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한창이던 지난여름,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쓸개 떼 버릴라고."
무심한 말투에 시답잖은 농담인 줄로만 알았다.
마른빨래를 개던 나는 농담으로 되받아쳤다.
"어디다 버릴라고?"
엄마가 돌아가시고, 우리 세 자매는 뱃속 장기들의 안녕에 신경이 곤두섰었다.
병원에 근무하는 동생 둘은 내 담낭에 결석이 있다는 것을 안 뒤로 늘 내 담낭의 안부를 물었다.
"더 커지지는 않았지?"
통화 끝에 동생들은 당부했다.
"조금만 이상하면 바로 병원에 가."
하지만 병원이 근무지인 동생들은 외려 나보다 더 진찰이나 진료에 무신경했었다.
하기야 매일 출근하는 병원에, 매일 만나는 의사들이니 쉽게 생각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둘째는 그런 덤덤함 때문에 병을 키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하는데, 내가 그냥 떼 달라고 했어. 신경 쓰면서 살기 싫어서..."
복강경 수술이라 절개 부위도 작고, 회복도 빠를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둘째는 쓸개 빠진 인간이 되기로 했다고 농담처럼 웃었다.
돌이켜 보면, 어쩌면 둘째는 늘 대담했다.
나라면 부산스레 호들갑을 피울 일도 '그럴 수도 있지 뭘...' 하며 툭툭 털어내곤 했었다.
둘째가 수술실 간호사로 있을 때였다. 비위가 약해 우유도 못 먹는 얘가 피가 낭자한 수술 끝내고 순대와 떡볶이를 먹었다고 했을 때 나는 아연실색했었다.
둘째는 이마를 찌푸리며 "선짓국보다 낫잖아?" 하더니 장난스레 웃어댔다.
"언니, 나 이제 쓸개 빠진 인간이야. 소심해질 테니까 말조심해. 상처 받아."
떼 버리고 나면 어떡하냐고 한 가득 걱정을 늘어놓자, 둘째는 또 시작이라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책꽂이에 놓인 엄마 사진을 바라보았다.
'엄마, 괜찮겠지?'
나보다 어린 엄마가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술 날은 면회가 안 된다고 해서 다음날에야 부랴부랴 병원을 찾았다.
링거 폴대를 끌고 나온 동생은 구부정하게 허리를 펴지 못했다.
수술 잘 됐으니 걱정 말라는 동생의 얼굴은 낙엽처럼 바싹 야위어 있었다.
나는 두 손으로 동생의 얼굴을 감싸 쥐고 이마를 맞댔다.
"고생했어."
그래서는 안 되었는데, 쓸데없는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흘렀다.
그걸 눈치챘는지, 옆에 서 있던 셋째가 내 옆구리를 꾹 찔렀다.
"언니, 다음은 나야."
엄마 딸 아닐까 봐, 우리 셋은 모두 담낭에 용종이 있거나 결석이 있다.
그래서 셋 다 잦은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둘째는 이미 수술해 버렸고, 셋째도 곧 제거 수술을 받을 거라고 했다.
둘은 내게도 그깟 거 떼어버리라고 말했다.
"1cm도 안 되는 돌 끌어안고 걱정하지 말고 떼 버려."
모자라고 사람 구실 못하는 이를 '쓸개 빠진 인간'이라고 놀린다.
용기는 담(膽)에서 나온다고 해서 용기 있는 자는 대담(大膽)하다고 일컫는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틀렸음을 안다.
겁쟁이인 나만 결석이 들어찬 그것을 끌어안고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말, 그깟 게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