고 뒷머리는 대충 손으로 만져가면서 밀었다.

보지도 않고 밀었으니 당연히 대칭도 안 맞고 깔끔한 라인 같은 건 기대할 수 없었지만 나는 미용실 가서 쓸 돈을 아꼈고, 머리카락은 안쪽을 밀기 전보다는 좀 더 차분하게 내려왔다.

딱 봐도 좌우 대칭이 안 맞는 혼자 밀어놓은 뒷머리


이전에도 나는 내 머리를 스스로 자를 때가 많았다.

숏컷을 할 때도 많았고.

하지만 곱슬인 채로 숏컷인 건 이때가 처음이어서 이 정리 안 되는 아프로 아닌 아프로 스타일을 견디지 못해 투블럭을 처음으로 시도하게 된 것이다.

아니 보지도 않고 뒷머리를 어떻게 미나 싶겠지만, 어차피 윗머리로 가릴 건데 대충 밀면 어때?


다행히(?) 뒷머리는 내 의도와 거의 비슷하게 차분해졌고, 옆머리도 좀 덜 뜨고 정리하기 쉬워져서 나는 이날 나의 셀프투블럭을 아주 잘했다며 의기양양해있었다. 앞으로가 어떨지도 모르고...


투블럭은 생각보다 관리하기 어려운 머리였다.

처음에는 편하지만, 조금만 자라면 금방 지저분해져서 꾸준히 밀어줘야 한다. 곱슬머리면 더더욱 그렇다. 뭐랄까... 그 머리가 중력을 거스르고 옆이나 위를 향해서 무슨 새싹샐러드같은 모습으로 자라나는데 이게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다.


머리 손질을 좀 더 쉽게, 덜 하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막상 해보니 딱히 머리손질이 쉬워진 부분은 없었다. 꾸준히 정기적으로 손질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투 블록은 사람을 꽤 번거롭게 하는 편이었다.

그래도 마음에 든 부분이 있었다면 그건 그 스타일이 나에게 그런대로 잘 어울렸다는 것.


아 그러고 보니 숏컷을 처음 해 본 것은 대학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서이다.

몇 번 가서 좀 친해진 펑크락을 좋아하는 미용실 사장님이 너는 이게 어울리겠다며 과감하게 잘라버린 게 시초였다. 근데 또 그게 해보니까 잘 어울리네? 머리 말리는 것도 편하고? 물론 자주 잘라줘야 스타일이 유지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건 내가 가위를 사서 혼자 다듬다 보니 그런대로 할 만해서 난 숏컷을 자주 했었다. 그리고 곱슬 컴플렉스가 있던 때의 나는 끊임없이 머리에 '매직'을 해서, 기를 수 있을 만큼 머릿결이 버텨주지 못해서...라는 현실적 이유가 있기도 했다.


아... 이렇게 내 투블럭과 숏컷의 역사는 여기까지 하고 본론으로 넘어가자면,


나는 내가 한국을 떠나고 나서 '탈코르셋' 운동과 '꾸밈 노동'이라는 말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 어학사전에 등재된 꾸밈 노동의 정의

아, 꾸밈 노동. 내가 너무너무 싫어서 그 어렵다는 외국계 펀드회사 정규직을 따내고도(지금 생각해도 복지도 참 좋았고... 연말 보너스도...) 박차고 나오게 만든 이유 중 하나인 그것. 나는 정장 입고 구두 신고 화장하고 돌아다니는 게 그렇게 싫었다. 너무 불편해서 싫었다. 그래서 그나마 구두는 회사에 두고 운동화를 신고 출퇴근을 했는데 운동화도 그냥 가볍다는 이유로 러닝화여서, 출근길에 어쩌다 그 꼴을 본 친구가 "아무리 그래도 그 옷에 그 신발은 좀 아니지 않냐"라고 면박을 줬을 정도.


