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非사랑 전선'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진심이 담긴 노력은 기대를 낳으며 기대는 항상 실망을 남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랑에 실망하기 싫은 사람은 사랑에 진심이길 거부한다.
하지만, 세상 어떤 누구도 사랑을 원한다는 사실을 피할 수 없다.
주인공은 게이다.
그에게 사랑이란, 원하지만 원할 수 없는 대상이다. 한국 사회에서 게이로 살아가는 이상, 결혼은 불가능하고 가족에게 소개시켜 주기 조차 어렵다. 한국 게이의 사랑은 상처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주인공은 작중에 언급된 우화 <여우와 신포도>처럼 여우가 되기로 한다. 그는 사랑에 집착하지 않고 쉽게 키스를 나누고 쉽게 애인을 바꾼다. 사랑을 비웃고 깎아내리며 섹스 상대로 쓰고 치운다. 그의 삶에 태도는 이렇다. 어느날 찾은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한 '똥꼬충'이란 말에 그는 웃음을 터뜨린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뇌관에 붙을 수 있는 불꽃을 웃음으로 무마한다. 어쩌면 가장 진중해야할 일, 가장 상처받을 수 있는 일을 조롱과 웃음으로 넘기려한다. 반면,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던 남자친구는 간호사를 불러 강력히 항의한다.
그는 대학교 동기인 재희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재희는 자기처럼 아싸였고 교내 평판도 별로인 여자애다. 무엇보다 사랑에 관해 비슷한 관점을 갖고 있었고 집안 사정 또한 주인공과 비슷해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재희와 동거를 시작하며 '非사랑 전선'을 구축하며 더욱 더 결속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앵간한 일은 웃음으로 때우던 그가 지희에게 큰 배신감을 느낀다. 그동안 지희는 대외적으로 동거인인 주인공을 여자로 소개하고 있었는데, 애인이 이를 추궁하자 남자(게이)임을 밝힌 것이다. 여기서 주인공이 느낀 배신감은 친구의 강제 커밍아웃 때문만은 아니다. 정확히는 재희가 남친과의 사랑을 위해 자신의 성적 특성으로 변호한 것 때문인데, 여기서 방점은 '성적 특성'이 아니라 '사랑을 위해'에 찍힌다. 주인공이 느낀 진짜 배신감은 '그렇게까지 사랑에 진심임을 보였던 지희의 모습' 때문이다. '非사랑 전선'의 붕괴다.
전선 붕괴를 시작으로 둘의 관계는 달라진다. 재희는 그 남자와의 결혼을 발표한다. 재희는 원래 결혼식의 사회자를 맡으려 했으나, (남편의 친구가 해야한다는) 관례상의 이유로 축가를 맡는다. 주인공이 선택한 노래는 얄궂게도 핑클의 <영원한 사랑>. 주인공은 축가를 부르다 중간에 울음을 터뜨리고야 마는데 그 지점마저 얄궂다. "항상 나의 곁에 있어줘"
주인공은 지희가 떠나버린 집에 홀로 남아 재희를 떠올린다.
그녀가 축가 감사의 표시로 사준 아르마니 수트, 셔츠, 구찌 넥타이. 신혼집으로 마련한 방이동 아파트. 결국 사랑 찾아 결혼까지 해버린 재희를 다시 떠올린다. 그는 재희가 생각보다 자신처럼 중산층도 아니였고, 자신처럼 동성애자도 아니였으며, '非사랑 전선'도 사실상 허상이었음을 깨닫는다.
언제나 세상은 자신이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냐에 따라 달리보인다. 관점이란 항상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기 마련이며 그 욕망이 투영된 타인은 결국 자신의 삶의 형식에 '배치'된다. 가족도 이해 못하는 상황에서 주인공은 진짜 가족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세계 안에 재희에게 가족의 역할로 배치했을 수 있다.비로소 주인공 여우는 포도 뿐만 아니라, 함께 포도를 욕하던 동물이 자신과 같은 종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생각해보면, 재희는 자신이 여우라 밝힌 적이 없었다.
사랑도 진심도 피해만 왔었던 주인공은
적어도 非사랑 전선의 동료만큼은 사랑했고, 진심으로 대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면, 세상 어떤 누구도 사랑을 원한다는 사실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