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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a Jan 23. 2021

01. 청년, 글쓰기에 대하여

기록과 메세지, 고통과 희열 그 사이 즈음.

글쓰기에 대하여


글을 쓴다는 것이란 무엇일까.


세상에는 글쓰기에 관한 수많은 명언과 좋은 표현이 존재하는데, 그중 글은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이해할 기회라며 글쓰기를 중요히 생각하고 이를 ‘쓰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내게 글쓰기란 ‘거짓말쟁이의 역설과도 같다고 표현할 만큼, 무한대로 순환하는 거대한 패러독스를 불러일으키는 행위이자 나의 존재가치를 아등바등 입증받고 싶어 하는 도구와 수단이 아닐까 종종 생각하곤 한다. 뭐, 간단히 말하자면 하고 싶지만 하고 싶지 않은 그런 행위랄까.


Photo by Green Chameleon on Unsplash


독서광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책을 좋아하던 내게 글쓰기란 식사와 같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기록과 글쓰기가 조금 다른 개념이기는 하지만, 책을 읽다 좋은 표현이 나오면 메모하고, 기록하고, 필사하는 습관은 종이에서 PC 및 모바일로 가용 매체가 디지털화된 후에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나만의 행위다.


어릴 적엔 그저 글을 쓰는  좋아 1년에 일기장  권을 채워보기도 했고, 백일장에 나가 상을 타는  뿌듯하기도 했고, 스스로  내려간 독후감을 타인과 공유하며 생각을 나누는  행복하기도 했다.



그런데 행복하던 글쓰기의 기억이 스트레스와 고통으로 점철되어 모순된 가치로 바뀌었던 때는 언제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가 취미나 습관이 아닌 일로써 다가왔을 때였다.





사회에 나와 글 쓰는 직업을 갖게 되었을 그 시작점에서, 나는 행복했다. 나만의 미화된 추억일 수도 있으나, 그 시절에는 그냥 글이, 글쓰기가 좋았다. 그런데 업으로 글을 쓴 지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갈 즈음 문득 글을 더는 잘 쓰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갑작스레 글쓰기가 무서워졌다.


내가 쓰던 글들은 매거진 발행주기에 맞춰 잘 써지든, 아니든 마감 기한을 무조건 지켜야 했다. 그러나 글을 쓰는 데 주어지는 시간은 한정되니 시간 안에 매번 똑같은 퀄리티의 글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과 함께 글을 쓰면 쓸수록 잘 써야 한다는 생각이 커졌다.


또한 구독자가 늘고 내 글을 읽는 사람의 범주가 넓어지자 완벽주의적인 외골수 성향은 밤잠을 못 이룰 만큼 나를 반복된 탈고로 이끌었다. 다음 문장을 잘 이어나가야 하거나 글이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한 단어를 가지고 수만 번을 고민하며 밤을 꼬박 새우던 날들도 있었다.





글쓰기 교재에서 흔히 다루는 말들은 모두 비슷비슷하다. 글을 많이 써보거나, 깊이감 있게 담아내거나, 문장을 짧게 줄여보거나, 계속 다시 써보는 탈고의 과정을 거치라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이전에는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면, 일로써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에는 쓸데없는 의무감에 젖어 불필요한 작업으로 글을 몇 번씩 크로스 체크하며 본질 없는 불안감을 다스리고 있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과거 작성했던 수많은 글과 마감의 흔적. google docx가 싫어질 만도...



여러 상황적 이슈는 있었으나 퇴사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마감 기한이 있는’ 글쓰기가 되었을 정도로 나는 글을 쓴다는 것에 급격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점차 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에도 피로감을 느끼며 글과 마음의 간극을 조금씩 조금씩 멀리 떨어뜨려 나갔다.


그렇게 2년 10개월의 회사 생활을 마무리하고 퇴사하는 순간, 글쓰기는 나에게 무거운 짐과 숙제가 되어 있었기에 이를 철저하게 지우고 버릴 수밖에 없었다. 퇴사하며 가장 먼저 한 행동이 지긋지긋하던 Google Docx와 드라이브를 탈퇴하고 맞춤법 프로그램을 삭제한 일이었으니. 당연히 그 좋아하던 독서도 꼴 보기 싫었음이 분명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면서 글쓰기와는 거리가 한참 멀어진, 한 달이 지난 7월 후반부의 어느 날. 퇴사자의 여유를 즐기며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크게 울고 있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귀에 맴돌자 문득 ‘글’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랬는지는 사실 모르겠다.


매미가 울어서일까, 매너리즘에서 벗어날 만한 여름 냄새가 불어온 그 순간의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그래서 퇴사 후 자기계발을 해보겠다며 잔뜩 구매했지만, 싫증을 느끼고 책상 한쪽 구석에 쌓아둔 책더미를 더듬더듬 만져 하나의 책을 골라냈다.


‘생각하는 늑대 타스케’. 책 제목도 멋지군.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휙 스치자 1시간 만에 그 책을 읽어낼 수 있었다. 독서력을 회복하고 나니 다시 책을 읽는 게 거리끼지 않았고 글을 조금씩, 조금씩 다시 가까이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아직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회상해 보면, 재취업과 창업 사이 고민도 깊었던 것은 물론, 신규 사업 투자 유치를 위해 이력서와 사업계획서 등 여러 서류를 작성해야 했는데 그 작은 칸 하나를 문장 한두 개로조차 채우기 힘들어 하염없이 노트북을 켜두고 화면만 바라보다 덮어버린 시간이 꼬박 하루 중 절반을 차지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거제도 한달살이 중, 동네 강아지와 함께.


