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린 의도치 않게 대세가 되었을까
정확히 15년의 시간이 흘렀다.
내가 영상이라는 것을 처음 만들면서 그것이 꿈이 되고 직업이 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15년간 나는 영상 제작자로서만 살아왔다. 그리고 그 15년 대다수의 시간이 ‘1인 영상 제작자’로서였다.
1인 영상 제작자라는 것은 나에게 자부심이기도 했고 한편으로 열등감이기도 했다. 그리고 편견에 대해 끊임없이 ‘설명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내가 처음 영상을 만들어 가던 시절, 대다수의 사람들은 영상이 누군가 혼자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사람들이 접하는 영상이라 봐야, TV에서 방영하는 영상물, 영화, CF, 오프라인 상영물 등등이 고작이었다. 그런 영상들은 대부분 거대 자본과 산업이 이끄는 프로덕션, 제작사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결정적으로 주변에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아무튼, 이런 산업적 구조 탓에 영상은 특별한 누군가에 의해 ‘독점적으로 생산되는 콘텐츠’이고 우리들은 단순히 소비자, 즉 시청자의 역할밖에 가질 수 없다는. 즉, 말하는 자와 듣는 자의 계층이 명확히 갈렸고, 그런 차원에서 권력 구조가 뚜렷한 매체였다.
그런 상황에서 혼자 영상을 만들겠다고 ‘시장’에 뛰어든 나는 당연히 수많은 사람들의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했다.
대학 휴학 기간 동안은, 피곤에 찌든 종로의 직장인들을 상대로 밤늦게까지 디자인과 포토샵을 가르쳤고, 운 좋게 취업한 방송국에선 모션그래픽 디자이너와 OAP (On Air Promotion) 프로듀서로 일하며 채널 디자인과 ‘아름다운 영상’에 대해 감각을 조금씩 익혀 나갔다.
결과적으로 이런 경력들이 내가 1인 영상 제작자로 태어나도록 할 엔진이 되어 주었다. 통합 마케팅 에이전시에서 영상 팀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는 ‘팀’이라는 탈을 쓰긴 했지만, 보기만 해도 한숨이 나오는 부사수들과 팀원들의 실력을 감당하지 못해 ‘거의 원맨 작업자’로서 영상 제작 현업이라는 정글에 먹잇감으로 던져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나는 1인 영상 제작자로서의 나만의 강점을 확실히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나의 각성 그 자체가 놀라우리만치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실은, 나는 힘겹게 거대 미디어 제작사들과 ‘경쟁’ 해야 했고 (경쟁이라 쓰고, 꽁무니를 쫓는다고 읽는다) 가성비’라는 내 필살기도 잘 통하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영상 제작사들이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골리앗’ 틈 바구니에 끼어서 몇 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 말이다. 지난 15년간의 시간 동안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두 가지를 생각해 보면 몇 가지 재미있는 점들을 찾아내게 된다. 15년 동안 변한 것이 있다면 바로 지각 변동 수준의 미디어 환경이다. TV를 혁신할 것만 같았던 ‘피쳐폰’의 반란, 손 안의 작은 TV DMB가 불타올랐다가 불이 나서 탈선했다. DVD 영상과 하드디스크 기반의 녹화 장치(PVR)가 또다시 활화산처럼 일어나며 PMP 시장을 견인하다가 아이폰의 철퇴를 맞고 또다시 역사의 뒷무대로 퇴장했다. 스마트폰은 포터블 디바이스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며 영상의 유통과 공유의 새로운 혁신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언급했던 ‘지각 변동 수준의 미디어 환경’이다. 15년 동안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던 자동차와 같이 플랫폼의 변혁들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이런 15년간의 광란의 질주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1인 영상 제작자로 살아온 ‘나 자신’이었다. 좋게 말하면 ‘조금 민감한 성격’, 사실 성격이 까탈스럽고, 사람들의 실력을 잘 믿지 못해 일을 선뜻 맡기지 못하고, 답답하게 쟤들과 저러고 있자니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이런 나의 ‘강박’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뚝심’ 이런 것과 관계없이 어떻게 하다 보니 15년 간 내 자리는 1인 영상 제작자였다.
이런 ‘존버’의 대가였을까. 나는 이 변화무쌍한 미디어 판을 보는 나름대로의 통찰력을 ‘덤’으로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뿐인가. 1인 영상 제작자에 대한 시선과 대우도 달라졌음도 실감한다. 나는 최근 5,6년 전부터 분야별 국내 최고의 대기업들과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 시작했다. 어떤 대기업에서는 공개 입찰한 영상 프로젝트 비딩에 참여해 최종 제작사로 선정되는 믿기지 않는 일도 일어났다. 강남 어딘가에 주소를 박지 않고 짧게 웹사이트 주소만 걸린 명함을 들고 다녀도 전처럼 위축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영상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던 시대와 사람들이 영상에 열광하며 ‘대세’가 된 시대 모두를 기억하고 있다. 그때 그 사람들은 왜 그랬고 지금 이 사람들은 또 왜 이럴까.
이 변화의 핵심에 ‘유튜브’가 존재한다. 물론 유튜브가 혼자 이 변혁을 이끌어 온 것은 결코 아니다. 유튜브는 마치 무대 위에서 현란한 조명을 받으며 춤추는 ‘아이돌’과도 같다. 사람들은 그 아이돌들의 화려한 퍼포먼스에 열광하지만, 그 뒤에 이 무대를 세우기 위한 수많은 필수요소들이 존재한다. 그들이 춤출 노래, 안무, 의상 이런 것들이 아이돌의 체격과 적절한 멘탈리티와 결합할 때, 상상하기 힘든 폭발적인 무대 퍼포먼스가 탄생되는 것이다.
유튜브라는 이 ‘핫한’ 플랫폼을 견인한 일등 공신은 전화선이나 느려 터진 인터넷 망을 시장에서 퇴출시킨 초고속 인터넷이다. 시청을 위해 별도의 디바이스를 들고 다니거나 매번 복잡한 과정을 통해 연결할 필요도 없다는 점 또한 유튜브의 폭발적 성장의 또 다른 결정적 이유이다. 누구라도 유튜브라는 영상을 시청하기 위해선 웹에서 youtube.com을 타이핑하면 된다. 휴대폰의 유튜브 앱을 실행하면 된다. 자동차 영상을 보려면 어느 사이트에, IT 기기에 대한 영상을 위해서는 어느 카페에, 종교 영상을 보려면 어느 페이지에. 이런 식의 정보의 파편들을 긁어 모아 기억해 놓을 필요가 없는, 전 세계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규칙이다. 편리함은 인간이 가기로 선택하는 가장 위험하면서도 매력적인 통로이다.
그래서일까. 내가 가장 최근에 경험한 마지막 변화는, 주변 내 고객사들에 의해 나에게 던져지기 시작한 질문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요 몇 년간 나에게 질문하기 시작한다. ‘장 실장님, 실장님도 혹시 유튜브 만들 수 있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