내가 일하던 많은 곳에서 꾸밈 노동은 분명 존재했다. 남자 직원들은 정장에 넥타이매고 구두만 신으면 되는 곳에서도 대부분의 여직원들은 화장도 하고 구두도 신었다. 나의 경우에는 리셉션 데스크는 없지만 '리셉션' 업무도 해야 했기에 회사의 얼굴인 만큼 단정한 정장과 구두를 신고, 과한 색조는 안 들어간 깔끔한 화장을 하라고 명확히 지시를 받았다. 클라이언트를 마주할 일 없는 직무라며 화장도 안 하고 정장도 안 입는 여자 상사가 있긴 했었는데, 아 이 상사가 주로 내 복장이나 화장을 지적하곤 했었지.


나는 정장도 불편하고, 구두는 더 불편하다. 내 발은 양 발이 사이즈와 모양이 달라서 어떤 구두를 신어도 기성품을 신으면 결국 한쪽 발은 아프고 불편하다. 하지만 뭐 남녀 따지기 전에 모두가 정장 입는 업계이고 회사인 걸 알고 들어갔으니 이건 뭐 그럴 만 한데, 매일 화장을 해야 하는 건 꽤 번거롭고 억울한 일이었다. 기껏해야 10분이 채 안 걸리는 화장이었대도 분명 시간과 에너지와 돈이 들어갔다.  그것은 분명히 성차별적인 처사였어서 나는 여성에게 이 '꾸밈 노동'을 암묵적 혹은 직접적으로 강요하는 사회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심지어 기간제 교사로 고등학교에서 일할 때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에게 "선생님은 왜 예의 없게 화장도 안 하고 다녀요?"라는 소리까지 들어봤다. 내가 화장을 하고 안 하고 가 나의 교수능력과 하등의 관계가 없고, 학생의 학업성취도와는 더더욱 관련이 없을 텐데. 화장을 안 해서 예의가 있네 없네를 학생이 교사에게 논하는 사회는 뭔가 잘못되긴 했잖아? 왜 여자는 일하러 갈 때 당연하게 화장을 해야 하는 건데?


다음 검색창에 '탈코르셋'을 검색하면 나오는 백과사전 부분 발췌


그런데, 나는 탈코르셋은 잘 모르겠다. 

처음에 나는 이것을 성차별적인 꾸밈 노동을 없애자는 운동으로 인식해서 긍정적으로 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운동이 에듀윌 시사상식에서 말하듯이 [사회에서 '여성스럽다'라고 정의해 온 것들을 거부하는 운동]이라고 한다면 내가 이것도 긍정적으로 보는지는 잘 모르겠다.

[긴 머리, 장신구, 섹스어필하는 복장, 화장, 하이힐 등을 사회가 주입한 여성 억압이자 성적 대상화로 규정하고 이를 거부하는 운동이다]라는 위키백과의 정의를 보면 더더욱 의문이 든다.


분명 사회에는 '여성스럽다'라고 정의한 젠더 이미지라는 것이 존재한다. '여성스러움'의 반대말로 '남자다움'같은 말도 존재한다.


그런데, 이 '여성'스러움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 않나? 여성스러움을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여성스러움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문제겠지만, 여성스럽다고 정의해 온 것들을 거부하고 부정하고 이를 '여성운동'이라고 부른다면 이건 좀 이상하잖아. 여기서 이상한 것은 이 '여성운동'이라는 것이 '여성성'을 부정적인, 벗어버려야 하는 사회의 편견일 뿐인 것처럼 폄훼해버리는 부분이다.


여성스러운 게 나빠?

긴 머리가 안 좋은 거야? 하이힐을 신으면 나는 사회가 주입한 여성 억압의 피해자가 되는 건가?

장신구와 화장, 여성에게 '꾸밈'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사회는 분명 잘못되었지만-

여성성 자체가 나쁜 건 아니잖아. 왜 여성스러움을 여성 자신을 위해 부정해야 하고 탈피해야 할 고루한 사회의 편견으로 취급하는 건지.


