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눈썹이 뭉텅이로 빠지는 꿈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찝찝한 기분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30분 일찍 출근을 했다.
점심은 평소보다 30분 늦게 먹어 배가 고팠다.
그렇게 먹은 점심은 뜨거운 육개장이었다.
뜨거워서 천천히 먹은 탓에 평소 먹는 양의 반을 못 먹었다.
점심시간 직후 바로 미팅이 있어 커피를 건너뛰었다.
그렇게 참석한 미팅은 늦게 시작하고, 일찍 끝났다.
지루한 오후 시간을 마치고 향한 마지막 필라테스 수업이었다.
저녁을 건너뛰고 운동하러 와서 그런지 올 때마다 지나치는 파파이스가 눈앞에 아른 거렸다.
“저 오늘 저녁에 파파이스를 먹을 거예요!”
마지막 세트였다.
‘괜히 말했다.’
운동이 끝나고, 매번 먹고 싶었던 파파이스 앞에서
순간의 찰나, 여러 경우의 수를 따져가며 고민했지만,
운동한 게 아까워 지나쳤다.
파파이스를 지나치고 가는 길에, 회사 밖에서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은 회사 사람을 만났다.
괜히 반가워 말을 걸었다.
집에 오는 길,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아쉬워,
평소라면 먼저 전화를 걸지 않는 나지만,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중에 전화드려도 될까요?’ 아이메시지가 왔다.
친구가 바쁜 것 같아, 만날 사람도 없는 월요일 저녁
집에서 푹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집에 들어와서 잘 준비를 했다.
잘 준비를 마치고 나니 같이 놀자고 연락이 왔다.
이미 다 씻고 난 이후라 안 나간다고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
괜히 생일 주간이라, 집에 있기 싫은 마음이 이겨 준비를 하고 나섰다.
택시를 타고 도착지까지 800m.
10분이 걸려서 300m를 지나고 500m가 남으니,
걷는 게 더 빠를 것 같아 답답한 마음에 내렸다.
멀리서 어렴풋이 보이던 사이렌이 선명해졌다.
단순하게 시위를 하고 있는 줄 알았던 나는,
그 넓은 4차선, 도합 8차선이 모두 통제가 되어있는 걸 보고 무언가 잘못된 걸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시야에서는 사이렌과 망가진 오토바이 밖에 보이지 않아,
처음에는 뉴스에서 자주 언급되는 자동차, 오토바이 사고인 줄 알았다.
사거리가 모두 통제되어 약속 장소에 가기 위해 지하철 반대편 출구로 나오는데,
눈앞에 몇 대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구급차가 체스말처럼 정차해 있었다.
형형색색의 사이렌이 눈을 부실 때,
처음 보는 관경에 순간 현실인지 분간이 안되어
내가 지금 보는 게 현실인가 의구심이 들었다.
도착지로 설정한 곳에는 안전 펜스가 해초처럼 널브러져 형태를 알 수 없는 모습으로 흩날려 있었다.
속보를 접했다.
역주행 차량이 인도로 돌진해 사상자 13명이 나왔다.
서울 도심에서 일어난 대형 교통사고였다.
예정대로 나왔더라면,
뉴스에 나오는 게 내 이야기가 될 수 도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뱉지만,
누군가는 가지지 못할 미래를 가진 것 같은 마음에 죄스럽다.
우연이 많았던 오늘 하루,
타이밍이 어긋나고,
한편으로 어긋나지 않아서 큰 사고를 피해 간 것 같다.
나오기 전에 엄마에게 안부 인사를 하지 않은 게 떠올랐다.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르니,
늘 소중한 사람에게 사랑의 언어를 아끼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