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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처의 에이타 Jan 17. 2021

2017.03.06

2017년 3월, 일본 생활 시작.

#1. 시작부터 삐걱


일본은 3월 중순부터 5월까지 종종 쌀쌀하다. 3월은 가을에 가까운 날씨다. 나리타 공항으로부터 내가 머물 거처로 가는 데에는 1시간이 넘게 걸린다. 도쿄는 내가 느끼는 것 이상으로 큰 도시다. 큰 도시의 동맥처럼 흐르는 전차로와 모노레일, 그 사이를 열심히 비집고 흐르는 자동차와 자전거가 가득한 일본의 대도시. 그곳의 서쪽에 위치한 작은 동네에, 20년 넘은 오랜 맨션을 빌려 자리를 잡았다. 다들 나의 안부보다는 도쿄의 벚꽃 소식을 묻고 있는데, 도쿄는 비가 내리고 있다. 영상 10도를 넘지 못해서 아직 기운찬 꽃놀이는 멀었다. 햇빛이 새파랗다. 


일본에 와서 내가 처음 맞닥뜨린 것은, 도저히 원인을 알 수 없는 요통이었다. 아직 인터넷과 일본 유심칩 기반의 모바일이 개통되지 않아서 한동안 인근 백화점의 스타벅스에서 인터넷을 이용했으나, 걷지도 못할 만큼 허리가 아파 일주일 정도는 두문불출했다. 세계와 연락이 두절된 채로 그저 누워만 있는 기분이란. 더불어 몸살까지 와서 목욕조차도 쉽지가 않았다. 조금 상태가 나아진 시점엔 절뚝거리다시피 하며, 집 앞의 드럭 스토어에 가 파스를 사서 돌아왔다. 꼬리뼈 쪽에 파스를 붙이자 꽤 차도가 생기긴 했지만, 이토록 허리가, 눈물이 뚝뚝 떨어질 만큼 아픈 적은 처음이다. 


그 무렵 집 앞에 '접골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본의 접골원이란 매우 신기한 개념이다. 한의원에서의 침, 뜸, 부항치료와 양의원에서 행하는 여러 물리치료, 그리고 스포츠마사지 등이 결합된 곳이라고 한다. 즉 전문의사보다 '전문기술자'가 있는 곳. 접골사, 마사지사, 물리치료사 등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보통 운동선수들이 많이 찾던 것이, 일본에 시니어 인구 비율이 높아지며 유행처럼 많이 생겨났다. 의료보험이 적용되기 때문에 초진비만 제외하면 시술비가 동네 내과보다 싸기도 하므로 매일 밥먹듯이 가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허리가 아프다'라는 말을 어떻게 해야하지. 인터넷이 통하지 않아 도움이 안 되는 핸드폰은 던져두고, 네발로 기다시피 침대에서 내려와 한국에서 일본어 공부할 때 쓰던 책과 자료를 뒤져 '허리'를 일본어로 뭐라 하는지, 병원에 가서 해야하는 말들을 메모장에 적었다. 이렇게 하나씩, 외국에 산다는 것의 불편과 피곤함과 슬픔을 알게 된다. 쉽고 간단하던 일상의 크고 작은 일들이, 모두 '넘어야할 허들'로 변한다. 




#2. 잔상


아직 일본어학교 입학식까지는 열흘 이상 남았다. 꿈을 꿨다. 배경은 내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서울 성북구 원룸이 있던 동네였다. 꿈속의 나는, 단골 떡볶이 가게에서 떡볶이와 튀김을 사서 집으로 한들한들 걸어가며 통화를 하고 있었다. 엄마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여기가 한국인지, 내가 한국에 온 게 맞는지 모르겠어. 저 모퉁이를 돌면 금방이라도 도쿄가 나올 것 같아."


...라는 말을 하면서 걷다가. 문득 꿈속에서 '뭐야, 나 지금 한국에 있는 거야 도쿄에 있는 거야?'하며 깜짝 놀랐다. 통화가 갑자기 끊어졌고, 꿈에서 깼다. 나는 도쿄의 내 방 침대에서 눈을 떴고, 오래간만에 도쿄는 비가 그쳐 햇살이 커튼 사이로 흔들거리고 있었다. 전철은 바람 소리를 한 차례 크게 내며 지나가고 있었다. 머리를 감싸 쥐고 일어나 물을 마시려 마루에 발을 디뎠다. 목재 바닥에서 끼익 하는 소리가 났다. 


한국과 도쿄가 혼재되어 나오는 꿈은, 내가 일본서 한 20년쯤 살면 꿀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도착한 지 보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지금이라니.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상할 이유는 없었다. 지금이야말로 서울의 잔상, 서울의 기억이 또렷하게 남아있어서 이런 꿈을 꿀 수 있는 것이겠지.


냉수를 마시며 생각했다. 기묘했다. 나는 꿈속에서 '설마 나 한국에 돌아와 버린 거야?'라고 공포를 느끼며 깼다. 그 절망적인 기분의 자국은 아직 몽롱한 잠 기운과 함께 침대 위를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 공포의 내용이란 '아직 나 해낸 것도, 해본 것도 없는데 돌아간 거야? 그럼 한국에서는 나 뭐 하고 있는 거야?'였다. 


밤 산책을 자주 한다. 반짝이는 자판기가 윙윙 대며 돌아가는 소리를 듣는 걸 좋아한다.





#3. 비범함


인터넷도 전화도 되지 않는 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책 읽기 뿐이었다. 대학생일 때 사들인 소설책을 몇 권 챙겨 왔기에 그것을 읽었다. 학부 교과서였던 책에는 학과 이름과 열 자리의 학번이 가지런히 적혀있다. 저것을 적으며 나는 대학생인 나 자신을 몹시 자랑스러워했던 적이, 한때, 있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오랜만에 다시 집어 들었다. 


난 전학이나 이사는 지극히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난 평범하고 무탈한 인생을 살 것이며, 그렇기에 내겐 평생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게 10살 때의 일이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니 나는 정확히 10살, 그 후로 전학을 3번, 이사를 7번, 이직을 4번 했다. 여기에 뒤늦게 유학까지 왔다. 내 기준에서 이미 평범한 인생은 오래전에 글러먹은 셈이다. 


평범도 아니고 비범도 아닌 어느 경계에서 제 맘대로 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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