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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라늄이 점점
Oct 23. 2021
늙은 해바라기 여인
기름값이 천 원 가량 올랐다.
멀리 다닐 일이 없어 삼만 원이면 이주일 정도 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리터당 20원 차이도 크게 느껴진다.
일부러 기름값이 싼 외곽의 주유소를 찾아 집을 지나친다.
주유를 마치면 일부러 몇 미터 더 거슬러 올라가 유턴을 해서 돌아와야 한다.
번거롭긴 하지만 다른 곳보다 싸다는 걸 알고 난 후 일부러 찾아가는 곳이다.
주유를 마치고 유턴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맞은 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사유지임을 알리는 노란 경고판이 서 있고, 그 옆에 커다란 해바라기 한 그루가 서 있다.
마치 초록 벨벳 드레스를 입은 여인 같은.
아니, 자세히 보니 켜켜이 늘어진 커다란 잎사귀는 마치 늘어진 여인의 피부 같다.
등과 허리,
엉
덩이에 탄력 없는 군살이 흘러내린 늙은 여인의 뒷모습이다.
여름내 해를 쫓다 이제는 지친다는 듯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고 가뿐 숨을 내쉬고 있는 여인.
달뜬 숨을 내쉬며 기다렸지만, 너무도 무심한 그는 늘 일정한 거리에서 그녀의 주변을 돌기만 했다.
간절한 열망에 그녀의 얼굴은 점점 그를 닮아가고, 그에게 닿으려 하루가 다르게 키를 키웠다.
하지만 하늘은 점점 더 높아져가고, 그녀는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녀의 사랑을 '해바라기'라고 조롱했다.
아무리 갈구해도 내 것이 될 수 없었던 사랑을 포기해버린, 기다리다 늙어버린 여인의 초라한 뒷모습.
뒤돌아 흐느끼고 있는 것일까?
그 여인의 옆에 서 있는 노란 경고장.
"이 여인을 더 이상 아프게 하지 마시오!"
이제 여인은 가을바람에 조용히 말라 갈 것이다.
찬 바람에 그녀의 사랑도 식을 것이다.
그러나, 내년 그 자리에 또다시 그녀가 서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전생의 기억을 모두 있어버린 그녀가, 씨앗에서 발아해 헛된 사랑을 쫓아 또 여름내 발을 동동 구를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다 그러니까.
잘못하고, 상처 받고, 뉘우치지만, 헛된 기대로 또 시작하니까.
지긋지긋하고, 헛되고 헛된, 답 없는 사랑, 말이다.
그녀의 사진을 찍었다.
내가 그림을 잘 그린다면, 그녀의 꿈을 이뤄주고 싶다.
그녀의 어깨 위에 밝은 햇빛 한 줌, 포근한 손길을 그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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