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없는 나를 분석하는 시간
매년 멍 때리기 대회가 열린다. 참가자는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가만히 잔디밭에 앉아 말 그대로 멍 때리기만 하면 된다. 많은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자리를 잡는다. 그들의 눈을 보면 어딜 보는지도 모르는 동공을 한 채 그저 가만히 있다. 이 대회는 생활이 지친 사람들에게 여유를 선물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도 이 대회 나가면 1등은 본인의 것이라고 자신했다. 글쎄, 정말 멍 때리기가 쉬운 걸까. 대회에 참가하고 싶지도 않지만, 만약 이 대회에 출전한다면 머릿속으로 어떤 것을 생각하며 그 시간을 버텨야 할지 막막하다. 아마 주최 측 몰래 손바닥에 몇 가지는 메모해 가야 몇 분이라도 버틸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마음이 힘든 날이 있다. 직장 생각은 회사 문밖을 벗어나는 순간 잊어야 한다는데 그게 쉽지 않다. 한 동료는 생각을 없애는 데 명상이 최고라며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그날 저녁, 불을 끄고 거실 한가운데에 앉아 TV를 켰다. 유튜브에 들어가 조회 수가 가장 높은 명상 영상을 찾아 재생했다. 어두운 거실에는 TV 불빛과 명상 음성만 흘렀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중간중간 실눈을 뜨고 싶은걸 겨우 참았다. 일어나 보니 다음 날이었다. 생각은 잠으로 없애는 것이었나 보다.
요가는 나의 몸에 집중할 수 있는 코어 운동이라고 한다. 숨소리 하나하나도 놓치지 않고 동작 하나하나가 내 몸에 끼치는 영향에 온 신경을 쏟아 본다. 그게 된다면 요가는 여러 잡생각을 없애고 마음을 정리하는데 좋은 운동이 분명하다. 그래, 내 몸에 집중하자. 요가 강사님의 몸짓과 안내에 따라 몸을 서서히 움직여본다. 유연성이 필요한 운동이라 힘든 것은 둘째고, 잡생각은 사라졌지만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버린다.
핸드폰을 켜면 주로 SNS를 켜 본다. 인스타그램 친구들은 혼자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일을 적잖이 업로드한다.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있는 걸까. 친구들의 사진을 바탕으로 그 장면을 상상만 해 봐도 우아하다. 또 혼자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엔딩크레딧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올리는 친구들도 있다. 특히 조조영화나 심야영화를 보며 센치함을 잔뜩 풍기는데 그 삶이 참 영화 같아 보인다. 이 사람들은 혼자서 카페에 가든 영화를 가든 풍부한 감성에 맘껏 취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감성 카페를 검색해서 홀로 카페를 찾아 나섰다. 카페에 들어서니 창가 좌석이 한 자리 있다. 자리가 없어질까 봐 빨리 소지품을 올려두고 커피를 주문한다. 향긋한 커피 향으로 가득한 카페라니 정말 감미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주문한 커피를 받아 들고 창밖을 가만히 응시해본다. 그래도 감성 카페에 왔으니 아무래도 인증샷은 찍어야겠지 싶어 셀카를 몇 장, 배경을 몇 장 촬영해본다. SNS에 그럴듯하게 업로드를 하고 다시 핸드폰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다시 창밖을 보는데 아무래도 혼자 가만히 있는 건 좀이 쑤신다. 가방 안을 뒤적거려 이어폰을 찾았다. 음악만 들으려고 핸드폰을 열었다가 유튜브도 보고 인스타그램도 다시 켰다. 가만히 있을 때는 절대 흐르지 않던 시간이 갑자기 훅훅 흐르기 시작한다. 이럴 거면 왜 나왔는지, 미디어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허무한 마음이 들어 집으로 돌아간다.
홀로 영화관에 가 본다. 요즘 핫하다는 뮤지컬 영화를 보려고 한다. 상영관에 들어가 앉아서 영화 시작 전 광고를 보는데 너무 어색하다. 역시 영화관에 왔으니 인증샷 한 번 찍고 SNS에 업로드를 한다.
사실은 혼자 무언가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걸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홀로 카페에 가거나 영화를 보는 것이 혹시나 내 취미가 될 수 있을까 설레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은 쓸쓸하기만 하다. 마치 어떤 이성이 소개팅에 나올까 기대하고 나갔다가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과 같다 해야 할까. 이 허전한 마음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가만히,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해 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