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케인 분석 3편
(이어서)
<시민 케인>의 딥 포커스는 고전적 편집을 거스르는 시도로 바라볼 때에야 비로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앞서 딥 포커스, 전심의 데쿠파주 그리고 시퀀스 쇼트가 하나로 묶이는 개념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우선 각각을 간략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딥 포커스는 전심 초점입니다. 가까이 보이는 전경부터 멀리 보이는 후경까지, 초점이 맞는 범위가 깊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카사블랑카>와 <기생충>에서 확인한 고전적 편집의 구성에서는 딥 포커스가 필요없습니다. 고전적 편집의 쇼트에서는 가장 중요한 피사체를 화면 중앙에 배치하고 그 피사체에만 초점이 잘 맞으면 됩니다. 따라서 고전적 편집에서의 쇼트는 평면적입니다.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없고 하나의 쇼트로 거창한 의미를 만들어내기 어렵습니다. 관객에게 필수적으로 전달되어야 할 스토리 정보나 장면의 내용을 쇼트로 잘라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제시합니다. 그래서 한 장면이 여러 개의 쇼트로 나뉩니다.
반면 시퀀스 쇼트는 한 장면이 하나의 쇼트로 구성됩니다. 시퀀스는 장면 단위인데요. 시퀀스에 관해서는 나중에 설명드리기로 하고 지금은 이렇게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시퀀스 쇼트가 고전적 편집에서의 쇼트처럼 평면적이고 단순한 구성을 취할 때도 있지만 <시민 케인>에서는 다층적이고 화려하고 역동적입니다. 공간 구성, 인물들의 동선, 카메라의 프레이밍 등이 정교하게 합을 이뤄 스펙타클한 미장센을 구현합니다.
이때 미장센으로부터 뉘앙스나 맥락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따라서 미장센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모두 잘 보여야 합니다. 각자의 역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무대를 풍부하게 활용하는 미장센에서는 당연히 딥 포커스가 필요합니다.
또한 전경・중경・후경을 모두 활용하는 전심적 구성을 고전적 편집의 평면적 데쿠파주와는 다른
전심의 데쿠파주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데쿠파주에 관해서도 나중에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시민 케인>의 장면을 보겠습니다.
딥 포커스를 이야기할 때 항상 예시로 언급되는 장면입니다. 밀린 하숙비 대신 양도받은 광산 증서로 일확천금을 얻게 된 찰스 포스터 케인의 어머니 메리 케인은 은행가 월터 팍스 대처에게 이 돈을 신탁하면서 아들의 양육까지 맡깁니다. 메리 케인이 대처와의 계약에 서명하고 대처가 찰스 포스터 케인을 데려가는 장면입니다.
우선 눈밭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소년 케인을 보여줍니다. 소년 케인이 던진 눈송이가 간판에 맞습니다. 이렇게 여기가 메리 케인의 하숙집임을 관객들에게 알려줍니다. 이 다음 쇼트가 딥 포커스의 사례로 거론되는 쇼트입니다.
시작하자마자 작은 트릭으로 시각적 즐거움을 줍니다. 집밖의 소년 케인을 보여주는 듯하더니 카메라가 뒤로 물러나면서 집안의 메리 케인과 남편 짐 케인 그리고 은행가 대처가 보입니다.
물러나는 카메라를 따라 메리 케인이 움직이고 짐과 대처가 그를 따릅니다. 이때 메리 케인의 얼굴과 대사에서 어떤 결연함이 엿보입니다. 반면 짐 케인은 불평을 늘어놓으며 이 계약에 반대합니다. 그러나 짐의 불평은 이 계약에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것을 미장센으로도 알 수 있지요. 계약의 주도권을 가진 메리 케인은 가장 가까이 가장 크게 보입니다. 반면 짐 케인은 테이블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으며 대처보다도 작아 보입니다.