내가 생각하는 평등한 사회는, 여성성도 남성성도 동등하게 존중받는 사회이지 여성성이 사라진 사회가 아니다. 나는 여성스러운 여성도 아니었고, 여러 테스트 등에서는 나를 남성성이 조금 더 강한 것으로 평가하지만 그게 내가 남성성을 쫒고 있어서는 아니다. 나는 나의 여성성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아니, 나는 나의 여성성을 긍정한다. 내가 생각하는 여성스러움은 안 좋고 부정적인 부분보다는 긍정적인 부분이 더 많아서, 여성스러운 것은 충분히 멋진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의 셀프투블럭으로 시작해서 탈코르셋 운동 이야기가 나온 것은 이 탈코르셋이 투블럭을 하고 다니는 나에게 생활 속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숏컷을 하고, 투블럭을하고 '여성스러운'옷을 잘 입지 않는 것으로 사람들이 나의 가치관이나 정체성을 평가하는 상황을 한국에 들어와서 종종 마주쳤다.


예를 들자면 여성들 중에 내 머리스타일이나 복장으로 나를 '탈코르셋에 성공한 멋진 사람'으로 칭찬하는 사람들이 몇 있었던 것인데, 나는 탈코르셋의 정의를 찾아본 후로는 그게 영 마땅찮았다. 나는 여성스러움이나 나의 여성성을 거부할 생각이 전혀 없는데? (그냥 탈색 염색 많이 하다 보니 머리가 다 끊겨서 짧게 잘라버린 때도 있었고, 그냥 기분 전환 삼아 자르는 날도 있고) 그리고 남성들 중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님은 페미니스트잖아요" 하는 경우.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서로 잘 모르는 사이인 상황에서 내 가치관이나 정체성을 외모로 유추하는 것은 불쾌하다. (그리고 어떤 집단에서 '페미니스트'라는 용어 자체가 멸칭으로 쓰인다는 것도 얼마 전에 알았다.)


'탈코르셋 운동'의 의도는 알 법하다. 사회에서 '강요'하는 여성성은 원치 않는다는 것. 그것을 거부할 권리가 여성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자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성성을 취하지 않는다고 해서 '멋질'이유는 하나도 없고, 여성스럽다고해서 사회적 강요에 굴복한, 억압당한 여성 취급을 당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여성성도 남성성도 그 자체가 선하고 악하고 옳고 그른 게 아닌데.

누구나 어느 정도 여성적이고 어느 정도 남성적 일지를 선택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공존하는 나를 좋아한다. 두 가지 면 중 특별히 좋아하고 싫어하는 면은 없다.

나는 주로 숏컷에 오버핏 티셔츠를 입고 다니지만, 가끔은 긴 생머리에 몸에 붙는 원피스를 입고 싶은 날도 있다. 내가 숏컷을 하고 투블럭도 하고 하는 건 단순히 그게 나한테 아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평상시엔 필요를 못 느껴서 화장을 잘 안 하지만 어느 날은 진한 스모키가 하고 싶은 날도 있고, 하이힐을 신고 싶은 날도 있어서 실제로 하이힐도 두어 개 가지고 있다.


남성이 여성스럽다는 말을 들으면 그것은 칭찬으로 보지 않는 사회다. 여성스러움을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계집애 같이"라는 비하 표현이 아직도 존재하는 사회다. 반면에 "남자답다"는 칭찬이지.

이런 사회에서 나는 여성성을 더 긍정하고 싶어 진다.



일단 투블럭 자체를 꾸밈노동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는 분들이 있는데, 아 투블럭은 저에게 아주 관리하기 번거로운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스타일입니다. 이러고 다닐 당시에 다닌 회사는 직원들의 스타일에 어떤 제동도 걸지 않았어서 딱히 뭘 용기내서 한 것도 없고 솔직히 그냥 BTS보고 예쁘길래 따라했어요. 숏컷에 큰 옷들 잘 입고 다니니 탈코르셋을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종종 만나지만, 그거 그냥 제 취향이에요. 체형상 저한테 잘 어울리고 제가 좋아해서 입고 다니는 겁니다. 제가 여성스러운 스타일이 더 잘 어울리고 그게 더 취향이었으면 그런 걸 입고 다녔을 거예요.

결국은,


저는 강요되는 꾸밈 노동은 거부하지만 여성성을 부정하진 않고 긍정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하고 싶었네요.

오늘은 이렇게 글을 마쳐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