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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맘 영상에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떠올랐다.

대치맘은 왜 풍자의 대상이 된 것인가

한동안 개그우먼 이수지 님의 대치맘 라이딩 일상 패러디 영상이 이슈였다. 그녀의 연기에 온갖 커뮤니티에 파장이 컸다. 가히 그녀는 천재가 아닐 듯싶다. 어쩜 그리 사람의 특징을 잘 관찰해서 쏙쏙 잡아내는지 훌륭한 희극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영상의 화제성으로 인해 몽클레어패딩, 밍크조끼, 고야드 제삿날을 맞을 정도였다. 이제는 이슈가 사그러든지 좀 된 것 같은데 내 마음속에는 풀리지 않는 무언가가 계속 맴도는 느낌이다. 왜일까…


먼저 몽클패딩, 밍크조끼, 고야드 가방은 죄가 없다. 왜냐하면 라이딩착장으로 최고이기 때문이다. 몽클 패딩은 가격을 치우고 본다면 가볍고 따뜻하고 실용적이다. 밍크조끼도 팔이 없어 편하고 따뜻하다. 라이딩할 때 왔다 갔다 부대끼는 느낌이 적다. 그런데 그 맘들에게 비싼 가격이 문제일까? 그들은 이미 에르노, 버버리, 막스마라, 로로피아나 다 있겠지. 다 갖추고 상황에 맞게 골라 입겠지. 가방도 고야드도 저거 하나만 있겠어? 고야드 미니앙주는 가볍고 탑핸들이 길게 있어 손에 걸기도 편하고 어깨에 메기도 편하다. 어느 정도 형태감도 있어 물건을 넣고 빼기 편하고 차에 타서 보조석에 휙 던져버리기도 편리하다. 거기 맘들이 남들 다 한다고 따라 했다고 뭐라 하기에는 아이들 라이딩에 적합한 최고의 착장이 아닐까 싶다.



다 똑같은 명품을 우르르 사용하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면 대치맘들의 행동이 잘못된 건가? 그들이 맘충 행동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크게 잘못은 없어 보인다. 그 영상 뜨기 전에도 대치 맘들을 아동학대 하는 사람처럼 묘사하는 것을 많이 봤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아. 물론 공부하기 싫다는 애들 억지로 등 떠밀고 등짝 때려가는 엄마가 왜 없겠어. 있겠지. 그런데 그런 애들 어차피 오래 못 가고 학원에 전기세 내주러 보낸다는 자괴감이 들면 어느 정도 줄이더라) 그곳의 대부분은 공부를 더 잘하고 싶고 이기고 싶어하는 애들일 것이다. 그런 아이들 열심히 뒷바라지해 주는 게 무슨 죄가 되는가. 더군다나 그 가정의 남편이 동의했다면 부부가 상의해서 정한 것인데 왜 남이 왈가왈부? 또한 대치맘들을 헬리콥터맘처럼 묘사해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도 아무것도 자기 손으로 할 줄 모르는 애들로 키운다고 뒷말을 한다. 이 또한 편견에 가깝다. 오히려 어렸을 때부터 자기 삽질을 바로바로 피드백받아 수정하는 더 효율적인 전략을 체득한 아이들이 일을 잘할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


아마도 대치맘들이 미움받는 것은 그들이 특별히 잘못을 했다기보다는 아이들의 평균을 올려버려 다른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자극해서이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사교육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7세 고시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메디컬 준비를 왜 아동기 때부터 하고 좋은 학원을 들어가기 위한 레벨 테스트 통과 준비용 학원도 왜 있어야 하는지 일반 서민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단순히 그들만의 리그라고 놔두라고 하기에는 대치동 및 강남 학군지에서 끝나는 것 아니다. 서울의 다른 학군지로 다 퍼지고 그다음에는 지방 학군지 순으로 퍼진다. 학군지들이 그렇게 평균 올려버리면 나머지 지역이라고 뭐 그대로 있을까. 학교 선생님은 아무리 교육과정에 맞게 수업을 한다고 해도 반 평균적인 수준을 놓고 가르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반 평균이 점점 올라가면 사교육 혜택에서 벗어난 아이들은 공교육인 학교수업을 못 따라가게 된다.


