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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경옥 Nov 07. 2022

생일파티

조회 들어가기 전 우르르 쏟아지는 메시지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여러 자료를 프린트해 가져 간다. 3월에는 학교에서도 학급에서도 이것저것 챙겨야 할 서류가 많다. 조회 시간만으로는 역시 해결하기 버거워서 수업 시간을 할애해 해결해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러다 보니 담임반은 중간고사가 다가올 때까지 버겁게 진도를 나갈 수밖에 없다.


1년 같은 3월을 보내고 선생님과 학생 사이가 조금 가까워졌을 때쯤 첫 생일 파티를 한다. 애초에 환경미화를 할 때 반 아이들의 생일을 월별로 적어 게시판에 붙여놨었다. 매달 말이 되면 그 달에 생일인 친구들이 주인공이 되어 파티가 열린다. 생일 축하 겸 한 달간의 회포를 푸는 소중한 날이다.


학생들은 한 명 한 명 모두가 학급에서 맡은 역할이 있다. 생일파티를 담당할 이벤트 부장도 두 명 선출했다. 이벤트 부장들은 생일파티를 언제 하는지 일정 조사를 하는 것부터 그 역할을 시작한다. 주로 학급 자치 시간이나 수업시간을 할애해서 생일파티를 하는데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하는 걸 더 좋아한다. 그러니 진도가 느린 건 나만의 탓이 아닌 걸로 하자. 이벤트 전날에는 이벤트 부장들이 교무실로 내려와 결제할 카드를 받아간다. 정해놓은 예산 범위 내에서 케이크와 간식을 구입해오는데 선생님 돈이라고 절대 초과해서 쓰지 않고 최대한 아끼려고 하는 게 보인다. 파티가 끝나고 옆반에서 사진기사를 구해와 단체 사진까지 촬영하면 그들의 임무는 완수된다.


3월에 생일인 학생은 4명이다. 선생님이 분홍색 분필을 들었다. 칠판에 큰 글씨로 ‘Happy birthday’를 판서하니까 주인공들이 슬금슬금 나온다. 유치하다면서 툴툴거리는 학생도 있지만 표정은 마냥 해맑다. 생일자 학생들은 축하를 받은 후 학급 친구들에게 간식을 잘 배분해주는 일을 해야 한다. 아, 생일 모자를 쓰는 것 또한 의무이다.


초코파이를 쌓아 올린 귀여운 케이크 앞에 네 명의 학생이 나란히 섰다. 이벤트 부장 중 한 학생이 교실 불을 끄고 다른 학생은 생일 노래를 튼다. 반 전체 학생들이 신나게, 약간은 과도하게 신나서 생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ㅇㅇ, ㅇㅇ, ㅇㅇ, ㅇㅇ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파티를 마무리하려는데 이벤트 담당 부장들이 뭔가를 꺼냈다. 작은 종이에 생일인 친구들을 위한 롤링페이퍼를 준비한 것이다. 반 아이들이 들키지 않으려고 몰래 돌려가며 적었을 걸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롤링페이퍼를 받은 학생 중 한 명은 누군가에게 편지를 받는 게 처음이라며 친구들의 편지를 몇 번이고 읽으며 울먹였다. 이번 이벤트 부장 친구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파티를 준비하는 편이다. 2학기에 어떤 학생이 이벤트를 담당할지 모르겠지만 인수인계를 잘해주면 좋겠다.


아이들은 태어난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의미인지 모른다. 생일파티를 통해 단순히 즐기고 친해지고자 하는 것도 있지만, 서로가 태어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축하받기를 바란다. 받는 기쁨도 좋지만 누군가에게 무엇을 해주기 위해 준비하면 주는 기쁨도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을 거다. 또 그 순간을 함께 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도 말이다.


촛불이 끄기 전 네 명의 아이들은 소원을 빌었다. 이들이 매년 생일마다 소원을 빌며 초를 불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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