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스콘 Nov 30. 2021

스파이크 리의 강력한 주먹

<블랙클랜스맨>의 총구는 어디를 향하는가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스파이크 리의 <블랙클랜스맨>은 2018년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됐다. 할리우드의 겁 없는 감독 스파이크 리의 신작이라는 말에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고 기대했다. 영화가 끝난 후 사람들은 일제히 스파이크 리에게 물었다. "도대체 미국에, 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요?" 그러자 스파이크 리는 피터 위어의 영화 제목을 말했다. "가장 위험한 해(The Year of Living Dangerously)"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1978년 콜로라도 스프링스 최초의 흑인 경찰 론 스톨워스(존 데이비드 워싱턴)는 KKK단에 침투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는 KKK단에 잠입하기 위해 통화로 자신이 백인 우월주의자이자 유대인 혐오주의자라며 단체에 가입시켜줄 것을 요구한다. 이후 론의 동료 필립(애덤 드라이버)이 론인 척 KKK단에 잠입해 수사를 진행한다. 겉보기에는 흑인 경찰과 백인 경찰이 힘을 합쳐 백인우월주의 단체를 소탕하는 형사 영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순한 형식을 취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KKK단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미국의 흑인 탄압의 역사를 그리기도 한다.


영화의 오프닝을 보자. 빅터 플레밍이 연출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한 장면이 재생된다. 이어 케네브루 박사(알렉 볼드윈)의 강연이 시작된다. 그는 백인 미국을 예찬하며 흑인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강조하면서 흑인 탄압이 정당함을 역설한다. 이러한 장면은 미국의 역사를 나타낸다. 케네브루의 첫 강연은 흑백에 고전 화면비다. 이후 컬러가 생기고 현대적인 화면비로 바뀐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흑인 탄압은 먼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은유한다. 동시에 중간중간 NG를 내고 빔 프로젝트 화면에 겹쳐진 박사의 모습은 광기에 휩싸였지만 말도 제대로 못 하는 한심한 부류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리고 이 부류는 트럼프임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알렉 볼드윈은 SNL에서 트럼프를 연기한 적 있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왜 나온 것일까? <블랙클랜스맨>과 전혀 연관이 없음에도 오프닝을 장식한 건 뜬금없어 보인다. 그런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외에도 한 영화가 <블랙클랜스맨>의 한 부분을 장식한다. 그 영화의 등장은 오프닝을 납득시킨다. 그것은 바로 D.W.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성서처럼 여기는 영화다. 해당 영화 속에서 흑인은 음란하고 야만적인 종족으로 등장한다. 생각해보니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에서도 흑인을 함부로 다루는 연출이 나온다. 그렇다면 확실해진다. <블랙클랜스맨>은 흑인을 차별하지만, 고전 명작으로 남은 두 영화를 재조명한다. 두 영화는 미국 영화계의 토대이자 흑인 탄압 문화에 기여한 악질적인 영상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 연장선에서 <블랙클랜스맨>의 시선도 흥미롭다. 영화의 후반부, 두 장면이 교차 편집된다. 하나는 KKK단의 모습이다. 거사를 실행하기 위해 모인 KKK단과 그들의 가족들은 교회에 모여 <국가의 탄생>을 관람한다. 또 다른 장면은 한 흑인 할아버지의 끔찍한 증언을 듣는 콜로라도 대학교의 흑인 학생들이다. KKK단과 일행이 영화 속에서 흑인이 등장할 때마다 야유와 욕설을 보내고 백인 인물들이 활약할 때는 환호와 박수를 보낸다. 흑인 탄압 역사의 산증인인 할아버지의 제시 워싱턴 이야기를 듣는 콜로라도 대학교 학생들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안타까운 듯 신음만 조용히 낼뿐이다. 스파이크 리는 이 교차 편집을 통해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광기와 공포에 대조되는, 흑인 인권 운동에 앞장선 흑인 학생들을 조명한다. 즉,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향해서는 조롱을, 흑인 학생들을 향해서는 경외를 보낸다. 이외에도 KKK단의 지부장 듀크(토퍼 그레이스)가 자신은 목소리만 듣고도 흑인인지 백인인지 단번에 맞춘다며 단언하지만, 전화 너머 흑인 론이 말하는 것에서 그가 흑인인 걸 끝까지 알지 못한다는 설정은 블랙코미디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 이후 론이 우스꽝스러운 말투로 "이렇게 말을 해줘야 내가 흑인인 걸 알겠냐"며 모욕을 주는 장면은 수사 중단이라는 안타까운 결말에도 통쾌함을 잃지 않도록 만든다.


