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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경옥 Nov 05. 2022

1교시, 한참 교과 수업에 열중할 무렵 고개를 어설프게 숙이는 한 학생이 보인다.

역시나 핸드폰을 만지고 있다.


잠시 수업을 멈추고 터벅터벅 학생 자리로 향했다.

학생의 핸드폰을 받아 교탁 앞으로 가져온 뒤 말을 잇는다.


“수업 끝나고 교무실로 내려와요.”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무엇을 했는데 들키지 않았다면 선생님이 그냥 알고도 모른 척해줬을 수도 있다. 교탁 앞에 서있으면 모든 학생이 무엇을 하는지 다 보인다. 심지어 저 학생이 수업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그 표정 속 마음까지 읽을 지경이다. 핸드폰을 만진다던가, 다른 책을 펴고 과제를 한다던가 하면 가슴이 답답해지는데, 차라리 못 보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열띤 수업을 하다가 흐름이 끊기는 것도 문제지만 그 순간의 상황을 해결하고 내 멘탈을 잡는 것이 어렵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교실에서 무언가 변수가 생겼다면 당황하지 않고 수업을 재개하는 것도 교사의 덕목이다. 일단 학생의 핸드폰을 교탁 위에 두었고, 교무실로 따라오라고는 했지만 그 이후 어떻게 해야 할지 대책은 없다. 일단 수업을 마저 끝내고 그 답을 찾기로 한다.


‘벌’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라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벌을 내릴 수 있는 권리가 있을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모든 사람은 존중받아야 하는데 ‘벌’은 마치 사람의 등급을 위, 아래로 구분 짓는 행동 같다. 그렇다면 수업 시간에 핸드폰을 만져도 벌을 주지 않느냐, 벌은 주지 않지만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다. 교실 수업 중 서로가 지켜야 할 예의가 있는데 그것을 위반한 것은 사실이니까.


수업 종료 종이 치자마자 핸드폰 주인은 내 뒤로 달려와 교무실까지 쪼르르 따라왔다. 학생의 행동이 빨랐던 건 아마 내 손에 쥔 핸드폰을 얼른 다시 받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교무실 방향으로 복도를 유유히 걸으며 이 학생에게 어떻게 하면 핸드폰을 잘 돌려주고 현명하게 내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지 궁리했다.

일단 핸드폰을 만진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 들어보자. 그냥 방과 후에 돌려준다고 할까, 반성의 의미로 과제를 내줄까, 머릿속은 시뮬레이션을 돌리느라 바쁘다.


긴장하며 교무실 자리까지 온 학생, 사실은 선생님도 긴장 중인 걸 모를 테다. 다행인 건 자리에 도착하는 순간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여분 의자를 꺼내어 학생 앞에 두고 앉으라 이야기했다. 우선 수업시간 중 핸드폰을 건드린 사유가 무엇이냐 물었다. 큰 이유가 없기에 A4용지 한 장과 컴퓨터용 사인펜 하나를 주었다.


핸드폰을 만졌고, 그것을 보는 순간 선생님이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진심이 통했는지 학생도 교실에 있던 다른 친구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 것을 인정하였다. 그래도 분명히 상황을 파악할 줄 아는 모습이 기특하다. 곧바로 사람은 실수를 분명히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이번에는 핸드폰을 돌려줄 것이라 말했다. 학생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반성의 의미로 적어야 할 것이 있어.”


교실 수업에 방해를 한 입장이 되었으니,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경우 그 하루는 학급 친구들을 위해 봉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물론 감독은 지금 앞에 있는 선생님이다. 학생은 즐겁다는 미소를 띠며 종이에 글을 써내려 갔다.


“ 나 ㅇㅇㅇ은 수업 시간 중 핸드폰을 건드릴 경우 우리 반을 위한 1일 봉사활동을 할 것이다. ”

이런 문서에는 날짜, 이름, 그리고 서명을 적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학생이 이름을 적고 서명을 하였고 그 밑에 확인자라고 적은 뒤 내 이름과 서명을 적었다.


학생이 꾸벅 인사를 하고 교무실 문을 나섰다. 학생의 뒷모습을 보며 너무 장난식으로 끝낸 게 아닌 건지 돌아보기도 했지만 그래도 본인의 행동을 한 번 되돌아볼 수 있었다면, 또 그걸로 기분이 상하지 않고 깨달음을 얻었다면 되었지 싶었다. 학생은 수업 시간 중 핸드폰을 만지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수업이 끝날 때까지, 그리고 교무실로 따라 내려오면서까지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하면 좋을까 이미 스스로 걱정하고 반성했을 것이다. 그리고 종이에 글을 써 내려가는 행동도 재미있긴 하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일이었을 거라 믿는다.


선생님은 수업도 중요하지만 학생들과의 교감을 어떻게 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학생에게 ‘벌’이 아니라 그저 반성적인 태도를 기를 수 있게끔 시의적절한 ‘교육’을 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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