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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g Lee Dec 25. 2021

빌보드 Hot 100으로 알아본 헤게모니

대중문화에 의미없는 부분은 없다

시작하기에 앞서, 이 자료는 내가 대학에 다닐 당시 2019년에 개인 자유 프로젝트로 조사해서 작성 및 발표했던 문서에 기반함을 밝힌다.


일단 주제가 젠더와 다양성에 관한 것이되 일단은 자유다 보니 처음에는 뭐가 프로젝트 주제로 좋을까 하던 차에, K-pop을 좋아하던 독일인 친구와 BTS의 빌보드 입성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이걸 주제로 프로젝트를 같이 하자! 하고 의기투합하게 된다. 단순히 우리가 BTS와 빌보드를 주제로 잡은 것은 아니지만, 빌보드 차트에서 K-pop 밴드의 노래를 볼 수 있는 이 시점에 과연 빌보드는 얼마나 인종적/문화적/젠더적으로 평등한가를 간단한 지표들을 통해 알아보기로 한 것이다.


발표문의 제목은 "Hegemony in the music industry: How women are described and presented"로 정했다. 대주제는 전반적 차별이었지만, 준비를 하다 보니 여건상 다 다루기는 어렵다는 판단에 성차별에 포커스를 맞추게 되었다.


여기서 헤게모니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나는 Gramsci의 헤게모니의 개념을 가져다 썼다. 그람시의 헤게모니는 도덕적이며 철학적 개념인데, 특정한 가치들이 사회에서 지배력을 갖게 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나는 헤게모니란 사회의 권력층이 단순 물리적 경제적 힘으로의 지배가 아니라 지적, 도덕적, 문화적 지도력으로 권력을 유지해나가는 방식이라고 이해했다. 교육, 종교, 미디어 등을 통해서 도덕적 문화적 가치관을 주입시켜 그런 문화를 사람들에게 내면화시켜 시민사회 안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그런 과정. 사실 미디어를 통해서 우리는 아주 쉽게 그런 시도들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이 헤게모니가 음악산업에서도 나타나는지를 알고 싶었다. 음악산업에도 지배적 그룹이 있는지, 그리고 만약 지배적 그룹이 있다면, 그들은 이 산업 안에서 여성은 어떤 존재로 묘사하고 그를 통해 어떠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프로젝트에 사용된 차트는 2019년 6월 첫째 주의 빌보드 Hot 100중 1위부터 50위까지의 차트이다.


빌보드 상위권 아티스트들의 인종 분포

일단 인종으로는, 백인, 흑인이 주류를 이루었고 Mixed는 자신을 혼혈이라고 소개하는 경우, Undefined는 자신의 인종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한 경우를 뜻한다. 인종적으로는 백인과 흑인이 빌보드의 주류라는 것이 명백해 보인다. 근데 그건 백인과 흑인이 그만큼 많으니까 그런 거 아냐?라고 한다면, 2019년 기준 미국의 인종 인구 분포는 이 음악차트와는 차이가 있다. 아래 자료만 봐도 백인 60%, 그다음으로 라틴계가 18.5%인데, 빌보드 차트에서 라틴계는 고작 2%를 차지할 뿐이다. 이 업계에서 인종적 다수=주류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2019년 기준 미국의 인종별 인구 분포

 

그렇다면 젠더로 통계를 내보면 어떨까 하고 봤더니, 아 이건 좀 더 차이가 크다.


남성이 72%로 명백한 주류를 이루고 있고, 여성은 고작 20%, 그리고 자신의 젠더를 밝히지 않거나 고정하지 않은 경우는 8%였다. 물론, 이 통계는 2019년 6월의 top1-50 차트에만 해당되는 통계이기 때문에 그다지 유의미한 통계적 근거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 음악계의 젠더 불균형이 어느 정도인지를 이 차트를 벗어나 더 알아보기로 했다.



2019년에 2월에 발표된 "Inclusion in the Recording Studio?"라는 조사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인기 있었던 700개의 노래들 중 인종별, 젠더별 통계적 수치에 대해서 말해준다.

https://assets.uscannenberg.org/docs/aii-inclusion-recording-studio-2019.pdf


이 자료에 따르면 전체 아티스트들 중 여성의 비율은 21.7%로 위에 언급한 빌보드 차트와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고 작곡가 중엔 12.3%만이 여성이었으며 여성이 프로듀서인 경우는 고작 2.1%에 불과했다.

2019년에 발표된 리코딩 스튜디오에서의 젠더 차별에 대한 자료에 기반한 요약


BTS; 방탄소년단을 통해 우리에게도 조금 익숙한 이름이 된 그래미는 그럼 어떨까? 아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그래미는 빌보드와도 또 다르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를 통틀어 그래미에 노미네이트 된 아티스트 중 여성의 비율을 10.4%.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여성인 걸 생각하면 대단한 숫자 아닌가?


https://assets.uscannenberg.org/docs/aii-inclusion-recording-studio-2019.pdf


뭐 이런 자료들이 있다고 해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남자들이 음악을 더 많이 만들고 잘 만드니까 그런 거지"


단순히 그런 거라면 이게 그럼 문제가 없는 것일까? 대중음악산업은 그저 남성이 여성보다 더 뛰어난 분야구나 하고 납득하면 그만인가?


내 생각은 그렇지는 않았다. 이렇게 주류계층이 문화산업의 한 축을 휘어잡고 있으면, 그것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어떻게? 그 '주류계층'에게 유리한 쪽으로 헤게모니가 형성되는 것이다. 잘 나가는 아티스트는 남성인 게 당연하고, 잘 쓰는 작곡가가 남성인 것도, 최고의 프로듀서 중 여성이 아주 적은 것이 당연해지고- 이런 업계에서 여성은 과연 어떻게 묘사되고 소비될까?