그런데 이런 블랙코미디와 통쾌한 전개에 웃다가도 우리는 이내 심각해진다. 이번에는 엔딩을 보자. 론과 패트리스(로라 해리어)가 집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이내 누군가 연신 노크를 해대자 둘은 권총을 들고 문밖을 나선다. 이후의 장면은 그 어느 때보다 영화적이다. 마치 이들이 무빙 워크를 탄 듯 매우 부드러운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우린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총구가 향한 곳이다. 둘은 카메라를 바라보면서 움직이고 있다. 이는 곧 화면 밖에 있는 우리에게로 향하는 것과 같다. 둘의 총구는 카메라에, 화면 밖인 우리가 사는 세계에 향한다. 두 번째는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현실이다. 총구를 내민 둘의 모습을 비추고 다음 장면에서 둘의 시점 샷으로 전환된다. 창밖에 희미하게 불빛이 보인다. 더 가까이 가보니 KKK단이 십자가에 불을 붙이고 다음 희생자를 기다리고 있다. 당황스럽다. 분명 KKK단은 론과 필립에 의해 소탕되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내 우린 소름을 느낀다. 우리를 바라본 론과 패트리스의 시점 샷은 우리가 사는 세계다. 즉, 창밖의 KKK단은 우리 현실 속의 존재다. 여전히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우리 현실에 남아 있다.


이후 영화는 다큐멘터리 장면을 보여주면서 현실로 급작스럽게 복귀한다. 해당 다큐멘터리에는 2017년을 배경으로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위자들 간 충돌을 보여준다. 이후 트럼프의 기자회견 장면으로 넘어간다. 그는 두 시위자들 모두 잔인한 건 똑같았고, 백인 시위자들이 모두 나치 신봉자이거나 백인 우월주의자는 아닐 거라고 두둔한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샬러츠빌 차량 돌진 테러를 비추면서 여전히 우리 사회에 끔찍한 혐오와 폭력이 만연함을 알려준다. 트럼프의 말과 완전히 반대되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행태다. 이후 샬러츠빌 테러에 희생된 여성의 사진과 거꾸로 걸려 있는 미국 국기, 그리고 이내 흑백으로 변해버린 국기를 보여주며 끝난다. 이런 전개는 <블랙클랜스맨> 속 상황이 단순히 과거 이야기나 영화적 사건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흑인을 차별하고 탄압하는 사건은 끊이질 않으며 폭력의 세계에서 우리 모두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그리고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은 <국가의 탄생>처럼 백인이 흑인을 학살해도 용인되는 가장 위험한 해가 되었음을 강조한다.


<블랙클랜스맨>은 블랙 코미디로 시작해 트럼프 행정부를 겨냥한 프로파간다 영화로 끝맺음한다. 우리가 이 영화를 마냥 웃으면서 볼 수 없는 이유다. 현실 속 폭력과 차별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트럼프가 이끈 미국은 반대로 갔으며, 우리가 여기는 이상적인 미국은 이미 죽어 없어졌다. 트럼프에 의해, 백인우월주의에 의해, 과거부터 이어진 탄압과 폭력에 의해 다양성의 상징인 미국은 죽었다. 이 죽음에 스파이크 리는 쓸쓸히 장례를 치른다. 만약 누군가가 '차별은 과거에 만연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인종 혐오는 영화 속처럼 예전의 이야기다. 지금은 모두가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이다'라고 말한다면, 스파이크 리는 그 자의 면상에 주먹을 내리꽂고 멱살을 잡아 난장판의 거리로 끌고 갈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칠 것이다.


"이게 현실이야, 멍청아."

작가의 이전글 다시 신화로 돌아오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