이 점에서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운 아이들이 대치맘 이슈와 관련된 진정한 피해자가 아닐까 싶다. 나는 서민동네에서 자랐다. 길 하나를 두고 반대편은 전문직들이 모여사는 학군지였는데 중학교 배정을 그 지역으로 받아버려 나의 지옥이 시작되었다. 나의 부모는 학교공부 예습복습, 동네 보습학원 정도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평범한 서민이었다. 내 세대는 지금처럼 사교육 과열된 시대는 아니고 조금씩 꿈툴꿈틀거리면서 조기유학도 시작된 세대였다. 초등학교 때까지 평범하게 살다가 학군지 중학교에 입학하고 보니 그 지역 공부하는 애들은 이미 수학의 정석을 떼고 왔더라. 영어도 고등학교 수준정도까지 배우고 왔다. 예체능 과목들도 부모들이 과외 선생님을 다 붙여 실기를 준비시켰다.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도 힘들었는데 걔네랑 경쟁은 무슨. 그래도 나름 발버둥을 쳤다. 그런데 시험기간이 아니어도 새벽 늦게까지 공부하며 불태웠는데도 반 10등을 못 들어갔다. 지금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때 학교에서 나는 동네 보습학원 하나 다니는데 공부 곧잘 하는 아이로 불렸다. 그런데 집에서는 공부 못한다고 구박을 엄청 받고 지진아 취급을 당했다. 너무 스트레스였다. 매일 우울하고 성적표 나오면 울고불고 내 지능 탓 내 노력 탓을 하던 자괴감 쩔던 너무 불행한 시절이었다. 얼굴에는 항상 그늘이 져있고 오직 성적에만 집착했다. 꿈에서도 수학문제를 풀었다. 그때의 나는 어려서 뭘 몰랐다지만 어른들은 그런 현실을 제대로 다 알았을 거 아냐. 그 어떤 어른도 선생도 그 불편한 진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노력하면 다된다고 무시하고 혼내고 압박하고 닦달하고 너무하지 않았나?





그렇다. 대치맘들이 경쟁 과열로 평균을 올려버리고 일반 서민 가정까지도 불안감을 부추긴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대치맘 영상에 열광하는 것은 그들을 은연중 까고 싶었던 마음이 발현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때다 싶었던 거지. 내가 느끼는 불안감으로 그들의 행동이 잘못된 것으로 투사한 것이다. 자기들은 주체적으로 생각할 줄도 몰라 그저 남들 따라 몽클 입고 고야드 든다고 후려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렇게 후려친다고 뭐 효과가 있나? 뭐 우리나라 사교육 과열 진정이라도 되나? 내 입장에서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들의 시선에서 본다면 진짜 잘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치맘이 아니라 명확한 교육철학도 없고 대치맘들처럼 뒷바라지하지도 않으면서 노력하면 다 된다고 저 애들만큼 해내라고 코너로 밀어버리는 어른이 아닐까 싶다.


나는 교육 전문가도 아니고 사교육 시장에 있는 것도 아니고 하물며 입시준비를 하는 자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내가 알면 뭘 그렇게 알겠나 싶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사교육 문제는 진짜 해답을 찾기 어려운 복잡한 사회 문제이다. 그렇지만 내가 학군지 아이들과 경쟁하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냥 그 애들과 굳이 경쟁하려 하지 않고 그냥 먼저 가라고 비켜줄 것 같다. 인생은 길고 어차피 공부는 평생 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비켜주고 나는 옆에서 누가 뭐라고 스트레스 주던 내 페이스대로 즐겁게 공부할 것 같다. 이게 내가 찾은 나를 위한 나만의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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