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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스콘 Oct 10. 2021

부끄러워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동주>가 이준익의 최고작인 이유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이준익 감독은 인물의 호소와 눈물로 관객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능력자다. <라디오 스타> 속 최곤(박중훈)의 눈물 어린 호소, <사도>에서 사도 세자(유아인)의 절규와 무기력 속에서 흐르는 눈물로 관객으로 하여금 공감과 연민을 느끼도록 한다. <동주>는 다르다. 앞선 영화와는 달리 절절한 호소나 자칫 신파로 향할 수 있는 인물들의 오열이 극히 적다. 그럼에도 <동주>는 <라디오 스타>와 <사도>에 비해 결코 뒤처지지 않으며 오히려 더 앞서는 면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동주>는 이준익 감독 필모그래피 중 가장 빛이 나는 결과물이다.


<동주>는 여느 이준익 감독의 영화처럼 관객을 영화 안으로 끌어들인다. 각 인물들의 행동과 감정을 이해시키고 영화 속 분위기에 취하도록 만든다. 우린 <라디오 스타>를 통해 최곤(박중훈)과 박민수(안성기)의 따뜻한 우정에 감동을 받았고, <소원>을 통해 피해자의 고통과 연대에 슬퍼하고 공감했다. 또한 <사도>를 통해 안타까운 역사적 사건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아버지와 아들 간 관계를 이해하고 해부했다. 세 작품은 공통적으로 공감, 그리고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라는 점에서 많은 관객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렇다면 <동주>는 어떨까. <동주> 역시 매우 깊이 있는 영화다. 그러나 앞선 세 영화보다 더 훌륭한 지점은 비로소 인물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지점에 있다. 우린 영화를 보고 난 후 윤동주와 송몽규를 사랑하게 되었다. 무엇이 <동주>를 여타 다른 이준익의 영화에 비해 더 특별한 감정인 '사랑'을 느낄 수 있게 만든 것일까? 우선, 영화가 다루는 아름다움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동주>는 윤동주 시인의 일생을 다룬다. 그렇다면 윤동주 시인의 작품관인 고뇌, 절망, 부끄러움이 잘 드러나야만 한다. 그가 실제로 그러한 감정을 느꼈기에 주옥같은 시가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즉, 영화도 윤동주 시인의 시와 같아야 한다. <동주>는 그러한 부분에서 성공했다고 본다. 윤동주 시인, 그리고 송몽규 투사의 일상과 어두운 시대 속 두 인물의 감정과 행동을 그대로 담아냈기에 이토록 아름다운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윤동주 시인의 방을 보자. 그의 방은 어둡고 비좁다. 그러한 방을 비추는 건 작은 촛불 하나다. 이는 윤동주 시인의 내면을 가장 잘 나타낸 장면이다. 흑백의 화면은 당시 암울했던 시대를 대변해준다. 비좁은 방은 그가 고립되어 있는 듯한 상태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작게나마 빛을 내는 촛불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잃지 않은 희망이다.


송몽규 투사는 어떤가. 영화의 후반부, 윤동주와 송몽규가 감옥에서 마지막 심문을 받는데, 이는 교차 편집으로 이루어진다. 그때 우린 형용하기 힘든 슬픔과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낀다. 영화 내내 이어진 둘의 일생과 열망과 고통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집은 윤동주와 송몽규가 절친이자 라이벌이지만, 둘의 목표와 신념은 동일했고 우리가 둘을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나타낸다. 이렇듯 윤동주 시인과 송몽규 투사의 일생을 표현한 장면들의 연속에서 우리는 두 인물의 진심과 일생을 본다. 여기서 마주한 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이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하고 참회하는 청년의 모습. 그가 눈물을 흘릴 때 우리도 눈물을 흘리고, 그가 분노를 표출할 때 우리도 분노한다. 윤동주 시인은 물론 송몽규 투사를 옭아맸던 답답하고 음침한 감옥은 한없이 차갑기만 하다. 마침내 윤동주가 각혈을 하며 간수들에 의해 옮겨지고 감옥 안이 텅 비었을 때 우리의 마음 역시 공허하고 허무하다.


이준익 감독은 <동주> 통해 서정적이고 아름다우며 쓸쓸하면서도 안타까운 하나의 언어, 하나의 , 하나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이러한 영화를 진정으로 원했다.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위로와 사랑을 끼게 만드는 영화야말로 진정한 영화의 역할이라   있다. 흑백의 화면  타오르는 작은 촛불과 창살 너머 별들의 무리를 보며 희망과 빛을 염원했을 동주를, 시를 사랑한 동주처럼 세상을 사랑했던 몽규를, 그리고 그런  인물의 이야기를 훌륭하게 담아낸 이준익 감독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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