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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수의사에게 왜 이렇게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걸까

아이 아픈 것만으로도 죽겠구먼

by 유리멘탈 심리학자
아픈 노견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 말이 그렇게 가슴 찢어지는 말이 될 줄은 아이가 건강했을 때에는 미처 몰랐다. 2년 전 아이의 시한부 판정을 받고 퇴원한 날 이후로 내 일상은 완전히 변했다. 중간중간 고비를 또 넘겼지만 아이는 아직 잘 살아있다. 물론 보호자는 간병 스트레스로 하루하루가 참 고되다. 그래도 수의사가 당초 예상했던 날을 보란 듯이 훌쩍 넘겨 얼마 전 17세 생일을 맞았다. 이 장한 아기 할아부지는 폐, 심장, 신장, 간, 뇌 등 주요 장기들에 문제가 있지만 하루하루 잘 버티고 있다. 기특하다. 나는 아이의 응급상황을 고려해 24시간 운영되는 동물 병원을 이용하고 있다. 진료실 외에도 입원실, 응급처치실을 크게 갖춘 규모가 꽤 있는 병원이다. 만족스러운 시설 제외, 여러 가지로 서운한 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옮길 수도 없어 진퇴양난에 빠진 상황이다. 왜냐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반드시 연중무휴 밤에도 운영이 되는 곳에 꼭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곳에도 24시간 센터가 있기는 하지만 업계끼리의 상도덕인 건지 서로 피해를 주지 않을 거리에 위치해 있어 집에서 멀다.




저 정도로 시스템을 잘 갖춘 동물병원이 뭐가 문제일까. 먼저 노견 진료가 기본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이해가 간다. 할 수 있는 검사도 제한적이고 자기 증상을 직접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한다 치더라도 진료가 굉장히 방어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모르겠다’가 기본 대답이고 오히려 우리 아이를 통해 케이스 스터디하는 느낌이다. 혹여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으려는 것인지 말도 수시로 바뀌니 신뢰하기도 어렵다. 물론 지금 상태에서 전신마취를 못하니 조직검사, MRI 검사 등 자세한 검사가 불가한 상태에서 해줄 수 있는 것들이 제한된다는 것은 알겠다. 그렇다면 더욱더 철저하게 관찰하고 살펴봐줘야 하는 거 아닌지. 그저 이미 평균수명을 넘었다고 언제 가도 이상하지 않다고 한다. 그 말이 뭐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보호자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말 또한 아니지 않나. 하지만 불만이 있다고 해도 나는 철저한 을이다. 왜냐면 병원을 옮긴다 해도 고령의 아픈 아이를 받아줄 병원이 있을까. 다른 데서도 꽤나 부담스러울 것 같다. 게다가 응급상황과 입원 시 매일 면회를 생각하면 집에서 무조건 가까워야 한다. 아이에게도 그나마 오래 봐온 익숙한 사람이 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불편한 동행을 해오고 있다. 만약 라포형성이 잘 되어있으면 힘든 상황에서 한 팀이 되어 서로 으쌰으쌰 해가며 조금은 부족할지라도 상의해 가며 케어할 수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재의 수의사는 노견을 간병하는 보호자의 힘든 심정을 헤아리는 것을 자신의 일의 범주로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보호자의 간병 어려움, 케어 노하우 등과 관련한 것은 철저히 선을 그었다. 내가 알아서 알아보고 현재 이렇게 하고 있다고 공유하는 상황이다. ‘수의사가 동물의 질병만 잘 보면 되지’라고 한다면 뭐 딱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투병생활 전반에 관한 것도 알고 있어야 하는 부분 아닌가. 더욱이 동물은 말을 못 하니까 보호자를 통해 아이의 상태를 파악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보호자의 관계형성이 더 중요한 거 아닌가 싶다.




물론 이건 철저히 나의 입장에서 쓴 나의 불만이다. 내가 지금 초초초초초초 예민 상태라서 분노와 스트레스가 극에 달아 안 좋게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수의사 입장을 들어보면 또 다를 것이다. 자신이 정한 바운더리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매일 찔찔 우는 보호자와 아픈 동물들 진료하면서 닳고 닳아 쌉T가 되었을 수도 있고. 하지만 보호자가 그 비싼 병원비를 지불한다면 그에 따른 기대치라는 게 있지 않나.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생기면 새로 나온 논문 열심히 찾아서 공부하고 보호자와도 라포형성 잘해주길 바라는 게 과도한 기대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는 응급 상황을 위해 현재의 병원을 유지한 채 세컨드 오피니언을 위해 다른 병원을 가보는 것도 좋은 대안일 수 있다. 음. 돈이 문제다. 지금도 돈이 어마무시 드는데 다른 데 가서 또 검사 또 진료. 돈이 원수지. 결국 방법이 없다. 아이의 병에 대해 스스로 공부하고 생활일지 재활일지 써가며 돌본다. 참 고되다. 어쩌면 나도 안다. 지금 상황에서 수의사는 방어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하지만 아픈 노견을 돌보며 지쳐버린 보호자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도 원 팀이 되어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 보자며 협력하는 태도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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