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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코치 Feb 17. 2021

런닝맨에서 보는 스토리텔링의 기초개념

우리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과정


오늘은 지난 시간 예고 드렸던대로 포크포크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소개된 <태어나서 처음 색깔을 본 66세 보디빌더 아빠의 반응>이라는 제목의 영상과 SBS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의 클립인 <송지효, 담력 테스트 도중 눈물 펑펑>을 예시로 영화 스토리텔링의 기본 구도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먼저 포크포크의 영상을 보겠습니다. 이 영상은 가족들이 아버지에게 특별한 생일 선물을 드리면서 그 순간을 휴대폰으로 촬영한 영상입니다. 제가 따로 말씀드리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죠. 가족들은 왜 이 순간을 촬영했을까요? 일단은 사랑하는 사람이 선물을 받고 감격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겠죠. 그리고 그 모습을 촬영한 이유는 감동적인 순간을 오래도록 간직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생각해보겠습니다. 가족들은 주인공인 아빠가 감격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감격하고 있을 때 우리는 그 모습에서 무엇을 보는 걸까요? 주인공의 가족 뿐만이 아니라 이 영상을 본 오백오십만의 시청자들은 왜 그 모습을 보며 감동했을까요? 제가 새삼스럽게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스토리텔링의 기본 원리가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런닝맨의 클립을 볼까요? 우리는 상자 안에 무엇이 있을지 몰라 두려워하며 자지러지는 송지효 씨를 봅니다. 곤란한 상황에 놓인 송지효 씨가 자신이 마주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고, 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봅니다. 그럼 여기서 두 영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꼬집어 봅시다. 먼저 차이점입니다. 포크포크 영상에서 보는 주인공은 감격하는 사람인 반면 런닝맨 클립에서 보는 주인공은 겁먹은 사람입니다.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시청자인 우리가 두 주인공이 자신이 맞닥들인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고 반응하는지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스토리텔링의 기본 원리는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본다고 할 때 그것은 풍파를 맞이하고 희노애락을 겪어가는 인간의 의식과 감정 그리고 행동을 들여다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포크포크의 영상으로 돌아와 볼까요? 지금 이 상황은 실제 상황입니다만 극적 상황, 즉 드라마와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66세의 이 건장한 할아버지는 가족들이 연출한 상황, 즉 인위적인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그리고 이 할아버지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반응합니다. 평생 목격해본 적 없는 것들을 보았을 때의 반응, 우리는 관객이 되어서 이러한 그의 반응을 주의깊게 봅니다. 주인공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의식과 감정에 공명하는 가운데 그것을 우리의 내면에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그 인물과 이야기 속 세계에 빠져들게 됩니다. 할아버지의 어쩔 줄 몰라하는 몸짓, 어린 아이 같은 손동작을 보며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것을 우리도 끌어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런닝맨은 어떨까요? 이 게임은 촉감만으로 상자 안에 무엇이 있는지 맞혀야 하는 게임입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송지효 씨는 벌레를 무서워한다고 합니다. 벌레처럼 손을 물거나 징그러운 생물이 있진 않을까 겁이 많이 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건 런닝맨 멤버라면 꼭 수행해야 하는 미션입니다. ‘하고 싶지는 않지만 해야만 한다!’ 즉 송지효 씨가 놓여있는 상황은 스토리텔링의 필수 요소인 ‘갈등 상황’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갈등 상황이 고조되면 고조될수록 우리는 주인공의 반응을 더 흥미롭게 지켜보게 됩니다. 늘 용감했던 송지효 씨가 자신이 가장 곤란해하는 상황에서 겁에 질려 통곡하는 모습이 시청자 입장에서는 딱하면서도 재미있게 보이는 것이지요.


이처럼 인간을 격정적인 상황에 처하게 하고, 이러한 상황에 처한 인간 군상과 각각의 인간들이 겪는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 그리고 이러한 굴곡을 겪고 있는 인간의 의식과 감정, 행동을 주의깊게 들여다보게 하는 것. 이것이 드라마 스토리텔링의 기본 원리입니다.


런닝맨의 클립에서는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 한 가지 더 있는데요. 재미를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극적 장치입니다. 바로 상자 안에 무엇이 있는지 시청자인 우리는 알고 있다는 점인데요. 송지효 씨보다 먼저 이 미션을 수행한 다른 멤버들에게도 상자 안에 무엇이 있는지 공개됩니다. 시청자인 우리는 상자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주인공의 반응을 보며 재미있어 하는데, 이에 더해 등장인물들 사이에서도 상자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과 모르고 있는 사람으로 나뉘어 재미가 한층 더해집니다. 다시 말해서 극적 상황 속 어떤 사실이나 등장인물과 관객이 서로 알고 있는 정도가 다르고, 여기에 더해 등장인물들 간에도 서로 알고 있는 범위가 다른 것. 즉 이런 식의 인지도의 격차가 재미를 만들어내는 극적 장치가 되는 것입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Alfred Hitchcock

이 지점을 특히 잘 활용했던 사람이 서스펜스의 거장이라 불리는 알프레드 히치콕인데요, 오늘은 이 정도만 말씀드리고 자세한 내용은 앞으로 차차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스토리텔링의 가장 근본적인 차원을 이야기해보았습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본격적으로 스토리텔링의 기본 요소들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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