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왜 시련을 겪어야 할까?
오늘은 지난 시간 예시로 보았던 런닝맨 285화 5대 최강자전 편을 분석해보려고 하는데요. 저희 채널이 영화 분석 채널임에도 런닝맨을 분석하는 이유는, 런닝맨이 영화 제작에 쓰이는 기본기들을 아주 잘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은 스토리텔링과 관련된 지점들만 개략적으로 말씀드리는데, 나중에는 런닝맨에서 음악을 사용하는 방식까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런닝맨이 큰 탈 없이 무려 10년 간을 방영해온 장수 프로그램이잖습니까? 다른 장점들도 있겠지만 이런 기본기들을 잘 따르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장수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럼 지금부터 런닝맨 5대 최장자전 담력 테스트 게임을 분석해봄으로써 영화 스토리텔링의 기본 구도를 확인해보고, 이를 통해 어떤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야기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5대 최강자전 편 전체 구성을 훑어봐야겠지요? 그런 다음 담력테스트 게임을 집중적으로 분석해보겠습니다.
전체 구성은 이렇습니다. 런닝맨 멤버의 핵심 역량이라 할 ①순발력 ②담력 ③힘 이 세 가지를 기준으로 각 멤버들의 능력치를 검사합니다. 순발력・담력・힘, 이 세 가지를 검사하는 테스트는 하나하나가 게임입니다. 지난 시간 말씀드린 것처럼 시청자는, 런닝맨 멤버들이 이 게임에 대처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보겠지요? 순발력 테스트는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적들로부터 이름표를 방어해야 하고, 담력 테스트는 무엇이 들어있을지 모를 수조 속에 손을 넣어 구슬을 꺼내야 하고, 힘 테스트는 고무줄에 손이 묶인 채로 고기쌈을 싸먹어야 합니다. 이때 이름표 방어는 이름표를 적게 떼인 순서대로, 담력 테스트는 구슬을 빨리 꺼낸 순서대로, 힘은 쌈을 빨리 싸먹은 순서대로 순위가 매겨집니다. 이 순위는 다시 종합 순위로 합산되는데 이건 좀 복잡하니 넘어가기로 하고요. 이 종합 순위는 다시 역으로 반영돼 가장 능력치가 떨어지는 지석진 씨에게는 어드벤티지가, 가장 능력치가 높은 김종국 씨에게는 일종의 페널티가 부여되는 식으로 능력치를 평준화해 최종결전 이름표 떼기가 펼쳐집니다. 그리고는 최종 승자가 5대 최강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지석진 씨의 눈치 게임은 보너스. (눈치가 정말 없으시긴 하네요ㅎ)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담력 테스트 게임을 분석해보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제가 게임룰을 잘못 설명했는데요, 게임 진행 방식을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멤버들 앞에는 7개의 수조가 놓여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수조에는 2개의 구슬이 들어있습니다. 멤버들은 무엇이 들어있을지 모를 수조 속을 더듬어 각자에게 할당된 수의 구슬을 꺼내야 합니다. 그간 공포 특집들에서 모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장 강심장인 김종국 씨는 10개, 차례로 송지효 씨는 9개, 개리 씨는 8개, 이광수 씨는 7개, 하하와 지석진 씨는 6개, 가장 겁쟁이인 유재석 씨는 4개의 구슬을 꺼내야 합니다. 할당된 구슬을 빨리 꺼낸 순서대로 등수가 매겨지는데요. 게임은 김종국, 개리, 이광수, 유재석, 하하와 지석진, 송지효 순으로 진행됩니다.
첫 번째 주자인 김종국 씨는 겁을 먹지 않습니다. 거침없이, 재빠르게 구슬을 꺼냅니다. 그런데 멤버 7명 전원이 김종국 씨처럼 아무렇지 않게 게임을 치른다면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리 재미있지 않겠지요?
