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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dinaryjo Sep 28. 2022

말 섞기 싫은 사람의 태도

좋은 대화는 말이 아닌 태도에 있다

“대화와 소통을 잘 하자”

이 말에 맨 처음 떠오르는 건 '화술'이다. 화술은 "어떻게 그럴듯하게 말할까" 혹은 "어떻게 말해야 설득할 수 있을까"하는 기술 연마다. 의도 자체는 매우 선량할 수 있으나, 내 생각에 이건 속임수 연습에 불과하다. 항변은 가능하다. 근데 그게 나쁜거냐고, 내 생각을 제대로 전하려면 제대로 된 형식이 필요할테고 그게 바로 화술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전제. 대화의 핵심은 상대에게 내 의지를 관철시키는 일일까. 내가 옳다고 생각한 걸 끝까지 밀어붙이는 게 목적일까. 만약 그 대화가 정쟁에 관한 방송토론이라면 맞다. 하지만 일상 대화에서 저러는 모습을 나와 남에게서 발견하게 되는데, 생각해보면 다 지좋자고 순간적인 만족감 때문에 하는 짓이다. 그래야 남을 이겨먹은 것 같으니까.


내가 대화의 대미를 장식하면 나는 좀 더 나은 인간이 되는가. 참 조야한 마음 씀씀이다.


내 경험상, 상대방을 이해하지 않으려는 저열한 태도는 비유를 들 때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누군가 "게임은 인생과 같다"고 했다 치자. 올바른 태도라면 그가 게임과 인생을 병치한 의도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이를 통해 게임과 인생의 유사성을 파악해야한다. 하지만, 대화를 제대로 진행시키고 싶지 않은 사람, 남의 얘기를 듣고 싶지 않은 사람, 아니면 대화를 무조건 지가 이겨먹을라고 하는 놈은 "게임은 가상공간이고 인생은 현실인데 다르죠..." 라고 말한다. (물론 이런 답을 하는 인간은 애초에 비유가 뭔지 모르는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여튼간에 이렇게 되면 대화는 비유가 맞느냐 안 맞느냐로 빗겨나가게 되고 애초의 대화 목적은 길을 잃게 된다. 상대의 말에 흠결을 찾고 지적해서 그 사람은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까. 그저 남 의견에 흠결을 내고 싶어서 환장을 한 사람처럼 여겨질 뿐이다.


대화의 목적은 '말'에 있지 않고 태도에 있다. 내가 알고 있던 걸 남을 통해 재확인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대화할 때, 자꾸 내 의견에 동조해달라는 식의 요구도 할 필요가 없다.) 대화가 목적으로 삼아야할 것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영역이든 생각의 과정이든, 내가 대체 어디까지 타인의 방식대로 생각해볼 수 있는지 시험하는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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