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무 일 없이 출산을 했다면 나의 육아는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기다리던 난생 첫 임신과 동시에 관련 책을 사고, 직접 아기 모빌도 만들고, 아기방 벽지도 고르고, 모유수유 강의도 듣고, 산부인과 모자동실을 예약했던 나였다. 출산 휴가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직장을 다녔기에 당연히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내 아이를 돌보리라고 마음먹었다.
아마 나도 보통의 엄마들처럼 예상을 뛰어넘는 육아 현실에 잠 못 자고 손목 아파하며 백일의 기적을 고대했겠지. 그 와중에 아기의 단독 사진가로, 애기 숟가락 하나에도 고심하는 열혈 검색러로, 도서관과 미술관과 키즈카페와 운동장을 넘나드는 취미 트레이너로 고군분투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아이와 함께 근육도 낳아버린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설렁설렁 육아를 하게 되었다. 타인에게 아기를 맡기고, 밤에 자고, 분유를 먹이고, 적당히 지인이 샀다는 숟가락을 주문하고, 돌 전까지 열 권 남짓한 그림책으로 연명했고, 거의 집 안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모든 동전엔 양면이 있듯이, 내 힘을 쫙 뺀 신생아 양육 덕분에 얻은 반사이익도 있었다.
먼저, 내가 아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하느냐에 욕심내지 않게 되었다. 어부바를 하든, 비행기를 태우든,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를 내든 아이와 함께 하는 짧은 시간을 즐거운 기억으로 채우고 싶었다. 매일 갓난아기의 경쾌하고 해맑은 까르르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고 같이 웃을 수 있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우울증에 온전히 잠겨 있을 여유가 없었다. 나는 아이와 베이비 시터만 남기고 외출하는 것도 아이에게 이래 저래 해주십사 요청하는 것도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나의 회복 여부와 상관없이 상주에서 종일, 종일에서 반일로 순차적으로 시터 시간을 줄여나갔다. 서툴고 몸에 붙였지만 오히려 그것이 삶에 생기를 더해 주었다.
더불어 내가 100% 육아를 하는 것이 불안했던 내 친정엄마는 이런저런 핑계로 집에 찾아오시기 시작했다. 육아가 부담스러웠던 남편 또한 장모에게 양육을 부탁하는 일이 많아졌다. 잦은 만남 중에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남편과 장모와의 관계는 한결 편안해졌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가 없던 50여 일간에도 무탈하게 아이의 삶을 책임지셨던 하나님이 앞으로도 함께 하실 것을 믿고 맡기게 되었다. 내가 아이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때때로 나의 욕심으로 아이에게 필요 이상 화를 내고 나면 내 탓임을 인정하고 사과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아무 일도 없었다면 좋았겠지만,
아무 일 덕분에, 이 또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