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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dinaryjo Mar 16. 2022

악으로부터 침착맨을 구하소서

침착맨 논란을 보며 드는 집게손 기시감

먼저, 나는 집게손조롱의 의도로 사용하는 사람이 분명히 을 거라 생각한다. 따라서 가능한 피해야하는 행위라는 동의하며, 하지말자는 의견이 나와야한다는 까지도 동의한다. 원래 의도는 다르다 어쩐다 하여 일정 억울한 부분이 있더라도, 이미 사회적 의미는 변질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그걸 두고도 예민한 토론이 나올 수 있겠으나, 굳이 그걸 물고 늘어지며 신념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상의 전제를 쓰고 들어가는  자신이 존나 싫다...)


그러나, 정말 그러나,  표현을 적대세력을 축출하는 표식으로 삼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손가락이든 어떤 말투든 간에 그건 발화자가 조롱을 담았을 수도 있지만, (너무나 당연해서 말하기도 웃기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절대 무시해선  된다. 최소 사람을 낙인찍고 비난하고 싶다면, 의심되는 행위와 말과 정황이 쌓였을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결정해야하는 일이다.


 손가락이든 말투든  표식들의 문제는, 평상시 누구나 사용할  있는 범주 안에 들어있다는 점이다. , 유래를 모르고 무심코 뱉는 경우도 허다하다. 세상 사람들이 누구처럼 그 표식과 사고관에 미쳐서 살고 있지도 않다. 침착맨의 유니짜장이나 파란색 옷이나 게임도 마찬가지다. 정치병 걸린 놈들은 '굳이 거기서 '라는 음모론적 가정을 붙이고 색안경을 쓰고 본다. 이러면 보이는 모든 것이  사고 프레임으로 재단 된다. 이건 무슨 마블 영화 속에서 상징 찾는 그런 놀이가 아니라 현실이다. 자신이 가진 알량한 단어와 상징으로 세상과 사람이 순식간에 재단된다. 단순  요소만 보고 달려가 익명 뒤에서 숨어 미친듯이 돌을 던지는  폭력의 수준을 넘어 살해에 가까운 행위다.


무엇보다, 나는 조롱의 의도를 가진 자에게 돌을 던지는 것보다, 억울한 자에게 돌을 던지지 않게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본다. 그 조롱한 자 10명을 축출해서 얻는 이득보다 억울한 자 1명을 만들지 않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억울하게 돌 맞는 사람은 스스로를 파괴시키기 때문이다. 대체 지난 1월 잼미의 죽음으로 우린 무엇을 배운걸까. 난 사람들이 무슨 정의와 옳음 따위를 내세우지만, 사실 그 핑계로 쌍욕할 대상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발 진짜 미친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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