나는 저 2019년 6월 첫 주의 빌보드 top 1-50의 가사를 하나하나 다 읽어봤다. 그리고 내가 찾아낸 차별적 단어들의 수는 꽤 인상적이었다. 어떤 특정 계층이 듣는 것이 아닌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이라는 빌보드 차트 상위에 오른 이 인기곡들 중엔 차별적인 표현들이 당초 내 예상보다는 훨씬 많았다.


혹시나 내가 이 단어들의 뜻을 잘못 알고 있나 싶어서 사전에 검색도 해봤지만, bitch, pussy, nigga의 사전적 의미는 Offensive- 즉, 모욕적인 단어라고 대부분의 사전에 명시되어있다. 그리고 대표적으로 찾아본 이 세 단어 중 bitch와 pussy는 여성비하 표현이다.


아 근데, 단순히 이 단어가 쓰인 게 문제가 아니라 이게 어떤 맥락에서 가사에 쓰였는지가 중요한 거 아니야?라고 할 수도 있지. 그래서 단순히 Ctrl-f를 써서 단어만 찾지 않고 가사를 다 읽어봤는데 맥락상으로도 이건 모욕이 맞는 것 같은 경우가 많더라. 간단히 예시를 좀 들어보자면 이런 식이다. (많은 것 중에 추리고 추려서)



이 예시에서 좌측엔 가사를 우측에는  No.로 바는 차트에서의 순위, 아티스트의 이름 그리고 곡의 제목을 적었다. 자 저 네 곡의 가사를 차례로 대충 번역해보자면 (나는 번역엔 별 재능이 없다는 걸 이번 기회를 통해 깨달았다)


1. 여자친구 있지만 바람도 피우고, 황소 타고 여자들 끼고 영화 같은 내 인생

2. 그녀는 돈 없는 내가 지겹고 거물이 필요하대,

   나는 부자가 되어 엉덩이 빵빵한 여자들과 집 앞에 차를 세워서 주방 카운터를 스트립클럽으로 바꿔

3. 그녀는 너 진짜 부자야?라고 물어.  Bitch, 난 거물이지

4. 열 명의 Bad Bitch가 날 따라오고, 그중에 하나는 완전 명작이지. 핌 필이 쉽진 않지만, 그녀의 입을 열게 해 먹게 해


뭐 이런 식인데, 물론 내 번역이 엉망이긴 하다만 이게 어떻게 들리시나요?


첫 번째는 여성을 성공의 부산물로 묘사, 성취하는 물건 취급을 하고


두 번째는 돈만 바라는 속물 같은 여성에게 차이고 부자가 되어 엉덩이 큰(성적 대상화된) 여성들을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며 성공을 뽐내는 내용이며  


세 번째는 역시 돈 밝히는 여자가 너 부자냐고 묻자 그런 그녀를 Bitch라고 부르며 자신은 거물이라고 소개.


네 번째는 많은 Bitch들이 자길 따른다며 여성을 역시 성공 과시 수단으로 보고 마스터피스네 뭐네 평가하며 성적 대상화, "핌 필이 쉽진 않지만, 그녀의 입을 열게 해 먹게 하지" 이 부분은 어떻게 들리시는지...?  이 곡의 가사는 여기엔 일단 좀 순화한 부분만 쓴 셈이다. 전체적으로 배금주의와 자기 과시, 성적 대상화와 여성비하가 대부분의 가사를 구성한다.



이 가사들은 인디 힙합씬의 일부가 듣는 특이한 노래가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가장 인기 많은 곡들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이 가사를 들으면서 사람들은 여성을 자연스럽게 남자의 성공에 따라오는 성취로 여기고, 성적 대상화하고, 돈만 밝히는 꽃뱀들로 인식하겠지. 그런 여성에 대한 이미지가 이 인기곡들의 가사에 듬뿍 묻어있는데, 이것을 거부감 없이 듣고 소비하는 것만으로도 여성 혐오와 비하는 충분히 재생산되고 있다고 봐도 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것이 '주류' 혹은 이 젠더 중 '지배계층'인 남성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문화를 뿌리 깊게 박아내려 가는 현상이라고 본다. 그람시는 지배계급이 자신만의 가치와 규범을 전파해 모든 이들의 상식적 가치가 되고, 이를 통해 현상유지를 이뤄낸다고 말한다. 이러한 문화적 헤게모니는 제도나 미디어를 통해 생산되고 재생산되며 그들이 원하는 세상을 더욱 공고히 한다.


남성이 지배하는 음악계, 거기에 넘쳐나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와 여성 혐오 혹은 비하는 과연 우연일까? 우리가 가볍게 소비하는 이 팝송들과 대중문화는 정말 순간의 고찰도 없이 소비해도 괜찮은 것일까?


나는 사실 빌보드 차트에 있는 인기 음악들을 찾아 듣는 취향은 아니었어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처음으로 빌보드의 실태를 알게 되었다. 미국의 대중문화 중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음악산업이 얼마나 차별적이고 또 거기에 얼마나 각종 혐오와 비하가 넘쳐나는지.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프로젝트에 사용한 차트 내에서 여성 혐오적 표현이 들어있는 곡들의 장르는 전부 힙합이었다. 뭐, 그냥 그렇다고.


문화는 미디어를 통해 누군가에 의해 생산되고 또 전파되고 재생산된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권력을 가진 지배계층일 가능성이 높고, 우리는 그들이 던지는 메시지를 비판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그게 가볍디 가벼운 대중문화로 느껴지고, 그저 노랫말일 뿐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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