짐은 자신의 의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테이블 쪽으로 한 발짝 다가와 강하게 항의합니다. 그러자 구도가 리프레임됩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처가 두 사람이 받게 될 배당금을 이야기하니까 짐이 못이기는 척 항의를 거두고 서명이 진행됩니다. 이 과정에서 또 리프레임이 이루어집니다. 이때 짐이 창가 쪽으로 가 창문을 닫습니다. 메리도 창가 쪽으로 갑니다. 그러고는 짐이 닫아놓은 창문을 엽니다. 여기까지가 하나의 쇼트입니다.
지속시간이 길기는 하지만 인물들의 배치와 이동, 카메라의 움직임 등을 활용한 화면 구도, 여기에 사운드 조합까지 정교하고 풍성한 미장센을 펼쳐보임으로써 시청각적 즐거움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확인한 이 쇼트가 고전적 편집으로 구성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행동, 말, 반응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쇼트로 나뉘어졌을 것입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입니다.
창 앞에서 대처가 메리 케인에게 어서 계약을 처리하자고 하자 메리 케인이 테이블 쪽으로 가면서 프레임 밖으로 나가면 짐 케인이 프레임 중심을 차지하면서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짐도 메리 케인과 대처 쪽으로 가면서 프레임 아웃되고 창 밖의 소년 케인이 잠깐 보입니다. <카사블랑카>에서 우가테가 릭에게 말을 거는 상황을 보여주는 쇼트와 비슷한 구성이겠지요.
메리 케인과 대처가 테이블에 앉고 나면 처음에는 세 사람을 한꺼번에 보여주겠지만 짐 케인의 항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대립 구도에 따라 메리 케인과 대처를 한 쇼트로, 짐 케인을 한 쇼트로 각각 나누어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메리 케인이 서명할 때는 그를 단독으로 보여주는 식입니다. 이렇게 <시민 케인>에서는 하나의 쇼트로 처리된 것이 고전적 편집에서는 대략 10개의 쇼트로 나뉘었을 것입니다.
이제 이 장면이 기존의 문법 체계와 어떻게 다른지 구체적으로 파악이 되시나요?
그런데 여기까지만 말씀드리면 이 설명에는 한 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검토한 이 쇼트는 시퀀스 쇼트가 아닙니다. 대처가 메리 케인의 서명을 받고 찰스 포스터 케인을 데려가는 장면 또는 시퀀스의 한 쇼트일 뿐입니다. 딥 포커스-전심의 데쿠파주-시퀀스 쇼트가 하나의 개념으로 묶이는 것이라는 설명은 앙드레 바쟁의 논의를 도식화한 설명인데 앙드레 바쟁이 이것을 논의할 때 주로 거론하는 작품은 <시민 케인>의 다음 작품인 <위대한 앰버슨가>이고 <시민 케인>을 거론할 때 언급되는 장면 또한 지금 우리가 검토한 이 장면이 아닙니다. 즉 앙드레 바쟁의 논의를 설명하기에 적절한 예시는 아닌 것이지요. 그러나 <시민 케인>의 딥 포커스를 이야기할 때 늘 거론되는 장면이고 여기에 부정확한 설명이 덧붙여진 경우가 워낙 많아서 굳이 이 장면으로 설명드렸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지적하면서 이번 시간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웰스의 이러한 시도는 그 모형이 연극에 있습니다. 연극 무대 구성의 표현 방식을 영화에 도입한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청년 웰스가 치기 어린 예술가이기는 하지만 그의 예술적 토대는 다분히 귀족적이고 전통적인 성격을 띱니다. 즉 그는 고전 예술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특히 <위대한 앰버슨가>는 더할 나위 없이 귀족적이고 고전적입니다. 그리고 <시민 케인> 역시 이러한 귀족적이고 고전적인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성 세대와 권위에 반항한 누벨 바그 세대들이 오손 웰스에게서 새로운 영화를 발견하고 <시민 케인>과 <위대한 앰버슨가>에서 현대 영화의 아이디어를 논의했다는 점은 아이러니합니다. 웰스는 분명 비평가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프랑스 비평가들을 향한 것은 아니었겠지요. 또한 그들로부터 자신의 작품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초석이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술의 도약이란, 역사의 전개란 참 알 수 없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