반면 두 번째 주자인 개리 씨부터는 겁을 잔뜩 먹습니다. 개리 씨는 얼굴이 구겨지고, 이광수 씨는 괴성을 지르며 발작하고, 유재석 씨 움츠러들며 질색하고, 하하와 지석진 씨는 경악하며 악을 씁니다. 송지효 씨는 멤버들이 수조 안에 손을 넣을 때마다 겁을 잔뜩 먹은 리액션이 보여지다가 자신의 차례가 되자 오열하며 자지러집니다. 멤버들이 수조 속 물건에 손이 닿을 때마다 기겁하며 펄쩍펄쩍 뛰기 시작하니 시청자들은 그때부터 웃음이 납니다. 멤버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니 재미있습니다.
이때 겁을 먹기 시작한 개리 씨의 차례부터 수조 내부가 시청자들에게 공개되는데요. 안에 들어 있는 물건들은 별 것 아닌데 멤버들은 어쩔 줄 몰라 합니다. 눈으로 보지 못한 채 마사지 장갑, 미꾸라지, 물에 불린 파스타 같은 것들이 손에 닿았을 때 보이는 반응. 이렇게 안에 있는 물건은 별 것 아닌데 멤버들의 반응은 격정적이니 시청자 입장에서는 이 간극이 재미있습니다. 즉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 어떻게 대처하고 반응하는가? 시청자들은 이 지점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것입니다. 앞선 영상들에서 반복해서 말씀드린 드라마의 기본 구도가 바로 이것입니다. 게임이 끝나면 멤버들은 안에 있는 물건을 확인하며 허탈해하는데 이 역시 드라마의 기본 구도라는 맥락에서 재미가 됩니다.
그중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지는 지점은 거침없이 구슬을 꺼낸 김종국 씨가 아닌, 겁을 잔뜩 먹고 격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는 개리 씨부터 입니다. 겁이 난다는 건 곤란하고 힘든 상황이라는 뜻이겠지요? 다시 말해서 수조 안에 손을 넣는 건 하고 싶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수조 안을 뒤져 구슬을 꺼내긴 해야 합니다. 따라서 겁을 먹은 6명의 멤버들은 곤경에 처한 셈이죠.
멤버들이 수조 안에 무엇이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구슬을 꺼내야 한다는 의무감 사이에서 갈등하기 시작하면 시청자들은 이 상황에 몰입하기 시작합니다. 수조 속 물건에 손이 닿을 때마다 기겁하며 펄쩍펄쩍 뛰기 시작하면 이 상황이 재미있어 집니다. 즉 멤버들이 더 겁을 먹고, 기겁하는 반응이 더 클수록 시청자 입장에서는 재미있는 것이죠. 재미있는 이야기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물이 더 힘든 곤경에 처하고, 인물에게 더 큰 시련이 닥쳤을 때 그 이야기는 비로소 재미있는 이야기가 됩니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명작 영화들을 떠올려볼까요? 영문도 모른채 알 수 없는 시설에 갇힌 <올드보이>의 오대수,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더욱 더 많은 사람을 해치겠다며 자신을 협박해오는 조커와 마주한 <다크 나이트>의 배트맨, 인공위성 잔해와 부딪혀 동료와 기체를 잃고 우주 미아가 된 <그래비티>의 라이언 … 이들은 절체절명의 심각한 곤경에 처하고 영화의 이야기는 주인공이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극복해가는 과정으로써 펼쳐집니다. 첫 시간에 말씀드렸던 중심 갈등 구도가 바로 이것입니다. 관객인 우리는 주인공이 자신이 맞닥뜨린 험난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어떻게 대처해가는지 보며, 이제는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려나 기대하고, 혹시나 상황이 더 나빠지진 않을까 걱정하고, 주인공의 심란함에 공감하고 또는 그가 얼마나 잘 해나가는지 관망하는 가운데 이야기에 빠져들게 됩니다.
이렇게 주인공의 할 일을 어렵게 만드는 것을 시나리오 용어로는 갈등이라고 부르는 데요. 다음 시간에는 지금 말씀드린 영화 작품들을 예시로 왜 이 작품들이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지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