그러다 8월이 되어 거제에서의 한 달 살기가 확정되고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과 이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도중, 친구가 나에게 한 마디를 툭 던졌다.



“모라야, 근데 너 거제 가서 아마 글 써야 할 거야!”
“응? 어째서?”
“내가 얼마 전 미니북을 출판해서 선물해줬던 거 기억하지?”
“응, 우리 제주도 가서 둘이 방에서 술 마실 때 나 인터뷰도 하고, 그걸로 에세이 너무 멋지게 잘 써줘서 감동했잖아.”
“맞아, 그런데 너 거제 한 달 살기 중에 내가 책 썼던 ‘문구점 응’이라는 곳이 그곳에서 프로그램을 같이하더라고. 에세이 써서 책 내는 활동이 있을 거야.”



순간 스쳐 지나가는 감정은 명백한 ‘두려움’. 티를 차마 내지는 못했으나, ‘글을 다시 써야 한다고? 글쓰기가 싫어 퇴사도 한 나에게? 다시 마감이 주어지고, 스트레스를 받는 삶이 거제까지 가서도 반복되는 걸까?’라는 무수한 고민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글이 안 써지면 배 째! 하는 마음가짐을 품은 채 거제에 내려왔던 9월. 한 달 살기 이틀 차 만에 이 고민은 다시 현실로 다가왔다.





한달살기 삼일째 되던 날, 문구점 응의 프랭코가 거제도를 방문하셨다. 일단 프랭코와 이미 작업을 함께 해보았던 친구 이야기를 꺼내며 어색한 분위기를 환기했다. 그리고 내가 글을 잘 쓸 수 있겠냐는 고민은 잠시 뒤로 묻어둔 채, 한 달 살기 속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 시작했다.


곧 내 손으로 철저히 지워내던 Google Docx, 드라이브를 다시 마주친 그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탈감과 무력감, 당혹감이 밀려오면서도 정말 역설적으로 다시 누군가에 의해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고, 문장을 써 내려갈 수 있다는 기쁨과 희열이 동반하여 찾아왔다.


그렇게 나는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음을 다잡고 노트북 앞에 앉았어도 커서가 깜박이는 모니터를 1시간여 그저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키보드에 손을 얹고도 쉬이 글이 쓰이지 않았던 까닭은 글을 업으로 삼았던 사람인지라 정말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가짐 때문이 아니었을까.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마음을 잠식해 생각보다 첫 줄을 적어내려가기 쉽지 않았던 탓이다.


이를 털어내 보고자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구글 문서 너무 싫어요… 퇴사하고 글을 또 써야 한다니….”라는 땡깡 아닌 땡깡을 부려봤지만 성숙한 동료들은 잔잔히 내게 위로와 응원을 건넸다.


로컬 탐방을 하던 와중에 한 컷. 그저 신나고 행복한 하루하루가 이어지는 나날.


그때인가, 우리 거제 한달살기의 맏언니였던 윤정 언니가 다정스레 나에게 건넨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모라야, 너 글 써야 한다고 들은 순간부터 눈동자 속에 재미가 사라졌어. 글쓰기에 부담 갖지 말고, 평가하거나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니 자유롭게 하고 싶은 얘기를 써 내려가 봐. 이거 시험도 아니고, 네가 예전에 쓰던 전문적인 칼럼도 아냐. 아마 너 할 수 있을걸? 그리고 진짜 잘할걸?”


그 말이 누구보다 내게 큰 위로가 되었던 걸 언니는 알까? 그 멘트를 듣자마자 바로 하루 3줄만 작성해도 된다던 에세이를 20줄 넘게 적어 내려간 건 마음의 부담이 덜어졌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포기했던 구글 문서에 바로 글을 작성하기란 사실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잡담을 끄적이며 감정을 마구 털어내던 내 개인 블로그에 비밀글을 설정해두고 차근차근 글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글이 한 줄, 두 줄 작성되고 문장이 모여 글을 완성한 순간 그 얼마나 큰 뿌듯함을 느꼈던가.


잘 쓰지 않아도 괜찮아. 잘 쓰지 못해도 내가 행복하면 돼. 내 생각을 가볍게, 때로는 진지하게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또 누군가가 이 글쓰기에 동참해준다는 사실이 내게 큰 용기를 주었다. 혼자서 창작의 고통을 느끼는 것이 아닌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괴로움(?)이 모두에게 여실히 느껴졌기에, 그래서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따스해졌다.


결국 글쓰기의 기쁨과 행복이란 그런 것이었다. 생각한 걸 글로 표현하고, 풀어내는 과정에서 어떤 문장으로 이를 만들어나갈지 고민하고, 고민하면서 다시금 생각을 정리하는 그 순간순간이 엄청난 희열이었다는 것을.




한달살기를 함께 했던 또다른 나의 가족들과.


흔히 많은 사람이 얘기한다. 글쓰기를 잘하려면 글쓰기를 해야 한다고. 그리고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글을 많이 써보라고.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는 사람이 되어보면, 그 질을 언젠가 찾게 된다고.


나에게는 그 순간이 지금인 것 같다. 지금까지 글쓰기를 부담 가득한 양적으로 작성해나갔다면, 이제부터는 질적인 글쓰기를 가득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그런 순간. 거제도에서 지내는 하루하루를 기록하고 싶은 욕망이 생겨난 때. 


과연 이 에세이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작성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끝은 아마 ‘글을 쓴다는 것’이 매일매일 다시금 행복해지는 순간을 맞이할 때가 아닐까 싶다.


이제 목적 없는 글쓰기로 압박받지 않는 나를 다시금 발견하기를, 그리고 그런 내가 사랑스럽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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